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허브, 그리고 실 이야기
2년 전, 나는 게임에서 네 살 어린 동생을 만났다. 나는 아직까지 그의 이름은 모른다. 아마 세 번 정도 듣기는 했을 것이다. 어쨌든 까먹었다. 그 아이의 닉네임은 ‘마데’ 였고, 우리는 한 두 판 게임을 같이 하다가 친구추가를 해서 ‘친구’가 됐다.
마데는 자신의 방이 없다. 그래서 거실에서 컴퓨터를 한다. 우리는 음성채팅을 통해 게임을 한다. 음성채팅을 사플(사운드플레이: 적의 발소리, 움직임 소리 등을 통해 위치를 대략 알 수 있음)과 브리핑(서로에게 적의 위치나 본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을 위해 효율적으로 게임을 한다. 마데의 방이 없다는 것은 개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고, 집안에 일어나는 모든 대화를 내가 반강제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날도 나는 게임을 하다가 강제적으로 부자간의 대화를 들어야 했다. 마데의 아버지가 마데에게 컴퓨터를 써야 하니 비키라고 하셨고, 마데의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마데의 몫까지 열심히 플레이해야 하는 나는 정신없이 게임을 하다가 마데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 왜 가만히 서 있어?”
그러자 마데가 대답했다.
“내 자리가 없잖아.”
아버지가 마데에게 짜증을 부리는 소리가 오갔고, 뭔가를 던지는 소리가 났다. 음성채팅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강제적으로 컴퓨터 선이 뽑혔을 것이다. 10분 뒤 게임이 끝났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마데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피시방에서 봐요.”
잠들기 전, 마데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친한 친구 레나는 내게 말했다. 게임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러 가냐고, 위험하다고 극구 반대했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를 무릅쓰고 만나러 갔다. 굳이 마데가 위험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사람들에게 지쳐있었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더 위험하게 했다. 나는 사람이 너무 싫었지만, 사실 사람이 고팠다. 단지 그뿐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자연스럽게 피시방으로 가 게임을 했고, 저녁을 먹고, 다시 게임을 했다. 서로 별 대화가 오가지 않았는데도 재밌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마데는 우리 지역까지 왔다. 고작 게임을 같이 하기 위해서.
다음 날, 피시방에 도착하니 마데가 있었다. 그 옆에는 ‘슈퐁이’가 있었다. 슈퐁이와 마데는 서로 다른 게임을 하면서 손을 풀고 있었다. 본격적인 게임이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듯 다른 게임으로 손을 푸는 것이다.
슈퐁이는 내가 처음 이 피시방에 왔을 때 매일 구석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항상 혼자서 음성채팅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며 게임을 했다. 나는 혼자 게임을 하며 반강제적으로 대화를 듣게 됐고, 혼자서 ‘오늘은 싸우고 있네, 어제까지 화내더니 오늘은 사이가 좋네.’, 등의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슈퐁이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당황해서 쳐다보자 저랑 같은 게임 하던데 같이 게임 한 판 하자고 했다. 얼떨결에 알았다고 했고, 그날 닉네임도 알았다. ‘슈퐁이’
슈퐁이는 게임 로그인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처음 본 사인데도 어찌나 친근하게 말을 걸던지. 매일 남자친구랑 같이 게임을 했는데, 남자친구가 자기보다 게임을 못 해서 자꾸 진다는 얘기를 했다. 승률이 떨어지는 게 싫었던 슈퐁이는 남자친구와 게임을 같이 해주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오늘 삐쳐서 같이 게임 할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실력을 키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이야기하며 나와 게임을 하던 슈퐁이는, 네판 째가 되었을 때 그 수다스럽던 입이 점점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랑 게임을 하는 내내 자꾸 졌다. 4연패. 슈퐁이는 나와 게임 실력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나 때문에 지고 있었다. 멋쩍게 웃는 나에게 슈퐁이는 인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고 귀가했다. 솔직히 나는 게임에 소질이 없다. 그 후 피시방에 오는 내 친구 레나와, 몇 달 뒤 우리 지역으로 찾아오는 마데와 함께 플레이하며 셋은 친해졌다. 내가 없을 때도 셋은 자연스레 피시방에 모여 게임을 한다. 나를 통해 알게 된 세 명이, 게임을 제일 못하는 내가 없어야 승리를 하기에 셋이 모여 게임을 제일 편하게 한다. 웃긴 상황이다.
