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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엽 Aug 15. 2020

공적 공간의 사적 전시, 미술관 비평이 필요할 때다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전… 일단 전시부터 빈약한 기획력

사실 직업이 사진가이니 미술관을 많이 찾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갈 뿐이다. 대부분의 사진전은 갤러리 위주로 열리고 미술관급의 전시는 아주 희소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한-불 수교 13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의 공동기획으로 열리는 ‘보이지 않는 가족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날은 좋고 르네상스식 건물인 본관에는 오후의 햇볕이 노랗게 물들었다. 이 건물은 1928년 일본제국주의가 경성재판소 용도로 지었고, 해방 후 우리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겨간 후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소란해 돌아보니 90년이나 된 이 고색창연한 건물에 초록색 괴물 슈렉이 나타났다. 미국 에니메이션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기획전이 준비되고 있었다.


바르트에겐 보이지 않는 가족

전시는 좋았다. 전시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탄생 100주년이자 1979년 간행된 ‘카메라 루시다’에 근거해 기획됐다. 물론 계기가 있다. 1955년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인간 가족전’이 모티브였다. 이 전시는 88차례, 38개국, 900만명이 본 전시였고 한국에서도 1957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려 10만명이 관람을 했다고 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시립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바로 이 전시를 비꼰 것이다.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인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전 세계에서 공모한 200만점 중에 503점을 추려 전시했는데, 대부분은 미국 사진가들의 것이었다. 게다가 이 사진이 보여주고자 한 이상은 서구적 가치,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기독교적 가치,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었다. 이에 바르트는 스타이켄이 이야기하는 인본주의가 논쟁의 여기가 있음을 지적한다.

“어쨌든 미국에서 건너 온 이 전시회의 원제목은 ‘인간 가족’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어로 ‘인간 대가족’이라 번역된다. 그리하여 단순히 처음엔 동물학적 질서를 표현하고 있다고 간주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행위의 유사성들 혹은 종의 통일성을 보존하면서 방대하게 도덕화되고 감성화된다.”

즉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37단계로 구분된 편집 방식은 인간 공동체의 모호한 신화로 빠지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부인하며 그 차이를 덮는 기만적인 사진 인류학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전후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은연 중 드러나며 끊임없는 탄생과 죽음의 이미지를 교차시켜 관객들이 이성보다 감정에 빠져들도록 전시했다. 이 방대한 인간 가족 앨범은 “가부장에 호소하며 미국 공보처가 주관하고 코카콜라가 후원하는 유치한 감상주의에 빠져들었다”고 앨런 세큘라는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전시된 이번 전시의 사진은 어땠을까? 이들도 역시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와 아키덴 지역 현대예술기금이 소장한 콜렉션 중에서 재 수집해 전시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좋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서구적 가치(99% 서구 사진가)와 유럽식 세계관에 초대되지만 강요되는 교훈이 아닌 ‘가족은 무엇인가?’는 질문의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나치의 군인으로 출발하는 아우구스트 잔더의 고전 사진으로부터 워커 에반스의 무뚝뚝한 시선과 동성애자들의 가족을 보여주는 볼프강 틸만스의 거칠고 조악한 사진들, 우리가 결코 규정될 수 없는 인간 가족을 살고 있다는 낸 골딘의 작업까지 보고 있노라면, 우린 분명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뭔가를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그런데 100% 프랑스제 기획전을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에는 은근 우쭐해지지만, 오늘날 우리 미술관의 규모가 급성장했다는 징후로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미술관의 천국 영국의 놀라운 재주

요즘 서울은 미술관이 가장 핫한 곳이다. 컴컴한 영화관보다는 밝고, 술보다는 커피다. 게다가 대화를 나눌 만한 온갖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무료로 시립에서 소장하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들을 감상했다. 몇은 좋지만 대게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 미술관에서 내 취향은 뭘까? 

