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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엽 Aug 15. 2020

미술관과 다큐멘터리 사진

수용과 한계

요즘

한국사회에서 미술관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공공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으며, 사립 미술관의 존재도 미미했다. 이것이 최근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일반의 소득의 증대와 여가, 문화적 욕구의 증가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건축 붐은 이러한 요구와 맞물려 전국에 문예회관 또는 아트센터라는 이름의 건축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시설 안에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이 만들어졌으며, 유화와 사진의 다양한 기획전이 아이들 방학 중에 경쟁적으로 열렸다. 이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관람료 수입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본다면 미술관과 사진은 최근들어 매우 만족스런 파트너쉽을 유지한 듯 보인다. 하지만 맨눈으로 보이는 이런 현상들을 미시적인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땐 많은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일단 미술관과 사진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장르적인 디테일을 더해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기원

미술관의 기원을 알아보자. 미술관이 인류 역사 내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의 산물이다. 절대왕정 당시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 예술품 컬렉션 붐이 일었고, 자신의 공간에 미술품을 배치해 같은 계급들 사이에 돌려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아주 가끔 일반에 공개했다. 이유는 미술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력과 위상을 확인시키는 자리였다. 미술이 계급적 본질에 충실하다는 존 버거의 이야기는 완전히 타당하다. 이것이 부르주아 혁명으로 공공성을 띠게 된다. 왕과 타락한 귀족의 재산은 몰수 되었고, 공공의 근대 미술관으로 재탄생된다. 미술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민권을 획득했지만, 그 계급적인 본질은 여전했다. 절대 권력이 부르주아에게로 이양되었을 뿐이다. 이 때 지식 계급의 본격적인 개입으로 미술관은 4가지 원칙에 의해 운영됐다. 예술품의 수집, 보존, 전시 및 교육이다. 이것이 근대 미술관의 존재 이유였으며 지금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의 유물들이 현지에서 약탈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발명된 사진이 미술관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바로 복제 기능으로서의 사진이다. 당시 미술품들의 복제는 화가들의 그림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사진은 빠르고 정교했다. 사진은 예술품의 복제 도구로써 미술관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제공 됐으며, 현지에서 약탈 할 수 없었던 거대 건축물들과 다른 나라에 선점 당한 유물들을 찍은 사진이 벽 한켠에 전시됐다. 또한 도록에서 빠질 수 없는 자료가 되었다.


관계

19세기 내내 사진은 미술관에서 예술이 아닌 예술의 복제 도구로 활용된다. 따라서 사진가들은 예술 작품이라 주장하는 사진을 작은 갤러리나 사교클럽의 전시장을 이용해 전시했다. 이 사진들의 대부분은 살롱 풍의 회화주의 사진들이었다. 대신 사진을 수집하는 곳은 미술관이 아닌 기록보관소나 도서관이었다. 20세기 초반, 사진은 비로소 독자적인 예술의 장르로 분리되며 고유한 매체적인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앗제, 독일의 잔더, 미국의 스티글리츠 등에 의해 현대적 사진의 특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의 사진은 비평가들에 의해 새로운 대안적 예술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적으로 발터 베냐민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사진은 오직 한 점만이 존재하는 예술품의 아우라를 걷어낸 현대적 예술이라고 평했다. 특히 베냐민은 미술관을 고대 신전의 제의적인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권위주의적인 계급의 공간이자 반민주적인 이상향의 실존적 존재로 이해했다. 그 예가 베를린에 세워질 나치의 제국미술관이었다. 그는 무한정 기계 복제가 되는 사진이야 말로 예술품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민주적인 기능을 확대시킬 예술이며, 미술관을 벗어나 인쇄와 포스터 등을 통해 대중적인 공간으로 확장할 것으로 봤다. 실제 이때까지 사진은 신문과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성장했으며 프로파간다를 통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을 행사한다. 대중의 99%는 예술을 사진으로 접했으며 1% 정도만이 미술관을 통해 오리지널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사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뉴욕에 세워진 현대미술관은 유럽 미술관과 달리 역사적 맥락이나 여러 형식과 구분해 벽면에 독립적으로 작품을 설치하는 유미주의적 전시를 시도하면서 일대 미술관의 변화를 주도한다. 또한 유럽에 비해 세계적인 예술가가 희소했던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미국작가와 양식을 소개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사진도 이 때 그러한 현대미술관의 수혜자가 된다.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웨스턴과 워커 에반스이다. 이들은 당대 스트레이트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사진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미국 사진가들이기도 했다.


