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언어 배우기 1
친구를 사귈 때 물어보는 것이 있다.
이름과 태어난 곳.
식물을 처음 키울 때 꼭 알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름과 태어난 환경.
식물을 키운다는 건 새 친구를 알아가는 과정이랑 비슷하다.
친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그 친구를 오래 볼 수 있다. 나는 좋아하는 친구와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 식물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주로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등등을 적고 있다. 내 친구는 말은 못 하지만 표정이 있어서 가끔 쭈글 거리기도 하고, 잎을 축 늘어뜨리기도 한다. 가끔은 노란 잎으로 경고를 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나도 그 사인에 응답하기 위해 뭔가를 한다. 아마도 물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식물이 죽었다. 과습이 왔다. 뿌리가 썩었고, 뿌리파리가 파티를 열었고, 결국 초록별로 떠나보냈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세요'라고들 하니 의심 없이 물을 듬뿍 준다. 마치 요리사가 '적당히 넣으세요'라는 말과 같아서 혼란스럽긴 하지만 안 주면 죽으니까. 그런데 초보 식물 집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물을 주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다. 식물에게 '해야 하는 일'보다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식물을 키우면서 궁금한 것들을 찾아보고, 메모해두었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혹시 틀린 점이 있다면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
건강해 보이는 식물에게 물을 준다.
보이지 않는 화분의 흙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
1. 말랐던 흙이 서서히 젖는다.
2. 삼투현상에 의해 물이 뿌리 안쪽으로 이동한다.
3. 잔뿌리로 물을 흡수한다.
4. 물의 이동이 중력을 거스른다. (흙-> 뿌리-> 잎-> 식물 주변) *물이 이동하려는 에너지를 수분 포텐셜이라고 한다.
5. 증산작용이 일어나 잎의 물이 수증기 형태로 빠져나간다.
6.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흡수해 탄수화물과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을 한다.
7. 식물이 성장한다.
건강해 보이지 않는 식물에게 물을 준다.
우리가 물을 줄 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잎이 시들시들하거나, 잎 끝이 마르거나, 잎이 노랗게 변하는 경우. 아픈 거 같아 보이니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또는 1주일에 한번 물을 줘야 한다는 말을 믿고 당사자(식물)에게 묻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물을 준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1. 이미 젖어있는 흙에 물이 들어와 그나마 남아있던 공기층이 사라진다. 식물은 호흡곤란에 빠진다.
2. 물과 흙이 만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 혐기성 가스가 나와 공기 순환이 안되고, 곰팡이도 생긴다. 뿌리 부패가 시작된다. 잎이 노랗게 되거나 갈색 반점이 생기기도 한다.
3. 젖어있는 흙과 썩은 뿌리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맛있는 뿌리를 먹고 똥도 싸고 알도 깐다. 여기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벌레의 개체수는 늘어난다.
4. 식물은 아픈 뿌리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물을 흡수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임을 알아챈다.
5. 식물은 뿌리 규모에 맞춰서 증산작용을 하기 때문에 잎을 시들게 하여 떨어뜨린다.
6. 그렇게 잎이 노란색, 갈색으로 변하며 우두두 떨어지고, 벌레들의 공격으로 몇 가닥 남지 않은 뿌리조차 썩고 나면 식물은 초록별로 간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의 하나가 식물에게 햇빛만 쬐어주면 무조건 광합성을 한다는 점이다. 식물에게 광합성은 돈을 버는 일이다. 당신이 매일 돈 버느라 쉬지 않으면 힘든 것처럼 식물도 마찬가지로 쉬는 날이 필요하다. 호흡은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먹고, 자는 것처럼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고, 광합성은 성장을 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이다.
식물이 성장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뿌리로 흡수한 물과, 기공으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엽록체에 보낸다. 빛 에너지로 이 둘을 짠~ 합쳐서 포도당이라는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식물이 뿌리로 물을 흡수하지 못하거나, 기공을 닫아버린다면? 과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온도가 높은 경우> 식물은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햇빛을 받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기공을 닫고 잎을 말게 된다. 온도가 낮은 경우> 식물이 추위로 인한 손상을 줄이기 위해서 기공을 닫는다. 잎으로 물을 보내면 잎이 얼고 냉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물이 광합성을 못하면 성장이 서서히 더뎌지겠지만 과습은 호흡을 막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물을 게을리 줬더라면 식물은 수분을 찾아 뿌리를 더 뻗어나가고, 잎에 저장되어있는 수분을 쓰고, 증산작용을 줄이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잎만 남기고 떨구며 생존에 집중했을 거다.
분갈이를 하거나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져서 스트레스와 시련을 겪을 때에도 그들은 살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성장보다는 생존에 집중한다. (물론 모든 식물이 성장을 멈추는 건 아니다.) 이때에도 물을 많이 주면 좋지 않다. 분갈이 후에 물을 흠뻑 주기보다 식물의 상태를 보면서 물의 양을 늘리는 게 더 안전하다.
사람이랑 참 비슷하다. 우리도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하는 일을 줄이고, 생존에 필요한 활동만 하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먹고, 자고, 그리고 호흡하는 것. 그리고 아픔의 원인을 찾기 위해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쓰긴 하지만 이겨내고 나면 그 경험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자의든 타의든 우린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적응하고 싶지도 않고 적응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나름의 저항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뿌리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 집엔 몇 달째 성장하지 않고, 처음 왔던 모습 그대로 얼음 상태인 식물이 있다. 예를 들면 뱅갈 고무나무와 문샤인. 정말 변화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신기하게 흙이 마르는 거 보면 이 친구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든다. 아마도 새 집으로 이사 와서 적응하기 위해 뿌리 힘을 기르는 중인가 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만 봐도 기특하다.
식물은 스스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만 내가 주고 싶은 사랑과
네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식물은 너의 곁을 떠나는 것뿐이다.
그러니 물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흙을 살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