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돌이켜보면, 이번 대선의 결과가 보인다. 선거 전에,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 언론은 없었다. 당사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당이 이길 것으로 예상한 모든 곳에서 여당이 이겼고, 박빙일 것으로 예상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여당이 이겼다. 서울, 수도권, 충청권을 포함한 모든 중도지역에서 아슬아슬하게 혹은 압도적으로 여당이 이겼다.
'아슬아슬하게' 한두군데에서 이겼다. 가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여러군데에서 이겼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당이 그간 의정활동을 아주 잘해서?
민주당이 공천부터 시작된 선거활동을 아주 잘해서?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행정권력이 일을 너무 잘해서? 이게 결정적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이런 이유라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타당할 듯 하다.
야당이 못미더워서.
아직도 저런 모습이어서.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심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내 표를 차라리 뽑힐 사람에게 주자.
내 표에 굳이 '정치적' 의지와 함의를 담지 말자.
뽑힐 사람, 행정권력에 힘을 보태서 일이나 제대로 하게 해주자.
더이상 혼란스러운거 힘들어.
두 군데 나뉘어 봤자 맨날 싸우기만하지.
실질적으로 도움되는게 없어.
그냥 그나마 덜 해로운, 덜 부패한, 그나마 나아보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안정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게, 차라리 낫겠어.
이런 심리가 -역사적 의미에서 -작동한 것!
개인적으로, 지난번 국회의원선거에서부터 한국인민의 투표형태가 이런 식으로 변화하였다고 추측한다. 일본에서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구조가 된 배경과 히스토리를 유사하게 쫒아가는.. (아쉽지만..) 듯 하다. (일본정치사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뭐 크게 다를 것 없을 듯..)
요컨데. 지금까지는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정치적 지형과 의제를 선택'하는 것이 핵심적인 투표목적행위였으나, 이제는 '안정과 행정력'을 원하는 투표행위로 변했다는 것.
한국국민의 투표행위/심리가 이렇게 변화하였다면, 이번 대선에는 누가 뽑힐까.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순서없이 개연성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40%에 육박하는 부동층이 결국 선거결과를 좌우할텐데.. 이들의 투표목적행위가 위와 같은 모습으로 '이미' 변화하였다.
*결정적으로, 지금 야당에서 1, 2위하는 후보 둘 다 국민들의 바뀐 투표목적행위에 부합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현실이 어느정도 타당한 인식이라고 볼때, 이번 대선은 지난번 국회의원선거의 연장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째서 현재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혹은 당원들의 1,2위 선택이 '안정과 행정력' 중심의 후보 =즉 '유승민 (혹은 원희룡까지 포함)',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 일수 있다.
명확한 한 가지는 아직까지 정치의 본질을 상대방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그간의 정치/투표 목적행위 범주에 머물고 있는 일부 강성 정치 관여집단의 여망과 목소리가 그 군집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강성 정치관여집단이 수적으로 반드시 우위인 것은 아닌 듯 한데, 야당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혹은 조직 구성의 특성상 그 소수/강성 정치관여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으로 변질/왜곡되는 현상을 당 스스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야당을 대표하는 강성 정치관여집단의 투표목적행위가 변화한 중도의 투표목적행위를 대표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갭이 점차 벌어지고 있어서 정책/공약/타켓팅 등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상당한 왜곡을 가져오고 있는 듯 하다.
*여기에 이재명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방점을 찍는다. 이 사람은 진보기반의 후보자임에도 실용과 성장의 아젠다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합한다. 많은 민주당 대선급 인물 중에서 김대중 정도가 해낼수 있었던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 점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이 가진 약점을 정확하게 보완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래도 이재명이 일은 잘해. 이재명정도가 일을 하면 부동산도 잡히고, 그동안 말도 안되게 참와왔던 불합리한 것들이 잘 해결될거야. 문재인처럼 답답하지 않을거야."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신기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그런 얘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듣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모르신다.)
