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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Sep 04. 2020

재즈 카페의 도도

-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

주말에 가끔 사람 구경을 하기 위해 들르는 동네 카페, <보싸 안티구아>에 들어서면 사람 대신 나를 반기는 건,  비숑 프리제 ‘도도’다.


동네 골목길의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에는 늘 영혼을 쥐락펴락하는, 깊고 거친 그러나 달콤한 재즈가 흐른다.


카페는 늘 한산하다.


나는 라떼를 한잔 시키고 커다란 스피커 앞에 앉는다.


어느새 도도는 아기처럼 내 무릎 위로 비집고 들어앉아 몸을 동글게 말고 나와 함께 재즈를 듣는다. 도도는 눈을 감고 세상 제일 편한 표정으로 재즈를 듣는 척하지만, 사실은 우유 거품이 새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인 라떼를  먹을 찰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걸 나는 안다. 카페에서 생활하는 강아지라 그런지 도도는 나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한다. 아니 우유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도가 카페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손님들이 방심한 틈을 타 부드러운 라떼를 순식간에 핥아먹는 것이다. 아메리카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로지 거품이 풍성한 떼만 훔쳐 마신다. 하얀 주둥이가 진흙탕에서 뒹군 것처럼 커피색으로 변할 때 도도의 얼굴은 가장 행복해 보인다. 나도 몇 번이고 내 라떼를 도도에게 빼앗긴 적이 있다. 하지만 도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도도가 라떼를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다.


카페를 개업할 때부터 도도는  카페의 영업 담당이었다. 도도 말고도 진, 돌쇠도 같이 카페에서 생활하는데 유독 도도만 카페 라떼를 즐긴다.  


한 번 카페에 온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러 카페로 오는 게 아니라, 도도를 보기 위해서 카페엘 들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애교가 많은 도도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행여라도 도도가 결근하는 날에는 매상이 반으로 준다고 카페 사장이 말했다. 단골손님들도 왔다가 도도가 없으면 그냥 간다는 것이었다. 카페에 온 목적이 커피보다는 바로 ‘도도’이기 때문이다.


자태가 아름답고 또 도도하고, 엘레강스해서 붙여진 이름이 도도다. 하지만 라떼를 훔쳐먹을 때는 도도가 아니라 천진난만한 강아지로 돌아간다.




나처럼 카페에 재즈를 들으러 오는 손님은 드물다.


손님이 많이 와서 매상이 좀 오른 날에는 도도도 스팀우유를 특식으로 받는다. 주둥이를 그릇에 박고 우유를 흔적 없이 깨끗이 핥아먹은 후 아쉬워하며 꼬리를 흔드는 도도를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손님의 떼를 훔쳐 먹었을 때는 사장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고 덤비는 거라 눈동자가 흔들렸고, 갈색으로 변하는 주둥이 때문에 완전 범죄를 짓지도 못하지만, 사장이 특식으로 만들어주는 스팀우유는 달랐다.  


이름만큼 도도하지 않은, 도도를 품에 앉고 재즈를 듣고 있으면, 흡사 구름 위에서 재즈를 듣는 기분이 든다.


도도의 털은 보드라웠고, 작게 내쉬는 숨결은 따뜻했으며, 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온기는 내 체온보다도 높았다. 재즈가 깊어질수록 나는 도도를 더욱 깊이 껴 앉고, 라떼를 한 모금 마신다. 어느 순간 재즈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내 영혼도 같이 툭, 하고 떨어지지만 바닥에 닿기 전 도도가 혀로 내 손을 핥아 준다. 다행히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


좋은 재즈를 마음껏 듣고 있는 이 곳이 나에게는 그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는, 차라리 천국이었다.


또한 도도를 내 품에 안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숨결이 가장 보드라운 것을 안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내가 도도를 떠나기 전에는 영원이 다하도록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을 도도는 내게 주었다. 재즈의 선율에 맞춰 손가락으로 도도의 털을 쓸고 있으면, 나는 오래된 과거 속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점점 더 재즈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간다. 나와 내 품에 있는 도도는 세상에 완전히 분리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곡이 끝나면 나의 영혼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내가 앉은자리, 카페로 돌아온다.


카페로 들어오는 손님이 많지 않은 날에는, 도도에게도 사람 구경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도도는 창가에 있는 바로 올라가 턱을 괴고 창 밖을 응시한다. 황급히 엉덩이를 들고 밖을 향해 짖어대는 도도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도로에는 도도보다 몸집이 작은 강아지가 산책 중이다. 도도는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다. 나는 도도 곁으로 가서, 도도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그때 종소리가 나면서 카페 문이 열린다. 후다닥 바를 내려간 도도는 꼬리를 흔들며 손님에게 달려든다. 너무 득달같이 반기는 바람에 처음 온 손님은 문을 닫고 그냥 가기도 한다.


손님이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도도는 손님이 앉은 옆자리에 앉아 예쁜 표정을 짓는다.  다시 라떼를 맛볼 찬스다.


손님은 도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창 밖에서 볼 때는 인형인 줄 알았어요."

사실 도도는 인형보다도 예쁘다. 거기다가 온기까지 있다.


우유냄새를 풍기며 라떼가 나오자 도도의 코는 벌름거리고 눈동자는 빨라진다. 나는 손님에게 “라떼를 조심하세요”, 란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도도의 흰 주둥이가 갈색으로 변하면, 내 미소 또한 진하게 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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