“야!”
게임을 하던 마데와 슈퐁이가 내가 부르자 동시에 돌아봤다. 왔어? 하고 동시에 하던 게임으로 시선을 돌린다. 게임을 할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슈퐁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게임을 켜고 있었다. 게임이 끝나자 둘이 동시에 헤드셋을 벗고 나에게 인사했다.
“어, 왔어?”
“빨리도 인사한다. 남자친구는?”
“이제 남자친구 아니거든? 남편이거든. 일주일간 출장. 허브도 가지고 갔어. 완전 자유. 나 오늘 밤샐 거야.”
슈퐁이는 작년에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나는 자꾸 잊어버리고 남자친구라고 불렀다가, 수정한다. 슈퐁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자주 싸우면서, 결혼을 하고 싶냐고 내가 묻자 슈퐁이는 그래도 얘가 나를 제일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슈퐁이는 이때, 허브와 가족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슈퐁이는 키워준 은혜에 대해 몇십 년 동안 들어왔으니 차마 이제 당신들 때문에 힘들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뭐, 사회 통념상 그렇게 말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어긋나니 으레 다들 겪는 일들일 것이다. 그저, 가족에게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 가져온 허브에 질려버린 슈퐁이는 결혼을 도피처로 선택했고, 좋은 남편과 잘살고 있다. 좋은 남편이란 슈퐁이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남편을 뜻한다. 슈퐁이가 뭘 하든, 그저 슈퐁이의 편이 되어 조용히 응원해주는 것을, 그녀의 남편은 할 줄 알았다. 그것이 슈퐁이가 선택한 이유였다.
허브에 질려버린 슈퐁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한 지 10개월이 됐을 때 새로운 허브를 데려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기함을 했지만, 슈퐁이는 확신에 차 이야기했다. 내가 선택한 허브를 함께 하는 것과 가족이 선택한 허브를 강제로 돌봐야 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게임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마지막 플레이어가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레나.’ 레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항상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커피를 사 온다. 급식실에서 배식하듯 순서대로 나눠준다. 마데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슈퐁이의 바닐라라테, 내 아메리카노, 다시 본인의 바닐라라테를 순서대로 꺼내 마우스에 방해되지 않게 왼손 쪽에 둔다. 우리는 여전히 화면만 쳐다본 채 고맙다고 이야기하는데 딱히 그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자리를 물티슈로 한 번 깨끗이 닦은 후, 이 플레이어는 가방에서 본인의 마우스, 키보드, 헤드셋을 꺼낸다.
레나는 언젠가부터 일면식도 없는 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지낸다. 이 피시방에서 레나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마데와 레나가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인사만 대충하고, 게임을 했다. 둘의 플레이 스타일은 상호보완적이었기에, 둘은 금세 친해졌다. 레나가 집에 가려고 짐을 싸는데 마우스, 키보드, 헤드셋을 레나가 가방에 넣는 것을 보고 마데는 너무 놀랐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마데는 레나가 도벽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레나는 항상 본인의 장비를 가지고 다닌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탓한다 .’이다. 게임을 할 때는 자기 손에 맞는 마우스가 필요하고,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의 감도 또한 중요하다. 새로운 윈도우가 시작될 때마다 마우스의 감도를 설정해줘야 한다. 민감한 정도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조정하고, 화면의 밝기도 조정하고, 키보드와 헤드셋 세팅이 끝나면 본격적인 게임준비가 시작된다.
레나는 원래 이 정도로 친하진 않았다. 오히려 피시방에서 같이 게임을 하며 친해진 것 같다. 원래 레나는 커피를 좋아하기에 카페를 더 자주 갔다. 항상 바닐라라테를 시켰다. 이게 그렇게 맛있냐고 하면, 그냥 뭘 선택하고 고르는 게 귀찮다고 했다. 이 카페에서 제일 먼저 시켰던 것이 바닐라라테고, 그래서 계속 시켰다. 레나는 딱히 카페에서 뭘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가끔은 책을 보고, 다이어리를 쓸 때는 자주 있고,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본다. 나는 앞에서 과제를 하다가 레나에게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너는 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여기 와서 해?”
레나는 그날 날이 좀 서 있었다.
“너도 집에서 과제 하면 되잖아. 왜 여기서 하냐?”
나는 레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저자세로 들어갔다.
