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라는 말이 한 대선후보의 입에서 언급되었나 봅니다. 좋은 페친 중 한 분이 그 글귀를 포스팅하시면서, 그나마 청년을 벗어난 자신은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처한 처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처절하게 대변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청년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커다란 세력 중 하나인 '기성 집단'에 속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숨어있는 개인의 현실.. 이 모든 것들이 부끄러울 뿐인 것이죠.
저 문구의 원천을 찾아보니 2015년 12월 손아람이라는 작가가 경향신문에 투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저 문구를 들고나와 '지금' 정부와 현실을 비판하는 후보는 현재 야당(='2015년 여당) 소속 후보입니다. 청년들의 삶이 정치권력이 한두번 바뀌는 것으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그 시절 자신들에게 창과 같은 비판이 쏟아졌을때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다가, 자신들이 무시해서 무뎌지고 녹슨 창을 제 것인 양 들고 나오는 모습은 애처롭습니다.)
어떤 소설가는 저 문구를 조금 길게 해설하고 있어서 소개해드립니다.
.....(중략) 시골 4학년을 마친 소년은 겨울방학 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1학년 때 올라왔던 기억이 소년에겐 뚜렷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상경이 소년에겐 본격적인 상경이었다. 소년의 심경은 복합적이었다. 지난 1학년 때와 달리 서울로 간다는 것,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거기서 학교 공부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가늠하고 있었다. 지난 2,3,4학년의 경험 때문인지 서울 아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의 두려움보단,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조금 더 컸다.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른 첫 시험에서 소년은 전체 반 학생 중에서 3번째에 해당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서울은 인구가 폭발하는 도시였다. 시골에서 서울로, 지방에서 서울로 사람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밀려든 사람들, 토박이 사람들 가릴 것 없이, 셋방이건 전세건 자기 집이건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애를 낳았다. 전쟁과 절대 빈곤의 긴 터널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 절대다수는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 확신은 엄청난 '애 낳기'로 이어졌다. 내일이,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순간, 다시 말하면 경쟁에 의한 도태 가능성보다는 존재 자체로 자신의 부와 영토와 후손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순간, 암컷/숫컷에게는 애 낳기가 어떤 행위보다 승산 있는 승부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반대로 애낳기는 99% 이상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승부이기 때문에 암컷/수컷들은 애 낳기를 포기한다. 자신들의 인생을 다 갈아 넣어도 자신과 자신의 후예들이 1%의 지배자들에게 먹히거나 정상적인 삶의 도정에서 도태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애 낳기를 포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 합리적이고 / 효용 높은, 지극히 동물 본성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의사결정이다. 나아가 상위 1%에게 평생을 착취당할 바에는 상위 1%의 존재의 의미를 차라리 말살하고야 말겠다는 최후의 보복의 수단이자, 자신의 존재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일종의 자살테러이다. 생존/경쟁의 룰을 DNA에 새기고 있는 포유류는 경쟁에서 지고 비참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죽더라도 너에게 치명타를 입히겠다는 결정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중략)
손아람 작가가 사용한 '공평한 파멸'이라는 것은 '나도 죽고 너도 죽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의 존재를 지워서라도 그들의 존재기반에 균열을 주겠다는 최후의 저항입니다.
나의 후손이 나처럼 사는 꼴은 못보겠다는 포유류의 본능 혹은 의지입니다.
한국의 지배계급 혹은 1%의 권력층은 아직 아둔하여 이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록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점점 안에서, 밑에서부터 소멸해갑니다. 결국 어느 누구도 그 공동체에 남아있지 못하게 됩니다.
(손아람 작가의 2015년 경향신문 기고글)
손아람 |소설가·가수
입력 : 2015.12.31 20:05 수정 : 2016.02.02 18:07
어려운 한 해 보내셨습니다.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을 지옥으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미래의 몫으로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는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종말을 확신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상상력은 최악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등 뒤로 멀어지는 모든 시점을 우리는 그나마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과거와 작별하고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조만간 이 순간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연초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나긋하고 아름다운 거짓말의 목록은 소진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진짜로 치유하는 희망의 언어를 들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천냥 빚을 탕감해준다는 말 한마디의 가능성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면, 대통령의 신년사에 귀기울이십시오. 작년의 첫 날 대통령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기반을 다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은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고, 1인당 부채가 소득을 앞질러 3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그걸로 부족하다면 작가인 제가 더 시도해 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어떨지? 로또를 사십시오, 새해에는 모두 1등에 당첨될 것입니다!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 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주십시오. 그들은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감히 멸망을 말하지만 악의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당신들은 경악해야 합니다. 멸망은 저주나 농담이라기보다는 조국의 독립을 외치던 백범의 소원처럼 간절하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어쩌면 멸망이 우리를 덮치도록 두는 대신, 우리가 먼저 멸망의 모습을 선택할 때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멸망을 고민하는 논쟁에 참여할 자격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한국은 위기가 아니다”거나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격앙된 반론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20여년 전, 똑같은 문장들이 신문의 표제로써 조국의 미래를 진지하게 점치는 논쟁을 극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몇달 뒤 외환 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비로소 누가 진짜 애국자인지가 명확해졌습니다. 다만 그때 경험한 것은 멸망이 아니라 추락이었고 해법은 분명했습니다. 금붙이를 녹이고, 외화를 뒤져 내놓고, 회생 가망이 없는 회사의 제품과 주식을 구입하는 운동을 청년들은 지지했습니다. 이 나라는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청년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가난과 전쟁과 경제 위기를 이 나라는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맞닥뜨린 갈등은 너무나 낯선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진짜 위기인지 철부지의 투정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는 세대를 건너뛴 채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 세대가 통째로 삶을 포기한 불모지에서는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멸망이 공공연하게 선언된 땅을 독차지한 외로운 승자가 된다한들 개선행진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패배자로 남기보다는 차라리 멸종을 바라는 젊은이들이 환영의 인파를 조직해줄 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망한다면 신라와 고려와 조선이 망하듯이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망국일을 정하지 못한 채 이렇게 선언할 것입니다. 그 나라는 증발했다!
