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라피 Jan 18. 2023

당신은 '진짜' 개를 사랑하시나요?

#5. [당신은 '진짜' 개를 사랑하시나요?]


오전 05:30분. 주말에 어울리지 않는 기상 시간이었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서 원반을 가방에 넣는 내가 이상 했는지, 꾸롱이가 옆에서 한참 나를 쳐다봤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일을 벌이고 있구만' 하는 눈치였다. 그 날은 훈련 대회에 꾸롱이와 처음 출전하는 날이였다. 남들은 관심 없겠지만 나와 꾸롱이에겐 나름의 역사적인 그런 날. 훈련사라면 대회 커리어를 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하던 그 시기쯤 우연히 훈련 대회 공고를 보게 됐다. 그것도 무려 내가 사는 수원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선물해준 꾸롱이와 나의 일러스트.


대회 종목도 나와 꾸롱이가 좋아하고 자주 즐겨하던 프리스비(원반을 개와 주고 받는 도그 스포츠) 대회였고, 마침 꾸롱이와 나도 원반에 자신감이 붙었을 쯤이였다. 연습을 하면 거의 10개중에 1-2개 말고는 모두 성공적으로 잡았으니 말이다. 거기다 집 근처에서 대회라니. '망설이는 건 사치야. 얼른 접수해.' 한번쯤 나가보라고 대회를 열어준 신의 계시인듯 했다. 큰 고민 없이 대회에 출전 접수를 했고, 아무런 욕심없이 꾸롱이와 즐기고 오자는 생각은 머리로 했다. 하지만, 몸으로는 쓸데없이 혼자 진지하고 알 수 없는 비장한 상태가 됐다. 


여전히 평소랑 다른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꾸롱이를 쓰다듬으며 대회하는 모습을 상상을 했다. 오전 7시:30분. 꾸롱이를 차에 태우고 대회장으로 출발했다. 중요한 일일수록 일찍 출발하는 습관은 여전했다. 15분쯤 달려 대회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넓은 잔디 공원을 빌려서 웅장했다. 대회장을 점검하는 스태프들과 일찍 도착해서 대회장 적응을 시켜주는 출진자들과 개들이 눈에 띄니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출진자 최민혁, 견명 꾸롱이요. 



먼저 대회 출전 대기표를 받는 본부석으로 가서 출전표와 기념 티셔츠를 받았다. 아뿔싸. 괜히 입었다. 그걸 입고나니 더 비장해졌다. 나와 꾸롱이가 출전한 종목은 총 5개의 종목 중에 스포트 노비스 부분. 대회장엔 대회 규정이 맞추어져서 라인들이 그어져있다. 1점, 2점, 3점, 5점. 멀리갈수록 높은 점수이며 각 점수마다 칸이 있다. 점프를 뛰어서 원반을 잡으면 귀엽게도 0.5점이 추가 된다. 주어진 1분이란 시간 동안 원반을 던지는데, 개가 원반을 문 지점에서의 포인트를 환산한다. 즉, 멀리 있는 곳에 가서 점프로 가장 정확하게 빨리 여러번 문다면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간단해보이지만 호흡이 잘 맞는것이 가장 중요했다. 1라운드와 2라운드가 있고, 1라운드에서 상위에 든 팀만 2라운드로 진출하고 합산한다. 


대회 전에 연습했을 때 나는 그 동안 대회들 결과표에서 항상 입상권이었어서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 출전표를 받는데 출전 순번이 46팀중 7번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지' 즐기러 왔다는 대회는 어느새 온데간데 사라졌다. 처음오는 장소지, 가뜩이나 보호자는 비장하지, 어언이 벙벙한 표정인 꾸롱이를 차에서 내렸다. 대회장에서 떨어져 나와 천천히 주변을 돌면서 대소변을 보게하고, 켄넬에 꾸롱이를 다시 넣고 기다렸다. 이제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금방 내 순서가 다가왔다. 내 앞에 있는 팀이 너무 잘해서 떨림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숨을 한번 크게 내뱉곤 몸을 쭉 펴서 긴장 된 몸에 피가 돌게 했다. 속으로 소리쳤다. '화이팅!' 속으로 한거지만 난 지금도 꾸롱이에게 이 말이 전달 됐다고 믿는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서 꾸롱이를 앉게 시키고 줄을 풀렀다. 


