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처음 맞는 애벌레와 비를 딱 한 번 맞아 본 무당벌레 | 조슬기 지음 | 향 | 2020년 09월 30일
시원하게 눈길을 잡아 끄는 하늘색 겉표지에 컷 팅 된 구름 사이로 책 제목이 보입니다. ‘비를 처음 맞는 애벌레와 비를 딱 한번 맞아본 무당벌레’ 제목부터 참 재미있는 그림책입니다.
비가 뭔데?
나를 통통 튀게 하는 얘야.
비를 딱 한 번 맞아본 무당벌레는 비가 더 많이 내릴까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애벌레는 신이 나서 말해요.
그럼 더 통통 튈 수 있어 좋지!
비가 오니 위험하다고, 어서 숨어서 몸을 피하라고 말하는 무당벌레의 말에 애벌레는 자꾸 엉뚱한 소리나 해댑니다. 그리고 결국 비에게 잡아먹히고 말지요. 그렇게 고생을 하고나서도 애벌레는 이렇게 말합니다.
휴우, 깜짝 놀랐네. 근데 더 큰 비는 얼마나 더 통통거릴까?
아이들과 바닷가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늦은 밤 아이들과 산책을 나섰지요. 낯선이의 발자국 소리를 경계하는 개들의 컹컹 소리를 조심히 지나쳐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돌이 깔려진 해변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그락 자그락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해안가에 털썩 드러누워 올려다본 하늘엔 점점이 박힌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와~ 하늘에 별이 있어!”
하늘에 별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습니다. 불빛이 잠들지 않는 도시의 아파트 성에 갇혀 있을 때는 하늘의 별을 좀처럼 볼 수 없었으니까요.
“엄마, 별자리 아는 거 있어?”
“엄마는 북두칠성 밖에 모르는데, 찾아볼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평선 가까운 곳에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래 이렇게 잘 보이는 별이었나? 찾는 게 이리도 쉬운 일이었나?’ 의아스러워 아무리 봐도 북두칠성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지요.
“찍혔어! 와, 엄마 진짜 북두칠성이야.”
“엄마, 또 찍어봐.”
“엄마, 나도 찍어 보고 싶어.”
조용한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느라 작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엄마, 나 이렇게 바닷가에 누워서 별 본 건 처음이야.”
“엄마, 엄마도 밤에 바닷가에 누워서 별 본적 있어?”
“어~ 아주 어릴 때 그래봤던 거 같아.”
“그럼 엄마 밤에 바닷가에 누워서 파도소리 들으면서 북두칠성 사진 찍어본 적은 있어?”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음’ 맞이한 세상 앞에 경이와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게 발견한 세상의 조각들을 호기심과 설렘으로 담아 기쁘게 엄마에게 나누어 주려 하지요. 그런데 저는 ‘엄마 그거 아는데, 엄마 그거 해봤는데’라며 시큰둥해했습니다. 때론 ‘아는데 그거 별로야.’ 라고도 했으니 애들은 얼마나 맥빠졌을까요? 놀랍고 신기한 일이 적어 따분하고 세상이 주는 감동이 적어 지루한 이유는 내가 너무 많이 알고 경험해봐서가 아니었습니다. 애벌레처럼, 아이들처럼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아, 빨간 무당벌레가 바로 저였네요!
밤, 바닷가, 파도 소리, 북두칠성, 사진이라는 까다로운 이유를 붙여서라도 ‘처음’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그건 처음이야.”
“오예~ 그럼 우리랑 처음으로 한 거네!”
‘아이들과 함께’라는 이유를 붙이면 나에게도 많은 것들이 ‘처음’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앞에서 기쁨에 함빡 젖을 때 저 역시 '아이들과 함께'는 처음이라 온전히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삶을 즐기는 것은 많은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을 대하는 저의 태도였지요.
그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별별 이유를 붙여봐야겠다 싶습니다. 그 순간이 반짝거릴 수 있도록 말이지요.
‘비가 오고 나서’, ‘결혼 후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없이’, ‘처음 가 본 곳에서’ 하나로 안 되면, 둘, 셋 더 붙여 볼 셈입니다. 내 삶을 다시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어 줄 든든한 마법 주문 하나를 챙긴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