“아니…. 집에서는 공부가 안되니까….”
레나는 본인이 예민했다고 생각했는지 펼쳐놓은 다이어리를 덮고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나도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돼. 아무도 없어도 눈치가 보여. 뭘 하고 있어도 죄를 짓는 것 같아. 눈치가 자꾸 보여. 방 안에서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의 주인공들한테 몰입하기도 전에 집이 주는 특유의 공기가, 자꾸 나는 허브향이 나를 깨트리는 기분이야. 집중할 수가 없어. 거실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피곤해서 이어폰을 껴도 방문 앞을 지나가는 발소리는 볼륨을 올려도 들려. 엄마가 가져온 허브가 가끔은 날 너무 힘들게 해. 사실 자주 힘들게 해. 이제 허브 때문에 힘든 건지, 자기가 가져와 놓고 나한테 허브 좀 보라고 강요하는 엄마 때문에 힘든 건지도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도 피시방을 가니까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레나는 그 뒤로 더 이상 집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는데, 뭔가 이전보다 더 친근하게 대했다. 본인의 고민을 털어서인지, 나에게 치부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들켜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벌써 7년을 아는 사이가 됐다.
그 이야기를 한 후 레나는 카페를 더 자주 갔고, 언젠가부터는 내가 같이 가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더 편해 보여 나는 굳이 레나에게 맞추지 않고 다른 카페로 갔다. 레나는 늘 창가에 앉았기 때문에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레나를 찾았는데, 야근을 한 날도 카페 마감 시간까지 꼭 맞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할 텐데도, 눕지도 못하는 낮은 테이블과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오히려 더 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루 중 유일한 휴식시간인 것 같았다.
이 공간, 피시방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평소에는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도 왠지 이 공간에 들어서면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헤드셋을 끼고 있으므로 자기 목소리가 큰 줄 몰라 그런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들 본인의 모니터 속 게임캐릭터를 보기 바쁘다. 그래서 남이 시끄럽게 떠들든 말든 온전하게 나의 또 다른 자아에 집중하게 되고, 평소에 신경 쓸 시선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들이 없기에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한다.
가끔은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이크 너머로 누가 들어도 허풍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공간에만 오면 평소보다 입이 걸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레나는 후자이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욕을 달고 게임을 했는데, 술에 취하면 평소보다 욕을 배로 했다. 이 공간에서 레나는 술을 안 먹어도 취한 상태이다. 어쩌면, 그때의 레나가 제일 편한 상태인가보다 생각했다. 그 자체로도 레나는 레나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면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욕을 하는 때도 있고, 상대 팀을 욕할 때도 있다. 상대 팀을 욕하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누가 봐도 우리 팀의 누군가가 못 해서 지고 있지만 우리 팀 욕을 할 순 없을 때, 혹은 너무 이기고 싶을 때이다.
어쨌든 레나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이 공간을 찾는다. 마우스와 키보드와 본인의 장비를 굳이 집에서 챙겨 올 바엔 집에서 똑같은 컴퓨터로 하면 되는 게임을, 굳이 이곳에 와서 한다. 여기서 레나는 집에서는 못하는 욕을 편하게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레나에게 이곳은 때론 노래방보다 스트레스가 잘 풀리는 곳이다. 욕이 주는 중독성이 있나 보다. 노래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7단 고음을 하는 것보다, 이기고, 팀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친해지는 게 더 행복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게임 중독은 있는데 노래 중독은 없나 보다. 게임 중독이라는 말을 제일 처음 만든 사람들은 어쩌면 욕을 미친 듯이 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10시 이후에는 미성년자들이 이 공간에 오지 못하게 막아 놓은 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때, 게임이 시작되었다.
FPS 게임을 하면 레나와 마데의 목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레나는 제일 게임을 잘하기에 계속해서 브리핑한다.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반면에 마데는 팀이 지고 있을 때는 조용하고, 팀이 이길 때는 엄청나게 시끄러워진다. 한 번은 연속해서 게임을 졌을 때 마음을 비우자고 다 같이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파이팅을 하자고 했다. 당연히 우리는 무시했고, 슈퐁이만 받아주었다. 큰 목소리로 둘이서 몇 번을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파이팅을 하는 바람에 피시방 사장님이 쪽지를 보냈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이럴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서 나는 마데가 나대는 게 싫지만, 사실 가끔 보기 좋을 때도 있다. 남들을 웃기려고 일부러 웃긴 이야기를 준비해오고, 성대모사를 하고, 남들이 웃을 때 반응을 살피며 그 표정을 보고 웃고 떠드는 걸 보면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창피하다. 이럴 때마다 쪽팔려 죽겠는 건 사실이다.
