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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토끼 Jan 01. 2023

[2022 키워드] 3. 유튜브

나를 살린 유튜버들

타지에서 집을 구하느라 홀로 전전긍긍 마음고생을 한 한 해였다. 이 한 몸 누일 곳이 없다는 설움보다 사실 나를 더 힘들고 외롭게 한 건 이걸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이만한 고생이야 다들 살면서 이래저래 겪을 것이고 나만 유난히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으나 한 가지, 투정을 부리거나 신세 한탄을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보낼 가족, 연인, 심지어 친구조차 마땅치 않은 런던살이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 시기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연락했고 저녁 시간대면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많이 기댔다. 답도 없는 고민으로 끙끙대는 나의 푸념을 인내심을 갖고 들어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전화기를(혹은 노트북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이러다 진저리 치며 나를 멀리할까 두려운 마음에 참고 또 참으며 의지한 건 바로 유튜브. 두더지마냥 끊임없이 올라오는 고민과 자책에 유튜브 콘텐츠를 때려 넣었다. 그러다 정말 보물 같은 콘텐츠를 만나기도 했다. 



뭉치와 밀란이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키울 수 없는 현실에서 랜선 견주로 대리만족하게 해준 채널이 있다. 강아지 채널은 셀 수 없지만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뭉치의 개팔상팔밀란이네 시트콤. 각각 골든 리트리버와 래브라도 리트리버로 나의 '개' 취향을 반영한다. 심심할 때, 외로울 때, 우울할 때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특히나 이 동영상은 꼭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다짐을 새삼 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기다리고 반겨준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일 듯. 



위라클과 삐루빼로

잔잔한 미소와 랜선 집사로서의 기쁨을 준 게 리트리버 채널이었다면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을 준 영상들이 있다. 마치 운명처럼 내가 가장 힘들 때 유튜브 피드에 등장한 위라클. 10년 전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살아가고 있는 유튜버 박위의 채널이다. 우연히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가 그 에너지에 바로 구독하게 됐다. 상반신 중간 정도까지만 움직일 수 있는 박위는 다리를 쓸 수 없을 뿐, 너무나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하반신 마비 환자의 일상을 공유(대소변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 민망할 수 있는 내용도 거리낌없이 솔직하게)하면서 우리가 알기 어려운 장애인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장애인이 일상을 영위하기 얼마나 어려운 환경인지, 장애인 주차공간이나 배리어 프리 시설 등을 다루기도 한다. 유익한 내용인 걸 떠나, 그 긍정적인 에너지에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는 콘텐츠가 너무나 좋았다. 몸이 멀쩡한 나보다 수만 배 더 잘 살고 있다.

위라클을 구독해서인지 그 후에 삐루빼로라는 채널을 접하게 됐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최수빈의 채널이다. 그 분 역시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하다 루게릭 진단을 받고 삶이 완전히 바꼈다. 최수빈님의 일상을 담았는데 주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루게릭 환자의 투병기지만 엄마와 남동생, 할머니의 사랑과 응원이 가득 담겨 보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안소니 제셀닉

완전히 결이 다르지만 역시 나의 힘든 날들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콘텐츠다.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안소니 제셀닉(Anthony Jeselnik)은 민감한 소재를 거침없이 다루는 블랙 코미디로 알려졌는데 역시 우연히 접하고는 중독되어 버렸다. 암병동에 가서 암을 소재로 살 떨리는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음주운전 전문 변호사를 만나 음주운전 범죄자들을 변호하며 돈을 번다며 농담인 척 아주 발라버린 적도 있다. 조심스러워 보통 언급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는 스킬이 아주 고급지다. 



별 생각 안 하고 웃을 수 있는 예능 같은 콘텐츠도 자주 보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쁨이다. 유튜브 만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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