오래전, 2007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사이먼 샤마가 영국 BBC와 함께 만든 ‘미술특강’에서 마크 로스코를 봤다. 그의 자살과 함께 영국 테이트모던에 도착한 기증 작품들은 현대 추상 회화의 끝머리를 장식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젊었던 샤마는 엔디 워홀을 볼지언정 로스코는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미술관에서 길을 잃어 들어간 방이 마크 로스코의 상설 전시장이었고 그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인간 인식의 저평선 너머 소실점을 목격하게 된다. 나도 그의 유창한 언변에 넘어갔고, 살아생전 영국의 테이트모던에 가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사실 요즘 영국은 테이트모던을 비롯해 미술관이 붐이다. 대처시절 연금부터 기간산업이 쫄딱 망하는 것을 본 내 입장에서 요즘 런던의 부흥은 놀라운 것이다. 이번 브렉시트로 어찌 돌아갈지는 몰라도, 내 주변 사람들은 미술하면 영국이었다. 내 연배들이 주로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면, 2000년대 세대들은 단연 영국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단초는 데미안 허스트로 상징되는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 군단일 것이다. 나는 이들의 전시 ‘센세이션’을 2000년 뉴욕의 브룩클린 뮤지엄에서 봤는데, 그 소감을 말하자면 ‘상상초월의 미래 예술’을 본 것 같았다. 이것은 경험의 충격을 넘어 거대한 산업이 됐다. 이들은 광고업계의 거부인 찰스 사치와 마거릿 대처 총리의 후원을 받았고, 일약 영국을 거대한 뮤지엄의 나라로 탈바꿈 시켰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르몽드디플로마티크(한국판)에 실린 에블린 피예에, 마리노엘 리오의 기사 ‘런던 예술가들에게 현대성이란?’이란 기사에 자세히 언급된다.

“여하튼, 런던은 미술관 관람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런던 시에는 미술관이 173개, 개인 화랑이 875개 있다). 프랑스에서 전체 인구의 35%에 불과한 미술관 관람객이 런던에서는 50%에 육박한다. 게다가 예술학교 학생 수도 런던이 가장 많다. 총 6개 동의 건물을 보유한 런던 예술대는 명실상부한 유럽 예술교육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 확실히 런던은 현대예술이 ‘대중화’된 도시인 듯하다. 그 이유와 비결은 무엇일까.”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전에 없이 미술관을 가는 것일까?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는 1960년대 지료를 통해 프랑스인 19%만이 미술관을 경험했다고 했고, 유럽 전체로 보자면 15%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것이 오늘날 상당히 올라간 것이다. 게다가 런던의 50%라는 것은 경이롭다. 하지만 관계자는 이야기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교를 위해 옵니다.” 미술관이 인류 예술의 수집, 보관, 전시, 교육을 위해 집중한 것은 오래전 이야기로 들린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그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발터 베냐민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미술관을 고대 신전의 제의적인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권위주의적인 계급의 공간이자 반민주적인 이상향의 실존적 존재로 이해했다. 그 예가 베를린에 세워질 나치의 제국미술관(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린츠에 총통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예술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력과 위상을 확인시키는 자리였다. 

“미술이 계급적 본질에 충실하다”는 존 버거의 이야기는 어쩌면 완전히 타당하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작가들의 순수한 영혼을 보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결국 그것을 만들어낸 권련과 자본의 위대함을 가슴에 품고 미술관 문을 나서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개별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회화를 하건, 조각을 하건, 사진을 하건 작가들은 그곳에 수장된 (자신의 것이거나 타인의)작품을 보며 권력과 자본의 냄새를 맡는다.


비난받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가족전’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전시를 봐야했다. 그들 말대로 국립현대미술관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사진전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미술관은 ‘모든 예술작품의 무덤’이라는 말처럼 여기 전시된 사진들은 지난 20년 동안 어딘가에서 전시되었고, 여기저길 떠돌다가 최종적으로 미술관에 안착된 사진들이다. 신작은 없다. 여기서 새로움을 찾는 것은 작가들이나 사진 마니어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새로움이 없다면 전시를 준비한 이의 해석이 볼만해야 할 일이다.