처음에 마데가 우리 지역으로 왔을 때, 우리끼리 하는 ‘허브’ 이야기에 혼란이 왔었다고 했다. 초반에 낯을 가리던 마데는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게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허브가 뭐에요?’
나는 놀라 마데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허브도 몰라? 너희 집엔 없어?”
게임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을 오프라인으로 하니, 마데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당황한 마데가 쳐다보자, 레나가 대변해줬다.
“쟤네 집엔 안 키우나 보지.”
나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마데에게 슈퐁이가 이어서 설명해주었다.
“대개 집에 하나씩 있잖아. 책임질 필요도 없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가족이 돼서 구성원 중 누군가는 도맡아야 하는, 허브.”
아, 하고 이해한 마데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지역에서는 집마다 ‘스투키’를 키운다고 했다.
“가끔 걔가 주는 낙이 있긴 한데 뭐 저도 지쳐서 들어왔을 땐 감당이 안 되기도 해요. 나도 밖에서 힘들게 들어온 상황인데 다들 스투키만 챙길 땐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레나는 “워낙 까다로워야지.”하고 이야기했고 그때 슈퐁이는 한 번 더 결혼 얘기를 꺼냈다. 본인은 허브 때문에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마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브. 그래 맞다. 우리는 허브 때문에 더 빨리 친해진 경향도 있다. 모든 집에 거의 다 있는 허브는 이렇게 편한 사이가 아니면 허브에 대해 불평을 하기 힘들다. 그건 정말, 가족이기 때문에, 구성원보다 더 가족이기에 남의 집 허브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 남의 집에 놀러 가면, 허브가 있는 방의 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나이가 좀 어린 허브는 안녕, 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 기분 나빠 하는 구성원들이 있으므로 그냥 존댓말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 있는 것이다. 집에 허브가 있으면 최대한 볼일만 보고 나오는 것이 또 다른 예의다. 보통 허브는 아주 예민하니까,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 이런 예민함 때문에, 허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많다. 요새 정신과에서는 진료 하기 전 설문 문항에 어떤 허브를 키우는지, 몇 개 키우는지를 적으라고 한다고 한다. 왜 이런 스트레스를 사서 할까. 그래도 이 허브는 구성원의 누군가에겐 사랑이고, 사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함께 돌본다. 현대 사회에서 허브를 키우지 못하는 집은 구성원들의 능력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집의 허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허브는 생명이 없지만, 생명이 있다. 가끔은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가족과 함께 나를 검열할 때도 있다. 나는 맏이라는 이유로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허브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레나는 막내지만 허브를 맡고 있다. 슈퐁이는 허브 담당이 아니었다가 스무 살부터 허브 담당이 되었다고 했다. 어릴 때야 왜 내가 허브 담당이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제 허브를 맡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한 것을 안다. 구성원 중에는 허브를 맡고 있지 않으면서 허브 담당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허브 담당은 본인도 모르게 구성원의 담당이 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왜 우리가 허브를 맡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피곤해진다. 그냥 우리는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구성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허브를 도맡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조금 더 죄책감에 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허브 담당임을 알게 됐고, 그래서 알 수 없는 연대감이 생겼나 보다.
후반 게임이 시작되기 전, 대기시간이 시작됐다. 모든 게임에는 대기시간이 있고, 이 짧은 1~2분 남짓의 시간은 약간의 쉬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긴장감이 맴도는 시간이다. 보통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러 가고, 전반 게임 내내 참았던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자투리 시간이다. 게임 내내 손도 못 댔던 레나가 사 온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자 헛소리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마데가 슈퐁이에게 화두를 던졌다.
“누나, 결혼하니까 좋아요? 나도 결혼이나 할까.”
마데도 요새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요새 집에서 키우는 허브, 본인 지역에서는 스투키,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마데는 친구들이 많아 사람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한다. 누구와도 금세 잘 친해진다. 그런데도 외로워한다. 나는 마데의 집에 어떤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거나, 스투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오히려 친구들을 안 만나고 이곳으로 온다. 굳이 친구들 놔두고 왜 여기까지 오느냐고 묻자 마데는 대답했다. 그럴 때 친구들을 만나거나 술을 마시면 눈치가 보인다고. 남들 다 키우는 허브인데 고작 허브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나약한 나를 인정하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마데는 힘들 때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친구들보다는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에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의지하나 보다.
