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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Oct 18. 2021

아빠의 취미 생활

여권을 보니 궁주를 만나기 직전인 2017년과 궁주를 만난 2018년, 이 2년 동안 한 해 평균 비행기를 탄게 60번 정도가 됐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출장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 비행기야."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횟수를 세어보면 정말 그렇다. 비행기를 많이 타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 있을 때는 집 밖을 거의 안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일 운동하는 아빠 컨셉으로 인스타도 하고 있다.

 난 해외를 오가는 생활을 제외하면 삶이 단순하다. 결혼 전 싱글일 때부터 그랬다. 흡사 시골길을 달리는 경운기 같은 느낌이다.  얼핏 보면 이동수단 같지만 농기구이기도 해서 일할 때 더 유용하고 평소 모습만 보면 동네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덜덜거리는 기계일 뿐이다. 거기나 구형 모델은 시동을 거는데도 꽤 오래 걸리는데 나 역시도 구형인지라 어떤 일에 시동을 거는 것도, 기어 변속을 하는 것도 요즘 것들에 비해서는 꽤나 품이 많이 든다. 동네에서는 나름 쓸만하고 굳이 멀리 나가자면 끌고 나갈 수 있지만 또 굳이 그렇고 싶지는 않은 게 딱 내 평소 생활과 비슷하다. 일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하면 나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슬리퍼를 털털거리며 동네는 어슬렁거리는 올드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지도 않고, 사람을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게임, 술, 담배와 같은 유흥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정확하게 말하면 어렸을 때 충분히 많이 해서 나이 먹고는 그다지... 유흥총량의 법칙이랄까...)


 이렇게 활동반경도 좁고 생활도 단순하고 게으르지만 다행히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30대 초반에는 지내던 나라마다 선호하는 운동이 달랐기에 태국에 있을 때는 축구, 필리핀에 있을 때는 농구를 일주일이 1~2번 정도 즐겼다. 이 외에도 헬스든 줄넘기든 시간 날 때 한 번씩 끄적이곤 했으니 주 3~4회는 운동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무릎을 다치고는 한동안 이 핑계로 운동을 안 하다가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골프를 시작했다. 그러다 가벼운 헬스도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에 1시간 반 정도 일주일에 4회 정도는 운동을 한다. 그리고 한 달에 2번 정도 필드에 나가곤 한다. 이런 생활이 약 3년쯤 됐다. 

 

 3년이나 주 4회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하면 꽤나 운동을 잘하고 몸도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튜브 속의 김종국 씨의 말처럼 먹는 것까지가 운동인데 난 식습관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생긴 습관이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는 걸로... 그래서 운동은 엉망진창인 식습관과 너덜너덜한 정신 상태를 복구하기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일 뿐 무언가를 개선시키기 위함과는 거리가 멀다. 너덜너덜한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수 있는데 육아는 기존의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예상되로 되지 않는 것도 많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피곤하고 힘들다. 거기에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가족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건 조금 힘든 일이다. 기존의 삶이 되도록이면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평온하게 살자 주의였기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어떤 장치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 정신건강을 위한 어떤 스트레스 해소 장치가 딱 그 정도 역할을 하는 게 운동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 몇 년간 빠져있는 건 골프다. 운동 자체로써 칼로리 소모 등이 어떻게 되는지를 떠나 골프라는 운동은 스트레스 해소에는 꽤나 좋다. 공을 때리는 행위도 그렇지만 필드에 나가면 몇 시간 동안 잔디를 밟고 걸으면 확실히 머릿속이 느슨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공이 그날 스코어가 안 좋거나 내용이 안 좋으면 스트레스를 더 받기도 하는데, 난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느리지만 꾸준히 실력이 늘고 있어 지난 달이나 작년을 생각하면 내용도 비교적 만족스럽기에 아직 스코어를 욕심 낼만큼 실력이 좋지 않다.  뭐 스코어 자체에 엄청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어떤 칼럼에서 본 건데 골프는 약간 도박과 비슷한 한 점이 있다고 한다. 돈을 오가서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오잘공" 때문이다. 오잘공은 '오늘 제일 잘 맞은 공"의 줄임말로 보통 드라이버 샷이 시원하게 잘 맞아서 쭉쭉 뻗어주면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오잘공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또 어떤 날은 안 나오는 날도 있는데 이게 잭팟 터지는 것과 비슷한가 보다. 잭팟도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 그래서인지 운동을 마치고 오면 뿌듯한 느낌이 드는 헬스와는 달리 오잘공이든 뭐든 맘에 드는 샷이 몇 개 나오는 날이면 골프는 뭔가 신나고 흥분된다.