여기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원반을 물어오라는 걸 눈치챈 표정이었다. 원반을 오른손으로 잡고, 손을 들었다. 출진자가 준비 됐다는 신호로 이 때부터 1분 카운트가 들어간다. "타임 스타트." 심판의 1분 카운트 다운 시작 사인이 마이크를 타고 전해져왔다. 힘껏 원반을 던졌다. '흡! 아...!' 평소보다 원반이 확연히 낮고 빠르게 던져졌다. 긴장을 해서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힘이 들어가면 원반은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개들도 받기 어려워진다. 원반은 무엇보다 힘을 빼고 스냅으로 던져서 개가 보면서 뛸 수 있고 안전하게 물 수 있도록 잘 던져줘야 하는데, 평소 안하던 실수를 했다. 꾸롱이가 속으로 '이 오빠 갑자기 왜 이렇게 던져' 하는 눈치였다. 1라운드 때는 평소보다 훨씬 못 던졌는데도 2라운드를 진출했다. 아쉬움과 안도감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감정이 교차하는 오묘한 순간이었다. 2라운드가 들어서서는 몸이 조금 풀렸고 훨씬 긴장이 덜 됐다. 2라운드에서 원반을 던질 때, 옆쪽에서 구경하던 모르는 사람이 "와 왜이렇게 잘던져" 소리가 귀에 들어와서 조금 으쓱했던 걸 보면 말이다. 결과는 21.5점으로 46팀중에 7등을 했다. 대회를 여러번 나온 팀들이 대다수였는데 첫 출전에 꾸롱이와 나는 선전했다. 주변에서도 첫 대회에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잘했다고 해주어 첫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꾸롱이와 출전한 종목 말고도 무려 5개 종목이나 더 있었고, 총 120여팀들이 서로 멋지게 호흡을 맞췄다. 인스타그램으로만 소통하던 분들과도 인사하고 꾸롱이의 실물 영접으로 반가워 해주시는 분들도 많아 대회에 막바지가 될 수록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대회는 오후 늦게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고생했고 잘했어~"


대회장에서 꾸롱이와 나.



고생한 꾸롱이를 쓰다듬고는 차에 있는 켄넬에 들어가게 했다. 집으로 가기 전 대회장 구석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가던 참이었다. "퍽, 낑!" 분명했다. 개가 무언가에 맞아 아파하는 소리였다. 구석진 화장실 뒷편에서 났다. 고개를 쭉 빼서 나는 슬쩍 보았다. 대회장에서 멀리서 보았던 낯에 익은 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 있는 보호자와 개였다. 일면식도 없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자주 올리고 좋은 추억을 많이 쌓는 모습을 좋게 봤던 집이었다. 소리의 정체는 원반으로 개가 머리를 맞고 낸 소리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쉽게 대회 입상을 못해서인듯 했다. 순간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히 그 사람이었고, 인스타그램 속 개였다. 언젠가 함께 웃으며 즐겼을 원반이 무기가 되는 것은 보호자의 마음 변화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화장실 구석으로 데려온 것으로 보아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택한듯 했다. 나는 일부러 "여기 보는 눈 있으니 그만해요."라는 말을 기침으로 대신했다. 거짓말처럼 개의 낑소리가 멈췄다. 화장실을 얼떨떨하게 보고는 집으로 향했다. 꾸롱이와 첫 대회보다 순간적으로 원반을 맞은 개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한번도 맞아보지 않은 개들은 무언가로 때리는 시늉을 해도 "?" 하는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다. 한번이라도 맞아본 개들은 분위기만 감지되도 행동이 달라지는데 많이 맞아본 개의 얼굴과 몸짓이였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화장실 뒷편만은 아니였다고 말하고 있는듯 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인스타를 열었다. 내가 참가한 대회 후기들을 보고 있었다. 쭉 보다보니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 뒷편에 그 보호자와 개였다. 대회가 끝나고 찍은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사진의 뒷배경이 훤히 날아간 걸 보니, 비싼 카메라로 찍은게 분명했다. 사랑하는 자신의 개와 대회에 출전해서 행복하고 좋다는 내용이 담긴 인스타 포스팅이 올라와있었고, 댓글에는 보기 좋다며 응원의 댓글도 같이 있었다.