슈퐁이는 대답했다.
“사는 게 갑갑해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누구나 한 번씩은 있지.”
레나는 “난 없는 것 같은데.”라고 했다.
슈퐁이는 이어서 결혼한다고 모든 게 다 바뀌지는 않지만, 행복하긴 하다고 했고, 마데는 뭘 어떻게 해도 지금보단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했으면 우리는 필히 제14회 불행올림픽을 열었을 것이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 풀어지고, 나약해지고, 이 중 누가 더 불행한지 얘기한다. 서로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서로를 위로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처음에는 너는 나보단 낫지 식으로 힘든 이야기를 했다가, 위로해줄 때도 있다가, 서로가 편해진 이제는 서로 각자 힘든 이야기만 한다. 술이 몇 병 비워지면 술을 마시는 공간은 집단적 독백이라는 우울한 구름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우리는 더 편한 사이끼리는 술자리를 지양한다. 지금 이 공간에서 이야기하면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도 게임캐릭터가 아이템 하나 못 먹은 정도의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나의 불행보다 게임캐릭터가 아이템을 하나 못 먹은 것에 더 괴롭고 양옆에 앉은 이들이 공감해주기 때문에, 막상 현실 속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열심히 게임을 하고, 나는 귀가 했다.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짐을 다 싸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들고 갈 수 없는 침대와 책상, 쌓인 짐들이 보인다. 눈을 감고 거실에서 나는 TV 소리에 집중하고 눈을 떴다. 방이 지저분해 보인다. 이곳저곳에서 실이 보인다. 실과 실 사이에는 매듭 뭉치들이 엉겨있다. 실의 끝을 따라가 본다. 거실로, 화장실로, 창문 밖으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 이 공간을 떠난다.
내 마음속에는 풀지 못한 응어리들이 엉겨있다. 그 응어리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빨간 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줬을 때, 그런데 그 상처가 생각보다 오래갈 때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7살 때, 거실의 소파 위에서 내가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소파만 보면 그 말이 생각나 소파를 피해 빙 둘러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소파 위에 실 하나가 길게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10살 낮, 17살 밤, 18살 저녁이 쌓여갈수록 실은 하나둘 쌓여서 갔고 엉켜 눌어붙어 있다가 더 이상 풀 수 없게 묶였다.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했다. 거실, 화장실, 작은 방, 현관, 허브 방, 베란다 등 실이 안 보이는 곳이 없었고 나는 내 방안에 갇혀 문을 닫았다. 실이 보이면 자꾸 답답해지고 옛 기억들이 나를 괴롭혀서 열기 싫었다. 나에게 이 공간은 얽히고설킨 그런 것들이 공기, 소리, 온도,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실, 매듭, 실뭉치가 보인 순간부터 예민해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공간의 근처만 가도 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공간이 있는 동네도 가기 힘들어졌다. 허브가 없이 혼자 내 방에 누워있어도 공간 구석구석 실이 묻어있음이 보였다. 어쩌면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 가득 채워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잊고 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새고 새어 나오다 끝끝내 내 방마저 가득 차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이 공간이 너무 불편해진다. 편하지 않고, 그 많은 매듭이 가슴을 꾹 누르는 것처럼 답답하다.
처음엔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다니면서 알았다. 나만 보이는 건 아니었구나. 그래도 다들 어렸을 때 보이다가 잘 풀어내고 지냈다고 한다. 구성원들이 도와주면 쉽게 풀린다고 했다. 나는 안 풀고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생겼다. 가끔 엉킨 실타래의 보풀들이 옷에 묻어 밖으로 나온다.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와 남들에게 보이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참 숨고 싶었다.
