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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Sep 16. 2022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I

영국이 여왕을 떠나보내는 방법


1. 여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처음 알려준 지인과의 대화
요즘 자꾸 공식 자리 참석을 취소하고 행사도 축소하는 게 너무 불안해...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 말을 한 지 불과 2주만에 메시지가 왔다.

그때 여왕님 얘기한 게 이렇게 빨리!



9월 8일 목요일, 현지 시간 오후 6시 30분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그보다 몇 시간 전 이미 위독하다는 주치의의 진단에 가족들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 모이면서 전국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2. 여왕의 서거 소식에 심란한 마음을 담아 올린 스토리

1952년 25세의 나이로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2세는 올해 즉위 70주년을 맞이해 6월에는 대대적인 플래티넘 쥬빌리 행사(Platinum Jubilee)를 열었다. 지난 70년 간 영국의 군주였으니 현재 살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 영국 군주는 곧 엘리자베스 2세밖에 없었다. 소식을 듣고 추모하러 버킹엄 궁을 찾은 시민 인터뷰에 "she was a constant(변치 않는 존재)", "symbol of stability(안정의 상징)"과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강산도 일곱 번 변했을 시간에 언제나 곁을 지키고 있던 존재가 사라진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은 군주제 찬성론자든 반대론자든 마찬가지였다.


영국 국적도 아닌 외국인 노동자인 나도 여왕이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뒤숭숭했으니, 군주제며 지난식민국가에 대한 잘못 등을 떠나 국가의 주인인 여왕의 서거는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여러 국가 국민들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10일 간의 장례 절차

여왕의 나이가 있는 만큼 런던 브릿지 작전(Operation London Bridge)으로 명명된 국장 계획은 사전에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었고 작전명을 따와 여왕의 죽음을 "London Bridge is Down(런던 브릿지가 무너졌다)"고 표현한 언론도 있었다. 여왕이 런던이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숨을 거둠에 따라 시신을 런던으로 옮기는 별도의 유니콘 작전(Operation Unicorn)도 발동됐고 찰스 3세의 즉위 계획인 스프링 타이드 작전(Operation Spring Tide)도 동시에 시작되었다.

3. 동네 스콘 가게는 여왕이 스콘에 잼을 먼저 발라드셨다는 위트 있는 글로 여왕을 추모했다. 난 크림 먼저..

D+0 (9월 9일)

여왕이 저녁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공식적인 장례 절차를 다음 날인 9월 9일부터 시작했다. 찰스 3세가 여왕의 서거를 공식 발표하고 장례식인 19일부터 7일후인 26일까지를 공식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장례식 당일은 공휴일로 지정했다. 서거 소식이 전해진 9월 8일 저녁 이미 내 인스타그램 계정은 여왕을 추모하는 게시물로 가득 찼다. 내가 팔로우하는 영국 도서관, 자연사 박물관 등 관공서는 물론이고 식당과 카페들도 일제히 여왕을 기리는 마음을 전했다. 셀프리지 백화점은 하루 휴점했으며 영국 왕실의 공식 홍차로 알려진 포트넘 앤 메이슨은 쇼윈도를 검은 천으로 모두 덮는 방식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 날 아침에 모든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에 여왕의 사진이 걸려있어 준비성에 감탄했다. 심지어 철도 노조는 예정된 파업을 철회하기도 했다.


D+1 (9월 10일)

찰스 3세의 즉위가 선포됐다. 1958년 10살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된 이래 64년간 즉위를 기다리다 최고령으로 영국 왕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영국인들이 애정했던 다이애나비와의 이혼과 이제는 왕비(Queen Consort)가 된 카밀라와의 불륜으로 인기 없는 왕이 될 거라는 우려가 많다. 

4. 여왕의 마지막 여정

D+2 (9월 11일)

여왕의 관이 운구차에 안치되어 밸모럴성에서 에딘버러 홀리루드 궁전을 향해 운구 행렬을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했다. 여왕의 딸인 앤 공주가 동행했다. 


D+3 (9월 12일)

여왕의 시신은 에딘버러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옮겨져 왕실 일가가 참석하는 장례 예배가 열렸다. 이 날 하루동안 일반인들이 조문할 수 있게 개방돼 수많은 추모객이 방문했다.


D+4 (9월 13일)

여왕의 관은 공군기 편에 실려 런던에 도착했고 운구차에 옮겨져 버킹엄궁을 향했다. 역시 앤 공주가 동행했고 운구차가 지나가는 길에는 빗속에서도 수많은 군중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D+5 (9월 14일)

여왕의 관이 마지막으로 버킹엄 궁을 떠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졌고 이날 오후 5시부터 일반 대중이 조문할 수 있도록 공개됐다. 수십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영국 정부는 세세한 지침을 사전에 공개했고 전례없는 경찰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됐다(경찰 인력이 부족해서 프리미엄리그 축구 경기를 재개하지 못할 정도).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30시간까지도 기다려야할 수 있으며 줄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앉아서 쉴 기회도 없을 거라며 언론에서도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여왕의 일반 공개(lying-in-state)가 시작된 오후 5시부터 영국 정부는 유튜브로 줄이 얼마나 긴지 (back-of-the-queue) 현황을 중계했다.

5. 여왕 조문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서야 하는 줄 경로(최대 8km)


9월 14일 수요일 오후부터 장례식이 열리는 9월 19일 월요일 이른 오전까지 4.5일 정도의 기회 중 나는 목요일 새벽을 노렸다. 금요일부터는 지방과 외국에서도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목요일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날 밤 유튜브 줄 현황을 보다 잠이 들었다. (여왕 조문 경험담은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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