언어로 달래는 처방전은 위약으로나마 효과를 다했습니다. 누워버린 말에게는 질책도 들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정신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가난하므로, 사라진 것은 헝그리 정신이 아닙니다. 정작 사라진 것은 가난의 필요성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부유해지는 나라에서 더욱 가난하게 살기를 강요받는 국민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저 착각일까요?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 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5년 전 저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국 청년들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대학생인 전태일들은 모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는 중이었고 그 가운데 두 명은 등록금 부담으로 휴학중이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전국의 전태일들에게 다시 안부를 물었습니다. 전주의 고시생 전태일은 끝내 대학을 자퇴했고, 고시에 낙방한 뒤 여태껏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위험한 일이라도 돈이 벌린다던 거제도의 선박공 전태일은 사고로 팔이 부러져 퇴사했고, 아직 식당 주인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영화감독이 꿈이라는 부산의 극장 직원 전태일이 조선소에 들어갔습니다. 고용주인 인천의 유통업자 전태일은 오히려 자신이 약자라고 항변했었습니다. 그가 운영했던 편의점은 건물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전태일은 우리 모두의 이름인가 봅니다. 착취의 삼투 현상은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천의 전태일처럼 가게와 권리금을 빼앗긴 홍대 인근의 상인들은 세입자 모임을 만들어 건물주와 싸우고 있습니다. 같은 처지의 칼국수집을 응원하다 만난 홍대 인근의 젊은 음악가들은, 임대료 압박으로 상업화된 클럽을 떠나 음악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소속 음악가 한받씨는 리어카를 끌고 길거리 순회 공연을 벌입니다. 홍대를 벌써 등진 작곡가 김인영씨는 방송 음악을 만듭니다. 사정이 절박한 젊은 작곡가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작곡을 할 줄 모르는 음악감독은 그녀의 음악을 사서 자기 이름으로 방송에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예술가들만의 문제일까요? 이장균씨는 한의사가 된 뒤 5년 동안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그는 길목과 성격과 직종을 탓하다 마침내 사회구조를 탓하게 됐습니다. 의사 김주영씨는 식사가 끝난 뒤 작가인 저에게 계산을 부탁했습니다. 학자금 대출 수천 만원이 빚으로 남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던 변호사 김상현씨는 외국어를 배워 해외로 취직했습니다. 대기업 10년차 직원 최한영씨는 월셋방에 살며 여전히 첫 차를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부채를 감당할 배짱이 없다면 이 시대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살지 결정하는 것으로는 어디서 살지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집 갖기’ 로 검색되는 기사의 대부분이 90년대에 쓰였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습니까? 혹시 검색해볼 의미조차 없어서 모르셨나요? 신문 경제면은 이제 그런 주제를 다루지 않고, 은행들은 그런 이름의 예금 상품을 없애고 있습니다. 어떤 상품의 수익으로도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음이 명백해졌으니까요. 부동산은 투자 수단으로서 매력을 잃기 전에 주거 수단으로서 기능을 잃었습니다. 출근길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빽빽한 주택들이 다 누구의 것인지 청년들은 신기해 합니다. 누군가 벌써 세상을 남김없이 소유했기에, 집을 갖는 게 왕국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어진 걸까요? 생활의 삼대 요소인 의식주의 한 축은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주거 빈민 생활이 당연한 삶의 양식이 되었기에, 이 시대는 가난을 유례없이 엄격하게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생활을 영위할 집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사어처럼 더는 쓰임새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공허한 정치 구호처럼 오로지 ‘중간시민’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간이란 장소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라, 중간을 향한 환상을 포기 못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덧없는 치유의 주술을 그만 거두십시오. 지금 즉시 변화에 동참해 주십시오. 우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사정이 나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