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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Sep 01. 2020

점 잘 보는 집

- 나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지 말아요. 

예전에 같이 일하던 친구가 커피나 한잔 하자며 연락이 왔다. 


친구는 근처에 볼일을 보러 왔는데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다고 했다. 이 친구는 올해로 쉰 살이 되었고, 아직 미혼에 혼자서 작게 의류 부자재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할만한 아이템이 있으면 친구에게 소소한 오더를 주기도 했다. 별다른 영업력이 없는 친구는 오더를 받는 곳이 내가 전부인 것 같았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는 공연히 돈만 날렸다며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여기 근처에 '용하다는 점집'을 소개받고 점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많은 회사가 밀집해 있는 곳에 있는 점집이니만큼 사업 운, 승진 운, 금전 운 등에 도가 튼 사람이라고 직장인들 사이에 점을 잘 보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매년 연말이 되면 승진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러 오는 직장인들 때문에 예약을 해도 며칠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집이라고 했다. 


자못 궁금해진 나는 친구에게 얼른 점 본 얘기를 좀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점을 보러 다니지 않아도 남들이 본 점은 항상 궁금하기에. 


생각보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점쟁이는 친구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물어보더니 친구의 얼굴을 보고, 사업이 잘 안되지?  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테이블 앞으로 바투 앉으며 나에게, 아니 사업이 잘 됐으면 자기가 왜 점을 보러 갔겠느냐며 손으로 테이블을 탁탁 쳤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친구가, 어떻게 아셨냐고 맞장구를 치자점쟁이는 친구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아직 돈 운이 안 풀렸다며 너무 일찍 사업을 차렸으니 적어도 이 삼 년은 더 기다려야 돈을 크게 벌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대답에 실망한 친구의 얼굴을 살피던 점쟁이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한다.  


친구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자기가 아직 미혼인데, 결혼은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점쟁이는 화들짝 놀라며, 


"아직 결혼 못했어?? 음, 혼자 살 팔자는 아닌데…… 좀 기다려봐. 인연이 나타날 거야."


라며 친구의 궁금증을 싹 자르고, 또 다른 질문은? 하고 되물었다고 한다. 


슬슬 부아가 난 친구는, 점쟁이면 뭘 좀 맞춰 보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뭐가 보이는지 말해보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점쟁이는 되려 답답하다는 듯이, 


"아니 궁금한 걸 물어, 궁금한 걸. 내가 다 말해 줄 테니까! 점집에 왔으면 궁금한 걸 물어야지 원. 나보고 뭘 맞추래 맞추길. 바빠 죽겠구먼."


라며 계속 시계만 보더라는 것이다. 친구는 더 있어도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복채 칠 만원을 내고 나왔다고 한다. 




나는 친구에게 그 점쟁이보다 내가 더 속 시원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차라리 나에게 물어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를 놀렸다. 


친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궁금한 건 딱 두 가지라고 했다. 


- 계속 이 사업을 해도 되는지, 결혼은 하겠는지


나는 친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사업은 계속해, 내가 밀어줄 수 있는데 까지는 밀어줄 테니까. 그리고 결혼은 혼자만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인내를 가지고 계속 여자를 만나봐. 그럼, 언젠가 평생의 배필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친구는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는지, 모 연예인의 이혼을 맞춘 유명한 점집 연락처를 또 받았다며, 그곳에 일단 송금을 하고 몇 주를 기다리면 전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곳은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화로 밖에 상담을 안 해준다며, 아쉬워했다. 내가 어이없다는 투로 그런 곳엔 복채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비대면이라 사 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사 만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이냐며,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 두 다리 뻗고 그냥 쉬는 게 낫다고 했다. 친구는 손사래를 치면서 여기는 진짜 연예인들도 인정한 용한 점집이라며 뭔가 답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친구의 인생에 대한 지표를 대신 설정해 줄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된다고 하면 될 것이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이리로 가고자 하면 그리 가면 될 것이고, 저리로 가고자 하면 저기로 가면 될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어차피 다른 점쟁이에게 가도 명쾌한 답은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일단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종이에 적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라고 조언해 주었다.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래도 점쟁이한테 가면 뭔가 인생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소리를 하길래, 사무실로 들어가서 일이나 하라고 친구의 등을 세게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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