공간의 벽지 무늬 사이사이로 삐져나온 실과 실들이 엉켜버리고, 어느 순간 뺄 수도 없이 묶여버렸다. 나는 아주 어릴 적, 아이일 때부터 한두 개 정도 보이긴 했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잘 견뎌내는데 나만 못 견딘다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어른스러워서 그런 생각까지 한다고 대견해 했다. 그런 실들은 어릴 때는 다 보인다고, 크고 나면 다 없어진다고 했다. 나는 어른스럽지 않았다.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냥 눈치로, 어른스러움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아이가 아닌 척했다. 그 결과 이 공간과 내 방에는 실과, 매듭과, 거대한 실뭉치가 가득 찼다. 자라면서 그것들은 더 단단해지고, 구성원들에게 나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이따금 보이는 매듭이, 응어리들이 너무 많이 보일 때는, 감정들이 제어되지 않아 악이 받쳐 사방으로 튀어나온다. 그런 날은, 우리 구성원들한테는 내가 잘살다가 갑자기 구성원들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럼 구성원들은 얘가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왔는지, 친구를 잘 못 사귀고 있는지,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와서 이 공간에서 화풀이하는 건지, 이제 편하다고 막 대하는 건지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들은 꽤 오래전부터 묶여있던 것이다. 구성원들이 당황해하는 순간 결국 사과는 내 몫이다. 인제 와서 이 실뭉치들 좀 봐라, 어떻게 풀 것이냐고 따지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아무도 내 탓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에게 이 공간은 언젠가부터 나의 탓을 하고 자책하게 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구성원들이 바빠 집이 더러워져도 내가 부지런하게 치우지 않아서가 되어버렸고, 집을 들어왔을 때 냄새가 나도 내가 제때 음식물을 버리지 않아서가 되어버렸다. 허브에 벌레가 꼬이거나 시들시들해지면, 스트레스는 배로 쌓인다. 아무도 내 탓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구성원을 탓하기 시작하면 내 안에는 분노만 쌓인다. 이 공간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그래서 행복하다. 행복의 기준을 아직 나는 모르지만 내 탓을 해서 괴로운 것보다 지금이 훨씬 좋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주머니 속에서 엉켜버린 이어폰 줄처럼 꼬인 실들을 풀고 싶었다. 매듭을 풀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 봤다. 생각보다 단단히 묶여 풀리지 않았다. 미루고 미뤄 뒀던 과거의 나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다가, 이건 나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니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내 탓은 그만하자. 나는 공간을 옮겨보기로 했다. 구성원들은 나에게 너는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다. 그런 말들이 또 다른 실이 되어 다시 꽁꽁 묶는다. 매듭이 지어진다. 나는 발에 매듭이 가득한 실들을 감은 채로 공간을 옮겼다. 이 공간만 아니면 그래도 좀 낫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러니까 나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맞서 싸우는 거다.
우리는 굳이 게임 때문에 친해진 건 아닌가 보다. 언젠가 다 같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이야기 나눴을 때 다들 각자의 집에서 보이는 실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얼마나 보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집에 실뭉치 정도는, 매듭 정도는 보며 살아간다고 했다.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듣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위안이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단히 묶이는 매듭을 보며 걱정이 가득할 때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과 매듭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밖에 갖고 나가면 독이 된다. 약점이 될 때도 있고, 감정에 취해 남발했다가는 구설에 오르고 좋은 안줏거리가 된다. 몇 번 데이고 나면 매듭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당히 숨기는 법도 배운다. 숨길 것도 아니고 약점이 아닌 것도 안다. 하지만 귀찮아지고, 선입견이 생기고, 꼬리표가 생기는 것은 아주 성가신 일이다. 숨기는 방법은 쉽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밝게 웃으면서 다니면 된다. 튀어나오는 실오라기들을 몇 분마다 한 번씩 점검하며 주머니에 꼭꼭 넣어주면 된다.
슈퐁이는 어렸을 땐 친구들에게만 실과 매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고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부끄러워하며 집이 더럽지? 라고 했고, 슈퐁이는 깨끗한 집을 보며 더럽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너한테는 말한 적 없구나, 했고 그 뒤로 친구가 실에 관한 얘기를 했다고 했다. 친구는 그 뒤로는 슈퐁이를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슈퐁이는 정작 자신의 집에는 그런 실을 보지 못했는데, 친동생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친동생이 가끔 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집을 들어오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살아오던 슈퐁이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안 보이던 실뭉치들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가 보이자 두 개가 보이고, 수도 없이 보이며 한동안 많이 힘들었단다. 친동생을 이해하고 본인도 어느 순간부터 집을 잘 안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도 슈퐁이는 어느 순간 이겨냈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면서 위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매듭이 풀리진 않지만 매듭 위에 다른 것들이 덮여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슈퐁이는 이겨냈지만, 이제 슈퐁이는 친구들 집에 잘 놀러 가지 않는다. 이제 사람과 대화만 몇 마디 나눠봐도 얘네 집에는 실의 털오라기 하나조차 없겠구나 싶은 사람이 보인다고 했다. 그런 집은 재수 없다. 기분 나빠서 절대 가지 않는다.
