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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Sep 30. 2021

흥 총량의 법칙

춤 좀 추는 게 뭐가 어때서~

 최근 인스타그램을 자주 하고 있다. SNS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해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지 올리는 피드마다 좋은 댓글도 많이 달리고 공감되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 꽤나 즐기고 있는데, 나름의 규칙으로 첫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사진은 가능하면 올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피드의 대부분은 둘째의 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둘째의 피드가 몇 개 올라가면 첫째 이야기도 하고 싶어 지기에 예전 사진들을 찾아 올리곤 한다. 얼마 전 태국에서 딸과 같이 밥을 먹다가 춤을 추는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몸을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면서 무릎을 굽혀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는 춤인데 별거 없는 동작이지만 작은 아기가 하니 나름 귀엽고 볼만하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런 동작은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들은 사랑받는 법을 이미 알고 태어나는구나 싶다. 그 영상을 속에서 나도 아이와 똑같은 춤을 추는데 그걸 보신 몇몇 분들이 '아기가 아빠를 닮아 흥이 많네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아빠 입장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날 닮았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고 감사한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흥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다. 내재된 흥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로 표현했을 때 넉넉하게 잡아줘봐야 한 2~3 정도 되려나. 어렸을 때부터 20년 가까이 혼자 살아서 그런지 난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느낌을 즐기지 못한다. 어쩌면 애당초 성격이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회식 자리 등이 있어 노래방이라도 갈 일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도 도망치기 바빴다. 행여나 끌려간다고 해도 노래를 부르거나 즐겨본 적은 없다. 부끄럽기도 하고 귀찮다.(물론 자리 때문에 즐거운 척을 한 경우는 있다. 살면서 한 4번 정도...) 옆에 앉은 이들이 흥에 취해 신나게 노는 걸 보면 '굳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경우가 많았으니 약간은 염세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내 MBTI가 INTJ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딸과 목욕을 하다 말고 뛰쳐나와 엄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이 가득한 백화점에서 딸의 손을 잡고 왈츠를 추고 있었다.

 차를 타면 자연스레 동요나 만화 주제가를 틀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 노래는 가끔 허락 안 받고 부르면 딸에게 혼나기 때문에 허락을 받고 불러야 한다. 노래방에서 자기 노래 아닌데 후렴구 크게 부르면 좋은 소리 못 듣는 건 본능인가 보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신동엽 씨의 유흥 총량의 법칙처럼 흥 총량이 법칙이 적용도는 것 같다. 흥 총량의 법칙이랄까. 다른 곳에서 흥을 전혀 내보이질 못하니 그걸 꾹 모아뒀다가 아이 앞에서 미친 듯이 터트리는 느낌이다. 미친 듯이라는 표현이 과할지 모르나 와이프가 종종 한숨을 쉬며 "저 사람 왜 이래..." 라거나 "누가 볼까 겁난다..."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일반적인 범주는 아닌가 보다.(보통 그러면 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우리가 부끄럽냐!!!" 라며 반항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 앞에서만 이렇게 흥이 솟구치는 걸까?


  당연히 아이가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게 보기 좋고 재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를 재밌게 해줘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도 느낀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의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이들과 놀면서 그 정도 감정은 느끼지만 그렇다고 쇼핑몰 한가운데서 춤을 추진 않는다. 하지만 부모들은 다르다. 아이들이 노는 걸 볼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같은 부모가 아니라면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부모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확실히 있다.(반대로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주변인으로써 아이의 귀여운 행동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귀여움 사랑스러움이라면 부모의 감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아이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자부심과 뿌듯함이 올라온다. 아이를 키우며 고생했던 순간의 감정이 함께 피어오른다. 이 감정은 꽤나 깊이가 있고 육아의 고통과 거의 비례한다. 간혹 4살짜리 어린아이의 춤 동작을 보면서 육아의 첫 번째 관문인 배앓이 때의 고생까지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떠오르곤 하는데 그러면 달달한 수박에 짠 소금을 살짝 뿌리면 더 맛있어지듯 아이를 보며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확 커진다. 그리고 미소와 함께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가에 살며시 눈물이 맺힌다. 이런 내 일련의 감정 변화의 중간 어딘가에 흥을 터트리는 스위치가 있는 것 같다. 예쁘다고 느끼는 순간을 지난 후 환희 순간에 걸쳐있지만 아직 눈물까지는 가지 않는 그런 어딘가.

 

 한편으로는 육아가 힘들어서 흥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달리다 일정 고통 수준을 넘어가면 엔도르핀이 나오는 러너스 하이 같이 말이다. 육아는 인터벌 트레이닝이다. 어떤 때는 빠른 속도로 뛰다가 어떤 때는 조금 천천히 걷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같은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거기에 육아는 결승점이 보이지도 않는다. 가끔 세상에는 결승점과 내 무덤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흥이라는 엔도르핀이 필요한 것 같다. 근무 중에 한 모금 마시는 커피처럼, 그리고 달리다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처럼 육아의 열기를 식혀줄 그런 무언가가 흥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육아의 고충들 때문에 흥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율로 따지면 역시나 아이들과의 시간이 즐거워서라는 이유가 70~80%는 차지한다. 그와 동시에 육아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혹시나 아이와 노는 시간에 생각보다 흥이 안 나거나 신나게 리액션을 할 수 없는 아빠(여기서 아빠는 보조 양육자를 말한다.)가 있다면 혹시나 자신이 육아 자체에 그다지 참여를 하지 않는 건 아닌지 고민해보시길. 

 만일 엄마(여기서 엄마는 주양육자를 말한다.)가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들을 봐도 흥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 누군가에게 다 떠 맡기고 잠시 쉬어가시길.

 이도 저도 안 되는 분이라면 제가 정말 맛있는 커피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군요.



글을 쓰면 보통 사진을 몇 장 곁들이는데 이 주제에는 차마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사진들 뿐이네요. 

아쉽습니다. 


대신 인스타에 올렸던 춤추는 영상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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