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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지 않는 말티즈 Jan 27. 2021

우울증 그리고 인정

스스로 인정하기 위해 쓰는 글 

올해 38살. 

첫 직장 생활은 25살. 

올해로 직장 생활한 지, 14년 차가 되었다.


현 직장까지 합치면 총 8개의 회사를 다녔고, 20대 후반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1년 동안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돈도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미혼이다.


후회 없이 퇴사했고, 이직했으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건 

우울증


나의 우울증은 재작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공황과 함께 말이다. 회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에, 동료들과 한 사수의 책임 전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내 이야기를 들으면 주변에서 가스 라이팅을 당한 것이라고 조언해주곤 한다.) 순진하게도 전부 내 책임으로 온전히 받아들여 여러 병을 얻었다. 

아이러닉 하게도 나에게 책임 전가를 했던 동료 중 한 명은 잘렸고, 한 명은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퇴사했다. 사수는 여전히 회사에서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가스 라이팅을 시전 중이다. ^^


나는 정신과에서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2년 반 동안 먹으며 그 직장을 다니고 있다. 지금도 불안증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회사 업무로 현실과 지옥 사이를 오가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중 몇 명은 자신을 위해 퇴사하라고 조언해주고, 몇 명은 회사를 다니며 이겨내야 병이 완치된다고 말한다. (담당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퇴사를 권고한 지 3달이 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돈문제로 인해 지금까지도 퇴사를 미뤄왔다. 정말 더 답답한 상황은 내가 쇼핑 중독이라는 것이다. 특히 수면제를 먹으면 갑자기 뭘 먹거나 인터넷으로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사곤 한다. 그리고 백화점을 돌며 꼭 사지 않아도 될 옷들을 사며, 매장 직원분들의 서비스에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한다. 


더 웃긴 건, 이 모든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작년 초부터 알았고 회사에 지금까지 퇴사하고 싶다고 6회 이상 말했다. 심지어 작년 12월 초에 대표님에게 가서 퇴사하고 싶다고 말하고, 12월 말에 이사님에게 가서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내가 지금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 되고 있으며, 2021년 새해를 맞이해 새롭게 살고 싶다는 뻔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


맞다. 반전 따위 없다. 

2021년을 맞이해 새롭게 살고 싶다. 지금까지의 엉망진창 생활을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매일 일기를 쓰고, 매일 가계부를 쓰고 있다. 

10일째 매일 쓰고 있는데 일기를 쓰니 갑작스럽게 빠지던 우울감과 불안증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다. 내 감정을 텍스트로 정리하니, 별 일 아닌 것에 내가 감정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계부를 쓴 이후로 충동구매에서 10일 벗어났다. 소비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정말 쓸데없이 돈을 많이 쓴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맞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나 자신을 계속 안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는 습관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겼고, 그 반대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밖에서 바라보며 내 잘못을 인정해야 그다음이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 작성 중이다. 


인정하자. 인정할 때 비로소 우울증에 파묻혀 있는 내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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