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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Nov 29. 2021

책을 몇 시간째 읽는 거야?

나도 좀 읽자~

튼튼이가 이제 만 9개월이 되었고, 주변 아기들과 비슷하게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본인도 취향이 있는지라, 아무 책이나 쳐다보진 않는다. 어느 책은 뚫어져라 보다가도 어떤 책은 휙 던져버린다.


나와 남편이 책으로 만난 인연이고, 인생에서 책을 떼어낼 수 없는 것이라서 튼튼이도 그래 주었으면 했다. 런데 이렇게 많이 보기 시작하니 왜 우리 부부의 체력이 동이 나는 걸까?


8개월이 됐을 때였을까? 튼튼이의 책을 정리할 3단 책장을 거실에 들였다. 아홉 칸 중에 딱 한 칸만 차지하던 수십 권을 책으로 처음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 자기 직전까지 모든 책을 대여섯 바퀴는 돌리고 자는 걸 알게 됐다.

책이 모자란가 보다 싶어서 소전 집을 몇 질을 들여주면서 어느덧 네 칸이 책으로 채워졌다. 그 와중에 9개월이 되었을 때는 잠이 와서 눈을 비비면서 짜증을 내면서도 열 시까지 계속 책장 앞에서 떠나질 않는다. 책장에서 직접 책을 꺼내와서 내 앞에 털썩 앉는데(그 책을 읽어달라는 뜻) 안 읽어주고 다시 책장에 꽂거나 모른 체하면 소리를 꽥 지르며 보채기 시작한다.


나도 (내) 책이 읽고 싶다!


퇴근 후 두세 시간 아기 보드북만 읽다 보면 나중에는 지쳐서 생기 없는 목소리로 로봇처럼 책을 읽어주고 있다. 


나도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서 당연하게도 지루하다. 거기에다가 아기들은 같은 책을 몇 번을 반복해서 본다. 전혀 지겨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정적이며 좋아하는 책을 또 보는 것에 흥분 상태가 된다.


요즘 내 책상에는 내가 읽지 못하고 사둔 책들이 꽂혀 있다. 아기 낳으면 봐야지 하고 준비해뒀던 최신 책들. 몇 페이지 읽어보지도 못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퇴근하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싶다. 1년에 몇십 권은 거뜬히 읽었던 나인데, 올해는 10권도 못 읽은 것 같다.


아기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주는 재미를 대신 느껴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아주 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쟁이들은 알겠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은 보통 책을 고르고 분석하는 재미도 느낄 줄 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지는 못 하지만, 튼튼이가 읽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서 아기를 관찰한 뒤, 지금 시기에 필요한 적절한 책을 구매해준다. 많은 엄마들의 책 후기를 살펴보면서 우리 튼튼이에게도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 판단해보고, 새 책이든 중고 책이든 집에 들일지 말지, 이런 류의 고민과 생각을 하며 지낸다.


의외로 이 과정에서 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전집 브랜드의 책들도 직접 살펴보고 이 전집을 사줄지 말지 고민한다. 가성비 좋은 소전 집을 보면서 이 전집이 정말로 가성비가 있는지 판단한다. 중고서점에 꽂혀있는 단행본을 몇 권씩 사 와서 튼튼이가 이런 책도 좋아할지 나름의 테스트도 해본다.


그렇게 내가 알차게 만들어가고 있는 튼튼이의 책장.


웬걸, 내 책장을 가꿀 때는 이렇게 한 권 한 권 공을 들이지 않고 일단 사서 읽고 꽂아두었었는데. 최근 거실에 들인 튼튼이 전용 책장에 꽂힌 책들은, 그 책을 사기까지 나의 고민들이 다 녹아어서인지 더 애틋하고 정이 빨리 들어버렸다. 한 권 한 권이 다 소중해!

독서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열정을 어쩌다 보니 이런 생산적인 방향으로도 풀 수 있게 된 점은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래도 엄마가 되기 전, 카페에서 나무늘보처럼 늘어져서 커피 한 모금 물면서 책장을 넘기던 여유로움이 그립긴 하다. 언제쯤 다시 생길 수 있을까? 아득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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