이번 사진전을 기획한 운영부장 이지윤씨는 한 사진잡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기록과 보도를 위한 것이 아닌 사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아주 사적인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적인 언어가 바로 사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사진전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현대미술전이다. 정확히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각도로 조망해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무수한 내적 모순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귀납적으로 보면 사적 언어가 사진이고, 작가의 시선과 태도는 사적이어야 하므로 다큐멘터리나 포토저널리즘은 사진이 아닌 것이 된다. 그리고 선택된 사진은 미술인 것이다. 하지만 이 미술관이 닮고 싶어 하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의 초기 사진 전시는 중립적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워커 에반스의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10년이나 사진을 연구했다는 것은 그의 농담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오히려 현대미술관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된 중앙대학교 사진과의 천경우 교수가 이야기하는 ‘사진이 무엇인가?’가는 요즘 현대사진 담론에 훨씬 합당해 보인다. 이지윤씨가 사진의 복제, 개념에 대해 묻는 질문에 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제 사진을 하나의 새로운 보편적 ‘언어(말)’로 받아들이면 표현방식을 이해하는 일이 좀 더 쉽지 않을까. 언어는 정서에 따라 구사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언어를 통해 예술적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또한 사진 영역은 예술 외에 과학, 기록, 언어 등을 포괄하여 넓고 세분화 되어 있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의 울타리에 있던 사람들이 기술적 표현방법이 아닌 작가의 사고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태도에 대한 고찰이랄까. 다른 매체를 다루다가 사진을 사용하게 된 작가나 이론가들은 사진을 편의적인 표현수단이 아닌 ‘언어(말)’로 보고 그 본질을 탐구하고 경험했으면 한다. ‘말’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대상이니까.” 사진이 예술로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한 요건은 사적이냐 공적이냐 또는 기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공적인 자리에서 아주 사적으로 전시하다

전시의 자아분열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단 서울관 4개 전시실의 600평 넘는 면적에, 53명의 작가가 200점 넘는 작품들을 내걸었다. 규모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최대 사진전이다. (물론 기획자는 현대미술전이라 불러달라고 한다.) 1부는 1989년을 한국 사진의 실험이 시작됐다고 당돌하게 쓴다. 이때를 전후해서 해외 유학을 다녀온 구본창, 김승곤 등이 기획전시를 했기 때문이라 적는다. 2부는 그런데 갑자기 70년대로 돌아가 이승택 등이 시도한 개념미술의 도구로서 사진이 등장한다. 3부는 현대미술의 포퍼먼스를 사진화한 김아타 등을 소개하고, 4부는 잡탕으로 최근 작업하는 젊은 사진들을 모아 상징, 반미학, 비평적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본래 의도라면 한국 현대 사진의 연대기로 서술되야함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의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흐르지도 않으며, 수많은 소립자들은 뭉쳐서 하나의 핵이나 원자를 이루지도 못한다.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의 미술전문 기자인 노형석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전시가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과 융합되고 수렴되어온 현대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사적 성격이라면 관점에 대한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주요 작품들은 물론 사진사의 각종 아카이브 자료들에 대한 오랜 연구와 분석이 필수적이고, 선택한 작가와 작품들이 사진과 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작품 구성과 설명 등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제 전시장에서는 이런 역사전시의 필수적 요소들이 대부분 배제되어 있다.” 내 입장에서는 마치 이 전시가 거대한 4대강 사업같이 보이는데, 1차로 강에 대한 생태 환경 보고서가 부실하다. 사진 생태계에 어떤 작가들이 서식하는지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견강부회한다.

1부 전시장에 길게 대형 사진이 걸린 이갑철 작가의 경우 유학파도 아닐뿐더러 스스로 예술 사진가라고 자칭한 적도 없다. 기획자인 이지윤씨는 과감하게 이야기 한다. “이갑철 작가를 다큐멘터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충돌과 반동’이 보여주는 시각은 기존 다큐멘터리와 다르다. 작가가 접근한 샤머니즘은 단순히 굿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적인 사진 하나로 그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에 실험의 시작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충돌과 반동’이 이갑철의 80년대 초 ‘거리의 양키들’, ‘타인의 땅’에 이은 비판적인 한국인에 대한 기록이란 점을 그만 모른다는 것이다. 

