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부탄 국왕의 사진
요즘 가장 핫한 해외 여행지가 어딜까 묻는다면 ‘부탄’이라고 답할 이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탄에 다녀와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하고, ‘한국인 방문의 해’로 여행비 절반을 깎아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부탄. 하지만 외국인에게 여행을 개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히말라야의 은둔 국가 부탄은 사실 우리들에게 그리 알려진 정보가 없다. 그저 많은 사람들은 부탄의 신비함이라는 기표를 가지고 헬조선의 고통스런 기의를 잊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나도 그랬다.
일단 해발 고도 2,200미터 파로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조종사는 계기착륙인 아닌 시계착륙을 위해 긴장한다. S자로 휘어진 계곡을 지나칠 때 승객도 바짝 언다. 그렇게 착륙한 공항에서 우리를 처음 마주하는 것은 부탄 왕 내외의 사진. 왕축 집안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37)이다. 그의 왕비와 왕자가 함께한 아주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다. 마치 우린에게 ‘행복한 나라 부탄에 잘 오셨습니다’ 인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왕과 정이 들어버렸다. 그는 가는 곳 곳곳에서 나타났다. 대합실에도, 커피숍에서도, 호텔에서도, 방에서도 만났다. 그는 이 나라 어느 곳에도 있었다. 그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곳도 없을 것 같았다. 세상 다녀 본 곳 중 이렇게 최고 권력자의 사진을 빈틈없이 곳곳에 걸어 둔 곳을 보지 못했다. 문득 베냐민이 생각났다.
아우라라는 권력
아우라는 오직 세상에 하나만 있는 진품에서만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고도로 밀집된 예술 노동의 결과물이다. 권력은 그러한 것을 좋아했다. 전당을 지어 그런 물건들을 수집해 전시했다. 대중들은 그런 물건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아우라를 보며 권력의 위대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복종했다. 이것이 바로 발터 베냐민이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기술한 아우라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광적으로 미술품을 모으고 전당을 지은 히틀러와 나치를 죽도록 미워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랬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그들에게 붙잡히느니 자살해 버렸다. 그는 히틀러를 아우라에 사로잡힌 독재자로 일찌감치 규정했다. 그리고 그 독재에 맞설 무기로 제안한 것이 사진이다. 기계 복제되는 예술. 원본이 필요 없는 무한 복제되는 그런 예술. 그리해 원본만이 갖는 아우라가 붕괴되어 버린 예술. 그것이 사진이었다. 민주적이며 대중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기에 독재의 이데올로기에 맞설만한 무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회 곳곳에 특정한 인물의 사진이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다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사진이 왕의 권위를 벗기는 역할이 아닌 시각으로 인식을 지배하는 세뇌가 되어버린다. 왕은 당신의 어느 것에서도 지켜보며 왕의 신민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지 감지하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매우 선하며, 사심없이 백성을 사랑한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윤리적인 갈등까지 느끼게 할 것이다. 물론 많은 부탄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 왕의 자리를 내놓고 권력을 국민들에게 내놓았다. 2008년, 왕추크 가문이 왕에 오른지 100년만에 입헌국주국으로 전화한 것이다. 또한 왕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연금 생활자를 택했다. 현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은 아버지에 이어 그런 순수한 이미지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외부자의 정보 부재로 인한 편견일 수 있다. 실재로 부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진을 통해 느끼는 행복
현재 전 세계에 왕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5개국 밖에 없다. 부탄은 영국과 인도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반독립 상태를 유지하지만 옆의 네팔처럼 언제 왕정 자체가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감이 있었다. 4대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축(62)은 저개발과 빈곤, 자원부재 등을 안고 언제까지 가문을 이어나갈지에 대해 고민했고, 결국 쇄국 대신 개방을 선택했다. 하지만 개방은 결국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직면할 것이기에 왕조 100주년에 맞춰 입헌국주국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 판단은 2008년 있었던 첫 총선에서 왕당파인 부탄평화번영당(DPT)이 전체 47석의 하원의석 중 90%가 넘는 44석을 차지하며 완승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렇다면 왕은 정말 권력을 국민들에게 이양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왕당파인 DPT가 집권기간 동안 왕과 마찰을 빚자 이번에는 야당 인민민주당(PDP)이 2013년 실시된 총선에서 과반 의석 획득에 성공,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PDP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4대 국왕 싱계에게 누이 4명을 한꺼번에 시집보낸 전총리 싱가이 응게덥이다. 그는 부탄의 전형적인 지주 집안으로 가난한 농부들의 땅을 빼앗듯 사들여 부를 축적해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다. 물론 부탄에는 여러 정당이 있지만 이 둘이 사실상 전부이며 모두 왕당파들인 것이다.
4대 왕 싱계와 그 아들 5대왕 남기엘은 사실상 그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는 권력을 여전히 누린다. 물론 간접 지배 방식일 뿐이다. 특히 4대왕 싱계가 주창한 국민행복지수는 현재 부탄 국민을 한데 모으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도무지 비교할 대상을 알지 못하는 대다수 농민 백성들에게 행복하냐고 묻고는 스스로 1위라는 이 방식은 실제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행복지수 평가 97위라는 결과와 큰 차이가 있다. 사실 부탄은 문맹률 35%, 도시 실업률 30% 이상, 영아사망률 1000명당 33.9으로 외견상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무상교육이라지만 그건 초등학교뿐이고, 소수 엘리트들만이 대학에서 유학까지 지원 받는다. 정치 참여는 대학 이상 졸업자만 가능하다. 무상의료 역시 우리네 보건소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탄 국민들 91.2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답변했다. 물론 이에 대해 외부인이 ‘사실 당신은 행복 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행복한 국왕의 사진을 보며 왕의 행복한 백성으로 소박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이의를 건다면 문화상대주의의 혐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 하지만 부탄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외부와의 접촉에 점점 눈을 뜨고 있다. 특히 도시 젊은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으로 힘겨워하며 호시탐탐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군대도 없고, 경찰력을 동원한 폭력적 지배가 존재하지 않는 부탄에서 이들을 통제할 유일한 방법이 사진 이미지를 통해 국민을 행복에 취하게 한다는, 사진 아우라라는 아이러니함을 발견한다. 베냐민이 살아 돌아와 부탄을 방문한다면, 저 해맑게 웃는 국왕 사진이 뿜어내는 저 선한 권력의 아우라를 뭐라 해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