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만들기 과정에 참여했어요. 도서관에서 진행한다고 하지만, 석 달 동안 글과 그림에 대한 슈퍼비전은 단 세 번뿐. 스토리도 그림도 온전히 만드는 사람의 몫인 수업이었습니다. 독립출판이나 도서관 강좌로 책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글과 그림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작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구상했던 스토리를 버리고 새로운 스토리로 다시 만들어 갖고 갔을 때 사람들이 손뼉을 쳐주었어요. “이야기 너무 좋아요!” 하고. 슈퍼바이저로 오시는 그림책 작가님도 “스토리 좋습니다. 괜찮아요.” 하고 칭찬해주셨죠. 나의 첫 그림책 스승님이신 시인분께 슬쩍 보여드렸을 때도 “스토리 너무 좋다. 잘 다듬어서 공모전에 내 봐.” 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그게 독이었을까요? 마음 저쪽 안에서 자꾸 이상한 것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습니다.
그때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내 오랜 꿈이 작가였다는 걸 깨달았지요. 그거였어요. 몽글몽글하는 이상한 것. 그림책에 더 매달렸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그 나이에?’, ‘그림은 그릴 줄 아니?’, ‘작가는 아무나 되는 거니?’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는 수시로 나를 기죽이고 주눅 들게 했지만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며 그날 하루치 자신감을 비축해서 버텼지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똑같은 그림에 채색을 몇 번씩 다시 해도, 구도를 바꿔 그리고 또 그려도, 허리가 아파도 잠을 못 자도 또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얼기설기 만든 그림책으로 마지막 슈퍼비전을 받고 난 뒤 작가님께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그림책 공모전에 내보고 싶다고. 그림책 작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나를 꿈꿔보긴 했지만, 언감생심 당선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작가님은 조심스레 아주 완벽히 돌려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그 말은 이렇게 딱 한 줄로 요약이 되었죠. ‘공모전에 낼 정도의 그림 실력은 아니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화판을 들고, 주저앉듯 지상철 빈자리에 앉아,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좀 울었습니다. 누가 이상하게 볼까 서둘러 눈물을 닦아가면서요. 가시가 돋친 말 하나 없이 정중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아팠습니다. 알아서 아팠고 이해해서 아팠습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 | 줄리 폴리아노 글 / 에런 E. 스테드 그림 | 문학동네 | 2014. 2. 24
누군가 소년에게 묻습니다.
고래가 보고 싶니?
고래를 보려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네요.
의자, 창문, 제일 중요한 바다도 있어야겠지요.
소년은 창가에 앉아 고래를 기다립니다.
누군가 또 이야기합니다.
고래를 보려면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의자는 있어야 하지만 너무 편한 의자는 깜빡 잠이 들 수 있어 안된다고 합니다.
고래는 눈 뜰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고래 보기 참 힘들지요.
소년에게 고래는 어떤 의미이길래 이 까다로운 조건들을 감수하고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달콤한 장미와 배, 펠리컨을 외면하고 기다릴 만큼 고래가 가치가 있을까요?
소년은 고래를 만날 수는 있는 걸까요?
어쩌면 제게 그림책 작가라는 꿈은 고래를 기다리는 일 같습니다.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고래를 기다리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여 잠시 고래를 돌릴 때 고래가 나타났다. 사라져 버릴까 조마조마하겠지요. 지루한 시간에 지쳐 포기해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어요. '배를 고래로 우겨볼까?', '난 고래 보려고 했던 거 아닌데' 대충 감추고 아닌 척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