*이재명의 출범식 연설문에 박정희와 부동산 공급정책이 언급된 것을 두고 진중권이 혓바닥 길게 비판한 이유는 사실은 공포감때문이다. 이재명이 국민들이 40%이상의 신뢰를 굳건히 보내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에 대해 아쉬워하는 지점을 칼날처럼 정확히 인지/파고들고 있고, 명확한 보완책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고, 그걸 이재명이라는 후보가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해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다고 하나, 임기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었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대결에서 이미 여당후보가 1위를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추측에 더 힘이 실린다.
결론.
실용과 행정과 성장. 민주당 기반의 후보자가 실용/행정/성장이라는 세가지 아젠다를 완벽하게 통합하고, 국민들로부터 인정/지지를 받을때,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고 봐야한다.
미묘하지만 이 포인트를 보다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40%중도층)은 다른 후보자와 비교한 후 이재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후보 혹은 당은 이미 볼게 없어서 보고 있지 않다. 바라볼 곳은 민주당/이재명이 유일해서 그쪽만 바라보고 있는데 몇가지 아쉬움이 있어서 아직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이재명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사족.
이번 대선에서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경우, 한국정치에서 일본의 자민당 지배구조와 유사한 민주당 지배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극우가 쪼그라들고, 진보가 스스로의 행정력/정치력/아젠다를 만들어 낼 능력을 이미 상실한 점, 거대일당이 합리적보수-합리적진보-민주-진보를 다 흡수해버린 구조에서 소수당들이 설자리가 없어졌다는 점. 일반국민들의 투표목적행위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우려하고 보완점을 고민해야할 지점은 여기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나서 검색해본 일본 자민당 강세의 이유 from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90%EC%9C%A0%EB%AF%BC%EC%A3%BC%EB%8B%B9(%EC%9D%BC%EB%B3%B8)
선진국에서도 사례가 드물 정도로 일당 우위 정당제로서 초장기간 동안 집권해 온 자민당의 장기 집권 이유에 대해 한국 등에선 일본 사회의 우경화, 일본 시민들의 시민 의식 등을 이유로 들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과하게 혐한 어그로를 끄는 일부 소속 정치인들 탓에 극우적 성향을 가진 정당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자민당의 정책 어젠다를 보면 상당히 융통성 있고 실용적인 면모를 보인다. 과거부터 외교·안보 및 사회·복지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제들까지도 흡수하면서 외연 확장성을 꾸준히 늘려왔는데, 이러한 자민당의 융통성과 실용적 면모에 대해 일부 정치학자 중에는 이를 ‘창조적 보수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출처 실제로도 한국 보수 정당의 정치인들도 이를 인정하여 당의 정책 혁신 방향으로 좌우 경계를 허무는 ‘유연한 실용주의’를 제시해 각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제를 흡수하여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하기도 했다.출처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최저임금을 제도화하여 일본의 사회 보장 제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바로 자민당이다. 참고로 이 정책들이 통과한 시기는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 재임 시기이다.
자민당은 일본의 경제 성장에 집중하면서도 전 세계를 막론하고 진보들의 주요 정책 아젠다인 사회 복지 정책들도 먼저 자신들이 선점해 버렸다. 정부의 복지 지출을 증가시키며 복지 정책의 질 향상, 고용 안정 추구, 노인 의료 지원 확대, 의료 보험의 피부양자 보호안, 물가 상승분을 고려한 국민연금 정책, 고용 보험을 실시한 것은 바로 자민당이다. 결국 이러한 꾸준한 정책 추진은 1970년 중반을 기점으로 자민당에 부정적이었던 산업 노동자들이 점차 자민당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아베 신조도 비슷한 행보를 한다. 일본 기업의 법인세를 내림과 동시에 일본 기업들에게 최저 임금 인상을 강하게 압박@@, 결국 일본 내 최저 임금이 사상 최대 폭으로 상승하였다.
외교에서는 자민당 집권 시기에 1972년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닉슨의 방중을 반대하는 등 자민당 내 반중정서를 추진해 오던 사토 에이사쿠 계파가 쇠퇴하고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리가 되면서 자민당은 재빠르게 외교 노선을 혁신적으로 수정하였다.
