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멀어지는 관계가 생긴다. 평생 친하게 지낼 것만 같던 친구, 피를 나눈 형제자매와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생긴다. 어릴 땐 몰랐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는 언제든 멀어질 수 있다는 걸. 계속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를 믿고 살았다.
요즘 부쩍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 게 인간관계란 말을 들을 때면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이 명문대 진학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에 비하면 명문대 진학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한 인간은 하나의 우주와 같단 생각을 하곤 한다. 크기 제한은 없다. 무한대로 커질 수도 작아질 수 있다. 내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 적 있는가? 난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한땐 삶은 나만의 정원을 가꾼다 생각하곤 했지만 한 단계 진화했다. 이왕 상상하는 거 미지의 세계인 우주로 만드는 게 좋았으니. 내 우주엔 다양한 행성이 존재한다.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50개 정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행성은 우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여기선 안될 것도 못할 것도 없다. 뭐든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글쓰기 행성. 책 읽기 행성. 등산 행성. 자전거 행성 등.. 내 마음대로 만들어 놓는다. 좋아하는 것들과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로. 나만의 우주. 없앨 수 있는 것도 나, 만들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뿐이다. 행성엔 취향과 가치관이 가득 담겨있다.
이렇듯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이 만나 원활히 소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개성도 취향도 다른. 가끔가다 비슷하다 느끼는 이를 만나도 그건 일부일 뿐. 그래서 요즘은 인간관계에 있어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인간은 하나의 우주고 무수한 행성들을 품고 있는 존재. 그 행성들이 날 당황스럽게 할지라도 이 또한 이 사람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일도 그만두기로 했다. 양방향이 아닌 한 방향의 노력으로만 이어지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으니. 과거의 추억에 힘이 있다 믿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고 추억엔 힘이 없었다. 관계를 이어지게 만드는 힘은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었다.
오늘도 내 우주엔 하나의 행성이 만들어졌다. 과거란 행성이.
대표 사진 : Photo by Vladimir Fedoto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