레나는 어차피 이 실과 매듭들도 내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늘 내게 말했다. 이 공간 자체도 너고, 이 매듭들도 너니까 인정하고 살면 편해진다고 했다. 레나는 본인이 매듭을 풀려고 한 적이 있었고, 잘 풀린 적도 있었다고 했다. 구성원이 오랜 기간 앓아온 레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실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매듭이 많이 풀렸다고 했다. 그래도 새로운 실은 생긴다. 그래도 레나는 한번 매듭을 풀고 나니 더 단단해졌다. 예전보다 많이 당당해 보인다.
마데는 아직 매듭을 안고 산다. 매듭을 풀려고 했는데 더 꼬여서 삐뚤어진 마음이 더 커진 게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 그냥 그 매듭들이 꼴도 보기 싫어 아예 잊고 산다고 했다. ‘전의 상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마데는 실 끝을 따라 가봤지만, 이미 곁에 없는 이들이 매듭만 남겨 놓고 떠났다고 했다. 어떤 실의 끝은 허브 방으로 향해 있다고 했다. 어떻게 풀겠어요? 냉소적인 웃음으로 그냥 포기했다고 했다. 오히려 포기가 내 마음에 더 나을 때도 있다고, 나름 저도 살려고 이렇게 선택하는 거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는 살아내기 위해 풀기도 하고, 풀지 않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피시방에서는 이런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들 모니터만 본다고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집에서 묻어나온 실이, 가끔은 매듭이 통째로 튀어나와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흘긋 보고 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서로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나 보다. 우리는 다들 처음 만났을 때는 실과 매듭이 덕지덕지 묻은 상태였다. 서로 그것들이 보이진 않았지만, 익명이라는 말에 기대 이것저것 털어놓았다. 그럴수록 실, 매듭, 그러한 뭉치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서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는 귀가하는 내 공간보다 편하다.
가끔은 이 작은 실조차 이들이 알아버리는 것이 싫은 날들이 있다. 자존심, 귀찮음, 지침, 어떤 감정이 들어서 괜히 위로도 듣기 싫은 날이 있다. 그냥 이들이 나를 걱정하는 게 싫을 수도 있겠다. 그럴 때는 레나는 카페로 향하고, 슈퐁이와 마데는 내가 모르는 각자의 공간으로 갈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름의 리듬이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들켜도 되는 이곳으로 모인다. 그러니까, 이곳은 이 매듭들을 얼기설기 엮은 채로, 주렁주렁 매달고 여길 와도 괜찮은 날에 다 모인다. 굳이 매듭들에 관해 물어보지 않는 사이가 편하다. 내키는 이는 매듭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먼저 얘기를 꺼낸다. 그래서 좋다.
오늘은 내가 이 동네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다. 다들 피시방으로 모였다. 마데는 아마 오늘 오기 싫었나 보다. 인상을 찌푸리고 모니터도 켜지 않고 앉아 있다. 의자를 한껏 뒤로 빼고 눈을 감고 누워있다. 그냥 내가 마지막 날이니 오긴 했는데, 나오는 길에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보다. 웬만해서 눈치를 잘 보지 않는 슈퐁이까지 눈치를 보고 있다. 실이 저렇게 주렁주렁 나와 있는 걸 보니 스투키나, 매듭의 문제일 것이다.
레나가 커피를 들고 들어오며 차례로 하나씩 놔뒀고, 마데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널브러뜨려 놓은 실 때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마데는 눈을 천천히 뜨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누나가 정리 좀 해서 주머니에 넣어줘요.”
그러고 마데가 컴퓨터를 켰다. 계속 옆에서 눈치 보던 슈퐁이는 그제야 안도하며 같이 웃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가볍게 웃으며 여전히 모니터만 본 체하던 게임을 계속한다. 우리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귀가하고 싶어도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실 집은 있지만, 그 공간에는 실과 매듭과 허브가 있어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있고 싶지만 함께이고 싶을 때 게임이라는 가벼운 핑계로 이곳을 찾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