이러한 일본 자민당의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철저한 실리주의적 융통성과 실리적인 정책 추진, 상황에 따른 빠른 노선 변경은 일본 시민들로 하여금 굳이 야당을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질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일본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로 연결, 일본 정치에서 자민당이 주류의 위치를 확고히 자리 잡게 하였다.
2010년대에 아베 신조가 장기 집권하면서 자민당의 절대적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이러한 강점이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과 점점 멀어지면서 그냥 보수당이 되어가고 있는 데다가 스캔들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대안이 없어서인지 아베가 유임하게 되어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극대화된 것이다.[39]
자민당은 여러 파벌들의 경쟁과 합의 속에 차기 총재가 탄생하는 구조이다. 이 점은 밀실 회담을 비롯하여 일본의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약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지만, 광범위한 파벌들의 존재가 서로 서로 견제하며 특정 계파의 독점으로 인한 폭주를 방지한다는 장점 역시 있다.[40]
이런 다양한 파벌들이 보수의 빅텐트로 모여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일본 자민당은 같은 보수 정당임에도 한국의 보수 정당과 달리 특정한 철학과 이념에 바탕을 둔 강령 정당의 성격이 상당히 약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의 자민당을 성공한 사회주의라고 냉소적으로 보기도 한다. 자민당이 미국의 공화당과 같은 전형적인 보수 정당과 달리 정책 이념이나 강령이 뚜렷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태생 자체가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가들의 집단이 아니라 정치를 주도하기 위하여 입장이 다른 정치가들이 연합한 파벌 모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과거 자민당 내에는 온건 보수 성향 파벌들의 세력이 상당하였는데 이 시기 일본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잘 나가던 시기였다. 현재는 일본 정치가 점차 우경화되면서 자민당 내 중도 파벌들이 상당히 약해졌다.
반면 야당들은 통합은커녕 연대조차도 약한 편이다. 일본은 1996년까지 중선거구제였던 데다가,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지금도 석패율제가 있어서 군소당 중견 의원들이 몰락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소위 '야권 연대'가 약하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가 무파벌로 활동해 왔음에도 '아베 내각을 계승'한다는 명분만으로 후임 총재로 선출되어 과거보다 파벌의 의미가 약해진 모습이 나타났다.[41] 이어진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아베 정권의 입김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받고 있다.
적어도 일본 경제 발전을 논할 때 이것에 대해선 긴말이 필요없다.
과거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던 꿈과 희망이 넘치던 일본의 최전성기를 이끌던 정당이 바로 자민당이다. 자민당의 독주라 불리는 55년 체제는 1955년에서 1993년 자민당 내각의 붕괴 시기인데 일본의 경제 도약, 부흥기는 1954년 진무 경기 부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인 1991년 까지의 시기였다.[42] 한마디로 "일본의 경제 전성기 내내 일본의 집권 여당은 계속 자민당이었다."
이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혹평 역시 적지 않지만 자민당의 아베 신조의 초장기간 총리 집권에는 아베노믹스 등의 영향으로 인한 실물 경제 지표 회복이 주된 이유로 평가받는다. 현재 일본 청년층이 자민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아베 총리의 2차 집권 이후 경제 지표 회복과 청년층 실업률이 개선된 것이 꼽힌다.#
물론 역으로 말하자면 거품경제 종식 후 기나긴 경제 침체 또한 자민당 집권하의 역사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후 잃어버린 10년을 비롯한 일본 경제의 실책에 대해서 말할 때 자민당의 책임을 절대 빼놓을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그동안 일본 경제를 지지하던 엔고가 이후 오히려 근 20여 년간 일본 경제의 숨통을 조인 악재로 작용한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반론이 있다. 지나치게 높았던 엔고로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바닥까지 하락한 가운데 자국 내수 시장으로 근근히 버텨야 했는데, 일본에 대한 서구권의 견제로 아베 신조가 2012년 총리직에 다시 취임하기 전까지 양적 완화를 통한 엔화 가치 하락은 엄두도 낼 수 없던 시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