깜딱이야 심장마비 오겠네
나의 아침은 매일 비슷하게 시작한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시간을 확인한다. 보통은 새벽 4-5시대다. 잠금을 해제하고 회사 메일, 개인 메일,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훑는다(안 좋은 습관인데 딱히 바꿀 생각은 아직 없다). 올해 2월부터는 단어 게임 워들(wordle)을 시작해 아침에 눈 떠서 침대에서 나오기 전에 하는 일이 하나 추가됐다. 매일 자정 새 게임이 나오니 자정 전에 잠드는 나로서는 한시도 기다리지 않고 하는 셈. 워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적어보는 걸로.
오늘도 다를바 없이 침대에 뒹굴며 잠시 휴대전화 놀이를 하고난 후 세수하고 소금물로 가글하고(통번역대학원 시절 시작한 습관) 요거트에 그래놀라와 블루베리를 준비한 후 유튜브를 보면서 먹으려고 노트북을 식탁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런데! 노트북이 아예 먹통인 거다. 그냥 까만 화면에 그 어떤 키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헉.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하필 토요일이라 회사에서 다른 노트북을 잠시 빌려올 수도 없을 텐데. 게다가 오늘은 꼭 제출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당황. 혹시나 하며 전원을 다시 연결하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려 보고, 모니터에도 연결해 봤지만 노트북은 고요함 그 자체. 그냥 죽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어떡하지 일단 회사 지원팀에 연락해볼까. 아직 너무 이른데. 당장 제출해야 하는 건 지인한테 부탁해야 하나, 노트북 어디 빌릴 데 없나. 도서관 가서 공용PC라도 써야 하나. 왠지 속터질 속도일 거 같은데. 아 오늘 한국 가는 비행기표도 사려고 했는데. 이사갈 집에 설치할 방충망도 주문해야 하는데. 주말에 하려고 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어찌할 바를 모른채 일단 요거트를 먹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노트북을 마주한 후 여기저기 두드려봤다. 제발 제발. 맥북 에어 프로에는 온오프 버튼도 없단 말인가 하다 가장 윗줄 오른쪽에 새끼손톱만한 버튼이 눌러졌다. 꾸욱 누른 채 기도했다. 1초 2초... 포기할 때쯤 화면이 켜졌다. 하... 알고보니 밤새 자기 맘대로 업데이트를 하느라 꺼졌던 것. 그것도 모르고 혼자 당황하고 속으로 온갖 난리를 친 게 어이없었지만 노트북이 고장난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그냥 감사했다.
(이럴 때 쓰는 말 아닌데..)
집 때문에 맘고생을 씨게 한 지난 두어달, 내가 느낀 행복감은 진정한 행복이라기보단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소될 때 오는 안도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께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다. 입사 8년차라 이제 일도 사람도 익숙해져서 문제가 터져도 평정심을 잃지 않게 됐는데 이번에는 나에 대한 오해가 생긴 케이스라 심히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니저에게 꾸준히 업데이트를 해온 사안이라 이미 앞뒤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 아니면 매니저에게까지 해명하느라 더 힘들었을 듯. 오해를 풀기 위해 회의를 잡았고 그게 어제였다. 매니저도 지원해주기 위해 참여했고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이미 네 번이나 새로 쓴 월세 계약서를 집주인이 수정을 요구했다며 확인하고 resign하려면 알려달라는 메시지였다. 심각한 회의 중이었는데 당장 다음 주에 들어가야 하는 집 계약서를 또 수정한다니, 게다가 확인하고 resign하라고 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확히 어떤 점이 달라진 거냐고 설명해 달라고, 회의 중에 답을 보냈다. 회의에서 발언하면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달라진 건 없다고 집주인이 조항의 표현을 더 명확하게 다듬고 싶어한 거라는 답변이 왔다. 알고 보니 다시 서명해 달라는 re-sign의 뜻으로 쓴 단어였는데 회의 중에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이걸 '그만두다, 포기하다'는 의미의 resign으로 해석한 거다. 하필 오해할 만한 단어를 써서.. 심장마비 올 뻔했다고 투털댄 후 다시 서명하겠다고 답했다.
매니저의 도움으로 회의도 무사히 마치고 월세 계약서도 재서명하고 마무리하며 일단락 됐지만 심장에 손상이 왔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기본적으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이렇게 가슴이 철렁한 일들이 연이어 닥치니 심장을 떼어 토닥토닥 해주고 어디 숨겨놓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