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시원하지 않다. 냉장실 안쪽 벽면에 성에가 꼈다. 오래 방치된 성에는 냉장실 선반까지 단단히 붙잡을 정도로 두꺼워져 있었다. 냉동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냉장고 전원코드를 뽑고 안에 있는 반찬, 식재료, 물을 모두 꺼내 근처에 두고 선반을 꺼낸다. 투명한 선반에는 뭔가 흘렀다가 말라붙은 자국,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머리카락 한 가닥, 그리고 고춧가루가 있다. 성에를 제거하는 김에 이것들도 모두 씻어야겠다. 냉장실 바닥에 죽어있는 날벌레들도 물티슈로 쓸어내고.
내용물들을 모두 꺼낸 뒤에는 성에를 제거하는 동안 생긴 물이 사방에 흐르지 않도록 수건을 깐다. 냉장실과 냉동실에 각각 한 장씩 깔아준다. 준비는 다 됐다. 칼은 부러질 위험이 있으니, 가위로 성에의 가장자리를 내리찍는다. 설명서에는 성에를 제거할 때 가위나 칼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만 더운 날 밖에 나와 있는 반찬들을 보면 그러지 않기도 어렵다. 냉장고에 흠집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한다. 꽝꽝 얼어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루처럼 갈려 나오다가 시간이 지나 조금 녹은 후에야 큰 덩어리로 떨어진다.
팔이 아파 잠깐 쉬다가 부수다가 쉬다가 부수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한 시간 정도 지나있다. 더 걸릴 때도 있다. 냉장실 아래에 깔아둔 수건이 녹아 흘러내린 물로 흠뻑 젖었다. 역시 한 장으로는 부족했구나. 싱크대 앞에서 수건을 꼬아 물을 쭉 짜내고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새로운 수건을 한 장 꺼내서 미처 흡수되지 못한 채 냉장고 바닥 틈으로 흘러버린 물을 닦아낸다. 먼지와 끈적이는 것들이 같이 닦여 나온다. 이제 이 수건은 수건으로서의 생명을 다했다.
성에가 사라진 냉장고를 보니 어쩐지 조금 뿌듯하다. 이 방에 살게 된 첫날에 봤던 냉장고의 모습 같다. 어쩐지 내 마음에 빈 곳이 생긴 듯 개운하다. 후, 깊은숨을 내쉰다. 마지막으로 물티슈로 한 번 더 닦아준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아니,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고무 패킹 사이의 찌든 때가 눈에 띈다. 닦는 김에 거기도 꼼꼼히 닦아준다. 얼룩을 지운 선반도 넣어주고 반찬과 식재료도 차곡차곡 넣어준다. 다시 냉장고 전원 코드를 꽂는다. 이제 끝! 다 됐다! 하고 바닥에 벌러덩 누워있으니 처음 원룸에서 혼자 살게 됐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이 자주 상하고 채소들이 금방 물렀다. 이상했다. 음식을 오래 두고 보관할 수가 없었다. 집에 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 어느 때 냉장고를 열어도 반찬, 과일, 채소들이 멀쩡했는데. 냉장고가 왜 제 기능을 못 하지? 용량이 작아서 그런가? 왜 이런 냉장고를 사용하라고 설치한 거지? 하던 대로 게으를 틈을 주지 않는 냉장고를, 냉장고를 관리하려면 신경 쓸 일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마음을 누가 알아줬으면 해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원룸 냉장고가 작아서 그런지 음식이 빨리 상해요. 집에 살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에요.
금세 서너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원룸 냉장고는 원래 그렇다면서. 그런데 그중 한 명만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ㄴ집에 살 때는 엄마가 관리했겠지.
왜 내 불편함을 인정해 주지 않아? 라는 마음이 비죽 솟아오르면서 한 편으로 이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모네 가족이랑 7년을 살았다.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빨리 먹어라.
반찬 해놨는데 왜 안 먹노?
함께 사는 동안 이모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이모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떨 땐 짜증이 섞여 있기도 했다.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라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지금은 딱히 먹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먹으라고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으로 삼키고, 잔소리처럼 들리는 이모의 말은 흘렸다. 냉장고와 그 안에 있는 음식, 재료들에 대한 책임이 내게는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모의 재촉을 모른 척할 수 있었다.
이 반찬은 언제 만들어진 건지. 얼마나 냉장고에 있었는지. 쉰내가 나지는 않는지.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는지. 채소는 아직 싱싱한지. 물이 생겨 무르지는 않았는지. 썩진 않았는지. 반찬통 배치는 어떻게 할지. 냉장고 문짝에 손자국이 남지는 않았는지. 내부 선반에 뭔가를 흘리진 않았는지. 어떤 재료를 먼저 사용해야 할지. 어떤 재료가 부족한지. 아직 사용할 수 있는지. 이 모든 일들을 이모 혼자만 떠맡고 있었다. 이모부를 포함해 나머지 식구가 여섯 명이나 되었는데도 냉장고의 사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이모 한 사람뿐이었다.
냉장고 용량과 성능에 따라 보관기간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어도 처음의 신선도를 유지한 채로 영원히 썩지 않게 만드는 냉장고는 없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반찬이 멀쩡하고 채소와 과일이 신선했던 건 내가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이모가 ‘살림’을 했기 때문이다. 깨끗이 빨아놓은 행주로 냉장고를 닦고, 제때 먹지 않아 상해버린 음식과 재료를 버리고, 시장과 마트를 돌며 장을 보고, 새로 사 온 식재료로 냉장고를 채우는 일을, 내가 보지 않아 없다고 생각했던 노동을 이모는 매번 했다.
이모의 노동을 먹는 줄도 모르고 먹고 자랐다는 걸 이 댓글을 읽고서도 한참 뒤에 깨달았다. 이모뿐만 아니라 엄마와 할머니들의 노동도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웠다.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면 나를 먹여 살리는 노동이 반찬의 형태로 냉장고를 꽉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