대안

그렇다면 이후 사진은 미술관에 안착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후의 대표적인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의 예를 살펴봐도 그들의 활동무대는 종이 인쇄 매체들이었다. 정작 미술관에 사진이라는 매체를 집어넣은 것은 포스트모던 한 미술가들이었다. 즉 회화나 조각대신 사진을 활용한 것이다. 서구 미술관이 사진을 본격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90년대 이후 상황을 보더라도 개념미술에서 파생한 사진작품이나 이제는 클래식이 되어 오리지널 프린트가 희귀한 빈티지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적인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사진가들이 미술관의 문턱을 넘은 것도 최근의 일이며, 수많은 사진 기획전과 개인전이 미술관에서 열려도 수집, 보존보다는 미술관 관계자들의 기획력과 시민 개방성에 평가, 관객 입장료에 더 관심을 보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나마 작품 수집에서도 가장 비중이 작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 예를 들면 미술은행 등을 통해 수집을 하더라도 사진의 에디션 넘버를 문서상으로 강요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사진 고유의 본질인 복제 확장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약 10여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대중 인쇄 매체의 폐쇄성(다큐 사진가의 작품을 개제하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과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진입하려는 작가들이 매체에 무상으로 사진 이미지를 대여함으로써 전업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종사하는 이들의 존립을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현재 미술관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관계는 특별하지도 소원하지도 않아 보인다. 밝은 면에서 보면, 대형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는 대게 해외 유명 사진가들의 기성품을 수입해 대중들의 관람수를 채우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어두운 면이라면, 국내 작가는 회고전 형태로나 열리며 당대 활발한 담론을 생성하고 있는 사진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그런 기회가 얻어진다 해도 미술관이 지원하는 것은 단지 대관 정도일 뿐 작품 제작에 대한 지원은 생각보다 훨씬 적은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현재 다큐멘터리 사진이 미술관으로 들어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스펙뿐인데, 물론 이도 얻으려는 자들이 넘쳐 매우 희귀한 자원이 됐어버렸다.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한국의 사진은 매우 압축 발전한 듯 보인다. 하지만 서구의 170년 역사를 그대로 압축한 것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비약이 심했다. 예를 들면 사진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타인에게 구매되기까지 서구가 밞아온 길을 거의 무시하고 오직 시장의 반응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10년 전 반짝 경기를 기록하고는 사멸한 사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사진을 감상하고 구매하려는 광범한 대중의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대다수의 인구는 카메라를 사서 자신이 사진을 찍어보려는 욕망의 취미도들이다. 이들에게는 작품의 구매는커녕, 사진집을 통한 사진가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감상할 만한 기회도 의지도 별로 없었다. 


도서관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은 미술관 진입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도서관에 진입해야 한다. 한국의 사진 책 전문 출판사가 적다고 하지만 개인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사진 책들도 있다. 한 해 이렇게 만들어지는 사진 책이 백수십종에 이른다. 그리고 한국에는 약 1000개의 공공도서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도서관의 사서들은 사진 책의 가치나 존재를 잘 모른다.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소장하도록 독려하고 촉구하는 단체도 없다. 현재 약 500권정도 평균적으로 만들어지는 사진책의 절반 가까이는 공공도서관이 매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유럽 역시 사진책의 가장 큰 구매자는 공공도서관들이다. 특히 예술 사진 책에 비해 기록과 역사성이 뛰어난 다큐멘터리 사진 책은 도서관에서 환영받을 수 있으며, 그 자체로 가장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 중에 예술성까지 확보해 미술관에 소장되고 전시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다큐멘터리 사진의 목적이 미술관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고 있는 기록의 공공성과 복제성은 예술을 포함할 수 있지만 전자를 제거하고 예술만이 남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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