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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Aug 31. 2020

곰팡이가 피었어요.

코로나때문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미국 바이어 중에 빅사이즈 전문 바이어가 있다. 이곳은 봉제를 잘 못해서 옷이 터져도 자기들 몸을 탓하고, 사이즈가 좀 안 맞아도 고객들은 자기들 살이 쪘겠거니 하고, 디자인이 별로 맘에 안 들어도 몸에 맞는 옷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에 클레임 제기를 거의 안 한다. 


그런데 오늘 바이어에게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물건에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고. 


 바이어가 보낸 검은색 바지의 사진에는 회색빛 곰팡이가 꽃처럼 가득 피어있었다. 바이어는 박스를 뜯고 물건을 검사 중이라며, 검사가 끝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머릿속이 곰팡이가 피어나는 것처럼 하얘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원인을 추적해 보니, 공장에서 생산 후 납기에 쫓겨 제습을 충분히 하지 않은 체 선적을 한 것 같고, 베트남에서 미국까지 가는 기간이 한 달 정도 걸리는데, 고온 다습한 적도를 가로질러야 했으며, 또 물건이 도착하고 나서 두 달가량을 덥고 습한 창고에 그대로 방치한 것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바이어는 코로나 때문에 상점 문을 모두 닫아서 그동안 물건을 열어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모든 환경이 곰팡이가 피기에 최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이어에게 메일을 썼다. 곰팡이 핀 옷은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살려달라고. 코로나 때문에 클레임을 맞으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하고, 나 또한 회사를 그만둬야 하니 한 번만 좀 봐 달라고. 다시는 곰팡이가 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바이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경기가 안 좋으니 곰팡이 핀 옷을 다 버릴 수도 있고, 우리 제안대로 세탁해서 옷을 팔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클레임 없이 정리되기는 힘들 것 같고, 모쪼록 최소한의 금액으로 정리되길 기다렸다.  




바이어는 곰팡이가 핀 옷을 다 골라냈다며, 수량이 오천 장이 넘는다고 했다. 


제일 저렴하게 곰팡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곰팡이 핀 옷을 세탁하는 것이다. 우리가 옷을 드라이클리닝 하거나, 물세탁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바이어는 살릴 수만 있다면 살려 보라고 했다. 


나는 미국에 있는 세탁업자를 수소문해서 몇 날 며칠을 곰팡이 옷을 드라이클리닝도 해보고 물빨래도 해보고, 스펙이 빠지지 않는지 확인하고, 바이어에게로 샘플을 보내고, 화상으로 옷이 괜찮은지 모델에게 입혀보며 곰팡이를 제거하고 옷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바이어는 옷을 빨아도 빨기 전의 상태로 완. 전. 히 복원할 수 없기에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하여, 한 달 간의 긴 여정의 종지부는 전량 폐기처분이었다. 클레임 비용은 물건 값에, 통관비에, 운임비를 포함하고 또 폐기 수수료까지 더하니 가히 어마어마했다. 


세탁업자와 세탁 방법을 간구하던 나는 이제 공장과 클레임 정리를 위해 변호사가 된 것 마냥 공장의 잘못을 낱낱이 열거하고 공장이 클레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를 백 가지가 넘게 제시했지만, 공장은 ‘완벽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클레임을 못 받겠다고 버텼다. 


공장의 변은, 그들이 물건을 제때 안 풀어서 곰팡이가 핀 것을 왜 자기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냐고 되려 따졌다. 하지만 옷을 제대로 말려서만 보냈다면 팔 수 없을 정도의 곰팡이는 절대 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든 공장과 클레임을 분담해야 했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영세한 공장은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오더가 없어서 죽을 지경인데, 클레임까지 받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이건 '코로나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자기들은 클레임을 한 푼도 못 내겠다고 버텼다.  




어떻게 공장에 클레임을 나이스 하게 물릴까 밤마다 잠을 설치던 나는 급기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두드러기는 별다른 고통은 없었지만 극도의 가려움증을 동반했다. 나는 두드러기가 덧날까 봐 마음대로 긁지도 못하고 가려운 곳에 올라온 두드러기를 하나씩 찾아 손톱으로 십자를 그리며 최대한 깊게 찍어 눌렀다. 몸통에만 피어난 좁쌀만 한 두드러기는 내 몸 여기저기에 퍼지며 나를 괴롭히다가 종국에는 곰팡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가 검은 화인을 내 몸에 남기고 사그라들었다. 


곰팡이가 핀 시점은 6월 말이었지만, 아직도 공장과는 클레임 정리를 하지 못했다. 두드러기는 다 없어진 듯싶다가도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받으면 다시 붉게 올라왔다.  내 몸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지금도 몸 곳곳이 가렵다. 이젠 몸통뿐만이 아니고 팔과 다리에도 하나씩 올라온다. 


나는 오늘도 손톱으로 몸에 십자가를 꾹꾹 그리며, 내 몸의 두드러기가 모두 없어지기를, 부디 구원의 손길이 여기에도 닿기를 바라본다. 


손목에도 등장한 두드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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