필드를 나가는 건 좋은 만큼 부담이 되는 취미다


 그런데 이런 골프는 아빠가 즐기기에는 꽤나 큰 단점이 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필드에 라운드를 가려면 반나절 이상을 통으로 비워야 한다.(스크린 골프도 3명 이상 모이면 오며 가며 4시간 이상이다.)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골프 라운드는 5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라운드 30분에서 1시간 전에는 골프장에 도착을 해야 한다. 골프장이란 건 부지의 넓이 때문에 시 외곽이나 지방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동에도 1시간 이상 소요가 되는 경우가 같다. 그렇다 보니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하면 최소 7시간에서 많으면 10시간 이상 필요하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 둘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서 10시간 동안 취미생활을 하러 가려면 많은 조율이 필요하다. 


 우선 둘째를 내가 데리고 자니까 둘째가 자는 시간을 피해야 하고, 아내가 약속이 없는 날이어야 한다. 거기에 가능하면 첫째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시간이 좋다. 라운드에 필요한 8~9시간에서 어린이 집 6시간 정도를 빼면 3시간 정도가 비는데 그 사이에 잠시 아내를 도와주실 장모님의 양해도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을 맞춰놓고 나면 골프장 예약을 하려고 하면 하늘을 찌르는 골프의 인기 덕분에 예약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을 다 거쳐서 골프장을 다녀와서 육아에 시달린 아내와 장모님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골프장에 다녀오고 나면 늘 내가 주창하고 다니는 공동육아의 기본인 동일한 자유시간이라는 내 머릿속에 남는다. 난 기본적으로 공동육아의 기본은 누가 아이와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얼마만큼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내가 하루 8시간의 자유시간을 보냈으니 신나게 놀고 왔다면 아내에게도 어떻게든 비슷한 시간만큼의 자부 시간을 확보해줘야 하기에 그 스케줄 조절도 다시 숙제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골프 관련 커뮤니티나 친구들 모임에서 하면 열심히 일을 했다는 이유나 그래도 주말에 하루 정도는 아이와 놀아주니 하루 정도는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냐는 이유를 대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는 아빠들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속 한 켠에서는 나만 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주변을 보면 애 아빠 애 엄마들도 골프도 다 잘 치러 다니고 친구들도 잘 마시고 다니는데 우리만 이렇게 복잡하게 사나 싶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했으니 놀아도 된다는 이유를 대자니 일에 비해 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고, 그렇게 육아가 별일 아닌 게 돼버리면 아이와 주말 하루 놀아주는 것 역시도 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이 되기에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들고나면 왠지 모를 찝찝함에 마음 가는 대로 할 수가 없다. 그냥 내 방식대로 열심히 아내와 내 시간을 조율해서 둘 다 자유시간을 갖거나 둘 다 안 갖는 게 편하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취미생활은 이렇다. 평소에는 잘 가지고 놀지도 않던 장난감을 누가 만질라치면 확 채가는 아이처럼, 싱글일 때, 아이가 없을 때는 그냥저냥 즐겼던 것들인데 지금은 참 간절하다. 이전처럼 내 마음대로 즐길 수가 없어서 그렇고, 또 한편으로는 이전과는 달리 꼭 필요한 시간이라 더더욱 그렇다. 가족과의 시간 아이와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남자는 들어가 처박혀 있을 동굴이 필요한 동물이다.  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에게 필요한 동굴이 술과 게임기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운동 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반나절 정도 친구 만나서 놀면서 술 마시러 갔다 올께는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누가 시키지 않고 나 혼자 보는 눈치라고 하지만 아빠 육아의 기본은 체력이니까. 체력 단련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 그래도 내 취미는 조금은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아내에게 다음 달에는 언제 또 필드 나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또 나가냐고 혼나면 투털 대면서 헬스장 가야지...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싱글 남녀, 또는 결혼을 했더라도 아직 아이가 없는, 또는 임신 중인 부부가 있다면...

많이 노세요. 이제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될 때 한번 더 노세요. 그러고 나서 이불 속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더 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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