2부 전시장에는 사진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박찬경, 양혜규, 최재은과 같은 ‘동시대 미술’가들이 다른 사진가들을 압도하며 전시되고 있는 상황은 할 말이 없어 넘어가기로 하자. 2부 개념과 3부 퍼포먼스 양 쪽에 등장하는 노순택은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졌지만 과감하게 분열되어 여기저기 걸쳐있다. 북한의 아리랑 공연 사진이 퍼포먼스 사진으로 분류된 것을 보면서, 저 아리랑 퍼포먼스가 ‘작가가 연출한 것인가?’하는 기괴한 상상마저 한다. 전시 뿐 아니라 특별 상영까지 마련한 니키 리의 경우는 명확히 미국의 시선으로 미국에서 작업하고 미국에서 전시되어 호응을 받았기에 한국현대사진에 포함될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 누가 봐도 니키 리는 미국 작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내 제약사 총수의 부인(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이 찍은 개인 취향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90년대 이후 새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내걸려 눈길을 더욱 혼돈스럽게 만든다”고 지적한 기사도 있었고 이에 대한 기획자의 답은 “전시 연구는 10년 전부터, 기획서를 준비한 것은 1년 전, 그리고 작가들에게 연락한 것은 올해 1월부터다. 훌륭한 작가들이 많았지만, 이들을 덜어내는 작업이 어려웠다. 현대미술의 측면에서 사진을 바라봐야 했기 때문이다. 송영숙 관장의 작업이 논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에 폴라로이드를 회화처럼 만드는 실험을 한 작가는 송영숙 관장이 처음이다. 그런 점이 의미가 있었기에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화처럼 만드는 사진은 19세기 말에 유행했다.

작가들에 대한 생태 보고서가 엉망이니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강의 댐들도 부실공사다. 1부에서 4부까지 튼튼하게 지어진 것은 없고, 기초가 부실하거나, 골조를 빼먹었다던가, 시멘트 강도가 허술하다. 멀리서 조망하건데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이라 붙인 이 전시는 ‘아주 공적인 자리에서 아주 사적인 기획으로’ 전시를 한 듯 보인다. 이명박의 4대강 공사를 마치 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옮겨 놓았다는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인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부실 공사를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조사한 바로는 국공립미술관의 작품 구매에 대한 감사 등의 장치는 있지만 전시의 기획과 실현에 대해 견제할 기구나 장치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러한 기획의 가치평가는 오직 내부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우환의 위작 사건에서 살짝 드러난 미술계의 위계문제나 신자유주의적 미술계 전횡은 미술관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실질적으로 개별 전시가 아닌 미술관 전체에 대한 미디어 비평을 통해 전문가와 여론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는 다른 기사에서 미술계와 국공립 미술관의 관계를 언급한다. “국공립 미술관들의 기획전들은 화랑가의 트렌드를 받아 정리하는데 치중하는 모양새다. 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로 들어온 사진가들 작업을 모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전은 엉성한 전시틀과 작품 구성이 입길에 올랐다. 80~90년대 사회참여적 작가들의 작품들을 그러모은 북서울미술관의 ‘행복한 나라’전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의 민중미술컬렉션전 ‘앤솔로지’는 상업화랑의 민중미술전 흐름을 별다른 관점 없이 매끄럽게 포장한 수준에 머무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 전시에 대해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사진 비평가도 있다. 그는 “엉터리 미술전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주 나온다. 이번 전시만 꼭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내부에 들어갔다는 것이 큰 의미다.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아지도록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이 비평인데, 이 전시 현장에는 4단 접지의 리플랫이 전부다.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전시 준비의 모든 것을 담은 400쪽 짜리 대형 양장본 책을 출간한데 비해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전은 그 배경 설명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전시가 끝난 후인 8월쯤에 도록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학예사로부터 들었다. 전시 시작 4개월 전에야 작가를 섭외하고 1개월 전에야 작품을 받았으니, 전시장에 작품 거는 것이 급했을 것이다. 일단 전시하고 그 전시에 대한 의미를 세우려면 섭외된 이론가나 기획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야함은 명확해 보인다.


