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안녕히 계셔요
지원과 면접을 거듭해 원하던 직무에 취업했지만 2일 후 다시 백수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로 "나 취직했어!"와 "퇴사했어!"를 말하게 될 줄이야.
집과 가까운 거리. 도보로 편도 20분. 빨리 걸으면 15분이면 도착하는 곳. 규모는 작지만 일단 배우고 이직하잔 생각이었다. 면접 시 연차를 사용할 수 있냐 물었고 미리 말하면 쉴 수 있단 대답이 돌아왔다. 이때 더 꼼꼼히 했다면 이 에피소드는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출근 2일 차, 점심시간이 지나고 계약서를 쓰기 위해 앉았다. 근로계약서 쓰잔 얘기를 한 것도 서식을 준비한 것도 나였다. 사장은 지금까지 직원들이랑 계약서 안 쓰고 서로 믿고 일했음을 말했다. "전에 일하던 직원도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안 쓰고 그냥 일했어요. 월급은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챙겨 줬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전 취업지원제도 담당 상담사님한테 계약서 제출해야 합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데 그럼 써야죠 뭐" 그렇게 준비된 표준 근로계약서. "본인한테 유리한 쪽으로만 작성했네요?" 란 반응이 돌아왔다. '연차'에 관해 작성된 항목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법적으로 5인 이하 기업엔 연차가 적용되지 않으며 이는 사장의 재량이다. 사장이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고 싶으면 안 줘도 되는 것. 그게 5인 이하 회사에서 연차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물론 직원의 입장에선 받고 싶은 것이고. 난 '직원'의 이름으로 연차를 요구했다. 면접 시 사장이 말했던 "미리 말하면 쉴 수 있죠"란 말을 언급하며 어영부영하는 것보다 확실히 계약서에 작성해놓는 걸 원함을. 하지만 그는 미리 말하면 쉴 수 있다 했지 연차가 있단 말은 안 했다며 이건 빼잔다. 빼자는 측과 넣자는 측. "안 줘도 되는 걸 주고 싶진 않아요" 란 말로 끝났다.
"~씨, 버스 타셨어요?" "아뇨, 무슨 일이신가요?" "계약서 관련해서 다시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다시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게 가능했으면 아까 얘기할 때 조율됐지 않을까요?" "아.. 아니 사실 아버지가 하도 ㅈㄹ해서요" "ㅇㅖ????????????"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의심스러웠을 만큼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내가 잘못 본건가 싶으셨으리라. 맞다. 욕이다. 비속어가 '아버지'란 단어 뒤를 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취급하는 품목에 대한 영업을 담당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통화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는 부모에게 '멍청하다' 'ㅅㅂ, 알지도 못하는 게' 'ㅈㄹ하네' 등 온갖 폭언을 일삼았다. 적잖은 충격을 선사하는 상황.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신기함을 넘어 놀라웠고 어떤 심리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궁금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 물론 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빨리 나오길 잘했다. 아닌 건 아니다. "사장님 말씀처럼 근로계약서 안 써도 되는 분이 계실 텐데 그분이랑 같이 일하시는 게 더 편하실 듯합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그렇게 끝났다.
많은 게 변했지만 이런 회사는 아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