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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Oct 20. 2021

미니멀라이프 <=> 육아라이프

지금도 유행인지 모르겠는데 2017~2018년쯤 미니멀 라이프가 굉장히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표방하며 나와 서점에서 한 권을 손에 들고 잠시 훑어보다 별거 아니네 하면서 내려놓은 적이 있다. 난 당시의 수동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2012년 정도부터 회사 일 때문에 이사가 굉장히 잦았다. 한 나라 안에서의 이사면 모르겠는데 나라 간 이동하는 이사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있었던 터라 짐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 짐을 줄이고 나서도 또 언제 이사를 갈지 모르기에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 꽤나 신중해졌다. 그런 신중한 구매를 몇 번 하고 나니 나름 기준이 생겼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의 가격을 일 년 동안 사용하는 횟수로 나눠서 1회 사용당 비용을 계산해서 물건을 사는 버릇이었는데, 검소하게 살기 위해서 기도 했지만 그냥 물건을 사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의사 결정 과정이 귀찮아서라는 이유가 크다. 


 물론 귀차니즘은 행동에도 영향을 줬다. 생활 속에서 생기는 의사 결정도 미니멀하게 하고 선택의 폭의 의도적으로 좁혔다. 예를 들면 운동복은 무조건 나이키 검은색만 이라는 식이다. 다른 곳에서 좋고 유명한 제품이 나와도 그냥 쳐다보지를 않는다. 이런 건 다른 생활 용품을 살 때나 음식 메뉴를 고를 때도 대부분 통용됐다. 적당한 고민을 거쳐 적당한 선택지를 찾으면 그 이후에는 아예 고민 자체를 배제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아주 약간의 강박이 생겼다. 집안의 물건들을 한 가지 브랜드로만 꾸민다던가 냉장고 속 물건들의 라벨 방향을 맞춘다거나,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그러데이션에 맞춰 정리하고, 옷걸이의 방향을 맞춘다던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사라는 큰 변화가 잦다 보니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단순하길 원했던 것 같다.


혼자 살 때의 거실. 이사한 첫날 같지만. 이미 몇 달 살았을 때의 모습이다.


그런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캐리어 1개, 백팩 1개, 과일박스 하나가 내 살림살이의 전부가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과 옷걸이의 수까지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밥그릇 수저는 당연히 한 세트뿐이었으니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전기밥솥과 노트북, 밥그릇, 옷걸이 등 여행용 짐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도 포함해서 저 정도니 짐이 굉장히 적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재작년 가족들을 데리고 속초로 2박 3일 여행을 갔는데 짐이 캐리어 2개, 보스턴백 1개, 에코백 1개가 넘었다. 물론 혼자가 아닌 셋이었지만 그 차이가 참 크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혼자 살던 공간에 아내가 들어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속에 아이가 찾아오면서 아무것도 없던 집이 천천히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기 침대가 내 침대 옆에 자리 잡고, 아이 옷상자와 여러 장난감들이 거실에 놓이고, 신발장에는 큼지막한 유모차가 들어섰다. 나에게 늘 심적인 편안함을 주던 비어있던 공간에 아이 물건들이 하나씩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보다 환절기에 감기가 잘 걸리듯 살아온 환경이 바뀌는 건 그다지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사는 공간이 천천히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살짝 거슬렸다. 엄청 불편했던 건 아니지만 어떻게 정리를 해야 나름 서로의 영역이 부딪히 않을 수 있을까를 꽤나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자 더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들 물건은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아이 물건은 남자의 쇼핑법이 통하지 않는다.


아이는 뭘 좋아하는지 말을 잘 안 해주기에 우선 골라놓고 잘 사용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놓고 1~2번 쓰거나 어떤 때는 한 번도 제대로 쓰지 않고 모셔두는 물건이나 옷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 물건에 있어서는 기존에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공식을 무시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기 옷이랑 장난감 사는데 집 비좁아 질까 걱정하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까.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변화가 너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게 참 대단하다. 아이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건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다. 옷걸이 숫자까지 기억하던 사람인데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아빠는 수십 년 펴왔던 담배를 끊고, 어떤 아빠는 끼니때마다 찾던 술을 끊기도 한다. 또 어떤 아빠는 살을 빼고 평생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기도 한다. 그 아빠들이 이런 걸 처음 시도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살을 빼는 것은 단순히 어떤 행위를 하고 안 하고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활을 바꾸고 습관을 바꿔야 이룰 수 있는 목표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실패했겠지. 의지가 약했든 간절함이 부족했든 상황이 여의치 않았든 실패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그 핑계들을 무력화시킨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한 남자를 바꿔버린다. 


나 역시도 바꿨다. 담배나 술 같이 다이내믹한 건 아니지만 반대로 삶의 방식이 통째로 바꿨다. 아이 둘이 돼버린 지금 아파트 현관을 지나려면 2대의 유모차와 킥보드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야 한다. 거실과 아이방은 이미 층간소음 매트와 장난감, 그리고 아이 책이 3D 테트리스를 시작한 지 오래다. 나름 마지막 보루이자 책상 하나 덩그러니 있던 내 일 방 한편에는 아이의 과학놀이와 미술놀이 키트가 언제든 아이가 와서 만질 수 있도록 기다리고 프린트 위에는 디즈니 공주님을 프린트한 A4 용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미니멀"라이프"에 말 그대로 "라이프"라는 표현이 붙는 건 그것이 물건의 많고 적음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말하기 때문 일 겄다. 물건을 소유하는 방식에도 사람의 성향이 잘 묻어나니까. 이렇게 십 년 넘게 묵묵히 쌓여온 내 미니멀 라이프가 바닷가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어지는데 겨우 1년 남짓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썰물이 가득 차 거기 모래가 있었는지 조차 희미하다. 나름 빠르다고 하면 빠른 변화인데 이렇게 충돌 없이 자연스레 완벽하게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는 걸 보면  역시나 신기하다. 비약이겠지만 아이가 천천히 자라는데 이런 것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다. 너무 갑자기 확확 커버리면 엄마 아빠의 기존 생활과 부딪힐 수 있으니까. 천천히 자라면서 휴지에 물감 젖어들 듯 슬금슬금 아빠의 영역을 잠식하라고... 이쁜 내 새끼의 성장에 정신 팔려 바보 미소 짓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생전 보지도 못한 인형과 장난감들에게 포위당해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버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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