현대자동차 미술관을 점령하다

전문가들도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만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기사를 통해 꽤 흥미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 현대자동차의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대한 어마어마한 지원 내용이다. "낡은 전력발전소를 개조해 건립한 테이트모던의 가장 큰 볼거리는 예전에 기계실이 있던 터바인홀이다. 이 전시실에서는 현재 한국기업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은 한 근사한 설치작품이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었다. 2015년 10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는 이곳에서 런던 곳곳의 흙을 채운 삼각틀 모양의 목조 화분을 설치한 작품 ‘빈터’를 선보였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토양의 품질에 따라 어떤 화분에는 풀이나 꽃이 쑥쑥 자라날 것이고, 반면 싹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는 데 실패한 화분도 나올 것이다. 테이트모던측은 이 전시회가 “도시와 자연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기회·변화·희망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다른 모든 공공미술관과 마찬가지로,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은 무료로 볼 수 있다지만, 1년에 6차례 열리는 한시적 전시회는 모두 유료(20~32유로)인 것을!” “현대자동차는 한국의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 9점을 구매하도록 재정을 지원하는 한편, 11년간 무려 5백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한화 85억원)의 후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런 거래는 다소 당혹스럽게 비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도 아주 친절하게 예술후원의 순수함을 친히 밝혔다. “우리 현대자동차는 인간이 자동차와 정서적 유대감이 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과 훌륭한 예술의 관계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는 이미지 제고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래서 미술관이라는 ‘무형의 브랜드’로 이미지 개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술가, 대중, 기업의 소통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얘기다. 보다 조화롭고 신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윈윈(Win-Win)전략인 셈이다."

영국의 미술관 사업을 그대로 벤치마킹 하다시피 하는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은 90%의 전시가 유료다. 그리고 그 전시 중에 가장 핵심적인 블록버스터 급 전시를 현대자동차(현대카드)가 후원한다. 그리고 얼마 전 이런 기사가 떴다. “2017년 베니스베엔날레 한국관의 예술감독에 선임된 사람은 젊은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이대형씨다.” 이건 차라리 음모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미술관이 반세기 전 히틀러가 꿈꾸던 파시즘적인 전당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전당으로 확연하게 이동하는 느낌이다.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작품일까? 자본의 권력일까?

글을 쓰며 생각해 봤다. 왜 전시가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제도 비평이 필요한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자본과 미술의 관계는 저 위대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이 표상한다. 거대 은행자본이었던 메디치와 수많은 미술가들의 관계다. 이후 수많은 전제군주들이 사유화된 국가 자본으로 미술품들을 사들였고, 그것들이 보관 된 미술관은 결국 혁명을 통해 공공의 것이 됐다. 그것이 2백년 가까이 지났지만 진정 미술관이 공공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 사실 세계적인 공공미술관도 신자유주의의 열풍을 타고 공격적인 자본 부풀리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작품가가 천정부지로 올라 그렇다고 하지만 몇몇의 작가가 그러할 뿐 우리가 알아야할 무수한 작가는 전시장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수장고에서 잠잔다. (현재 세계 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작가는 대충 다음 같다. 제프 쿤스, 아이웨이웨이, 빌 비올라. 동시대 미술가들이다. 19~20세기는 흥행을 보증하는 예술가로 폴 세잔, 인상주의 화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드바르트 뭉크,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등이 있었다. 현재와 가까운 예술가들로는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사실상 전부다.) 

결국 미술관은 작가와 작품의 향연을 여는 뮤즈의 전당이 아니다. 실제 이곳은 자본과 권력이 촘촘하게 거미줄을 친 제도의 공간이다. 우리의 정신은 그 그물에 포획되고 육체는 포박 당한다. 그러하기에 우린 일개 전시보다 제도로서의 미술관 비평이 필요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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