그 글을 보고 잠시 나는 멈춰 생각을 했다. 나를 멈춰세운 건 고화질의 사진도, 정성 가득한 글들이 아니라 하나의 단어였다. '사랑' 그 사람은 정말 개를 사랑한 것인지, 사랑하는 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과 달라서 글을 쓸 정도로 아직 그 장면이 선명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개를 사랑한다는 말이 말이 무거워져 들을 수 없는 무게로 느껴졌다. 호기심 많은 내 친척 동생 준연이는 항상 '왜?'라는 질문을 했다. 드라마 속에서 연인이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대사를 내뱉으려 싸우는 장면을 보고 준연이는 "형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질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나는 대답을 곧바로 해줬는데 그 질문에는 나는 답이 막혔다. 그 질문에 이제는 유치원생에서 해병대 군인이 되버린 준연인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확실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저마다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그 드라마 속 두 남녀도 사랑이 서로 달라서 헤어진 것 같다고 말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정말 다양한 개와의 사랑을 보았다. 훈련사라는 직업으로서도, 개가 그냥 미치도록 좋은 한 사람으로서 개와 함께 하는 사람을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봤고, 많은 사람들은 개를 사랑한다고 했다. 처음 일했던 위탁 훈련소에 수개월 간 개를 맡기고 사랑한다며 간식이며 목줄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면회를 오더니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개를 버렸다. 그 사람들은 개를 사랑한다고 했다.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비만이 되서 걷지 못해 허리 디스크와 합병증이 온 개에게 매일 치즈케잌빵을 사다주는 아주머니를 봤다. (놀랍겠지만 슈퍼에서 파는 사람 치즈케잌이다.)  그 사람도 자신의 개를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여럿 사람을 물어 응급실에 실려가게 한 전력도 있는 심각한 공격성을 가진 개가 있었다. 교육을 위해선 의미 없는 과잉 보호가 조절이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항상 예뻐하기만 했다. 그 사람은 개를 사랑한다고 했다. 동물병원에 일하는 동문들에게도 들었다. 자기가 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며 동물병원에 올 때마다 자랑을 늘어놓는다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수술비가 조금만 올라가면 개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물론 그 사람들도 개를 사랑한다고 했다. 세상엔 어쨌든 그들이 표현하기로 사랑 받는 개들이 많다. 그뿐일까. 유기견 보호소에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개들이 있다. 언젠가 그 개들의 보호자였을 사람들은 개들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이 많을까,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 사람이 더 많을까. 모르긴 몰라도, 사랑을 원하는 눈빛을 보면, 어렴풋이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봤던 개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은 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개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맞다는 믿음도 보인다. 사람은 그깟게 사랑이냐며 뺨이라도 날리는 사람도 있고 헤어짐을 통보하기도 하지만, 개들은 버림을 받았던 개들도 손을 내밀면 퇴근 길에 온 힘을 다해 꼬리를 쳐주기도 한다. 가끔은 눈물이 나도록 바보 같고, 저런 생명체가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 아프지만, 개들은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을 합리화하기 가장 쉬운 존재다. 그 방식이 어떻든 다음 날이면, 대부분 보호자를 향해 힘껏 꼬리치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반려견 교육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에게 "개를 이해하세요"라고 하지, "사랑하세요" 하지 않는다. "개를 사랑한 적 있나요?"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네"!" 하고 자신있고 신이나게 답하지만, "개를 이해해신 적 있나요?" 하면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그 대답의 공백은 이해해본 사랑이 아니였을 수도 있고, 일방적인 사랑임을 그 짧은 순간 깨달아서 일 수도 있다. 사랑이란 뭘까. 수 많은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사람들도 사랑을 정의하진 못하기 때문에 감히 나도 하나로 정리할 순 없다. 하지만 개들과 가까워지며 적어도 사랑이라고 생각한 모습은 몇 개 있다. 개가 싼 대소변을 인상 찡그리지 않고 치우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고 걷지도 못하며, 고약한 냄새가 나도 아무렇지 않게 안아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싫어하는 모습을 가끔씩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고, 나는 만족하지만 개들에게 해가 될 걸 아는 것을 멈추고 참을 수 있는 것. 그것들은 그래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싶다.


당신은 개를 사랑하는가, 이해하는가. 개들은 당신의 사랑을 원할까. 이해를 원할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사랑보단 이해가 먼저 나왔으면 좋겠다. 욕심인 줄 알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것이 나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길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싸움을 하지 않는 투견, 메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