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아주 집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한 해였다. 1월에 런던으로 복귀하면서 급하게 월세를 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월세살이가 지겨워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매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게 2월이니까. 하루에도 수없이 부동산 사이트를 들낙거리며 이 집 저 집 보러 다닌 건 힘든 축에도 끼지 못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마음이었으니(내 집 마련 분투기는 여기에 자세히).
2018년 말 더블린으로 옮긴 후 현재까지 안정적인 주거지 없이 보낸 세월이 4년을 넘어간다. 더블린에서 집주인과 함께 사는 월세를 구한 게 첫 단추가 되어 그 뒤로 줄줄이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집을 사려다 엎어지면서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완벽한 선택은 없으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이미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가 아주 젬병인 분야다. (자책하면서 자기 혐오를 하는 게 항상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든다.)
지금 사는 집은 런던에서 4번째 집이다. 2020년 초에 런던으로 옮겼으니 3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3번을 이사한 셈이다. 현재 집으로 이사하고 거의 한 달을 마음을 열지 못했다. 드디어 내 집을 갖게 되고 더 이상 남의 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가구를 떠앉고 살 필요가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시 월세를 살게 되면서 들어간 집에 정을 붙이는 건 쉽지 않았다. 남향으로 나 있는 발코니에서의 뷰가 근사한 노팅힐의 집이었는데도.
하지만 꼭 집을 소유해야만 내 집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년 째 월세를 살면서도 마음에 드는 가구와 소품을 배치하며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정을 붙이고 산다. 물론 난 계속 이사를 해야했고 이미 주인의 가구가 들어와 있는 furnished 집에 산다는 점에서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다못해 마음에 드는 욕실매트도 이사 가면 사겠다고 버티고 있는 고집쟁이다.
이렇게 바보 같이 지내는 동안 본인 소유의 집이 아니어도 어떻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누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람이 있다. 『찬빈네집』이라는 에세이를 낸 찬빈이다. 에어비앤비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찬빈네집』을 보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또렷하게 보인다. 패션 아이템으로 나의 개성과 주관을 표현하듯(나 이것도 못하지..) 집이라는 공간을 나의 연장선으로 만들 수 있고 나의 가치관을 드러낼 수도 있다. 찬네집은 혼자 사는 집이지만 손님이 자고 갈 수 있는 침대가 있고 의자가 열 개나 있다고... 그에 반해 나는 밥그릇 국그릇조차 몇 개 되지 않고 서랍장이 없어 불편한데도 아직까지 옷을 정리할 가구를 사지 않고 트렁크에서 꺼내쓴다. 월세라고 내 집이 아니라 마음대로 가구를 바꿀 수 없다고 좌절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되는 것을...
집 때문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2022년이었는데 새해에는 내 집이든 아니든 집 다운 집을 만들어가는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