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던 저녁 6시 무렵 침상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두발은 뒤꿈치를 붙인 채로 양손은 주먹을 가볍게 쥐어 무릎 위에 공손히 올려놓은 자세로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온 다른 병사들은 각자 개인정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칫솔을 입에 문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괜히 애들을 괴롭히며 장난치는 말년병장 문 병장부터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최병장, 주황색 운동복 바지가 없어졌다며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김상병 내무반 분위기는 단번에 적응하기는 힘들어 보이는 아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관물대 뒤쪽의 얼기설기 접어 올린 완성되지 않은 커다란 텐트식 임시 막사인 내무반은 가히 사람이 살기엔 부족함이 너무도 많아 보이는 말 그대로 임시 막사였다 내가 6주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처음 자대 배치를 받아 간 곳은 금촌 시내에서도 한참을 북쪽으로 더 들어간 월롱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제1포병여단의 예하부대였다. 그때 한창 신막사.. 그러니까 옛날식 군부대에서 현대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의 그런 시기의 군대였다 구 막사가 있던 자리는 지붕이 반쯤 허물어진 형태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부대 전체는 여기저기 위험한 물건들이 나뒹굴던 커다란 공사현장 모습이었다 새로운 신막사를 짓기 위해 우린 구 막사에서 뜯어낸 폐자제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임시 막사에서 생활하였다 아직은 봄이 완전히 찾아오기 전 4월 말의 내무반은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전기 다마의 불빛이 하나둘 껌벅거리는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생활환경이었다 6시 반 정도가 됐으려나 일직 사병인 김 병장이 손에 상황판을 들고 내무반을 찾았다 "자자.. 주목" "권오헌 이병이 누꼬?" "이병 권오헌" 군기가 들 때로 들어있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오른손을 귀 쪽에 붙인 채로 번쩍 들어 올리며 크게 대답하였다 약간은 못마땅한 듯 김 병장이 빈정대는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근데.. 닌 뭔데.. 지금 이 시간에 누가 면회를 왔니" "집에 무슨 일 있나?" "이병 권오헌.. 잘 모르겠습니다" "넌 개살구야 아는 게 뭐꼬" "니 아버지 스타가?" "됐고.. 정회가.. 야 대꾸가 옷 갈아 입혀가 포대장님 상황 보고하고 위병소로 가본 나" 지금 돌아가는 이 상황이 난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평일에 누가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고 그것도 저녁 7시가 다되어 면회를 온다는 건 스타.. 그러니까 장군의 아들이나 집에 무슨 일이 생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는 그런 일이 아니고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거기다 이런 식의 일이 생기면 근무자를 모두 바꾸어 상황판을 다시 짜야하므로 일직 사병인 김 병장으로썬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니었다 자대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놈이 면회라니 그것도 저녁 일과가 끝난 시간에 말이다 난 신참이어서 그때는 부대 적응 기간이라고 하여 근무도 서지 않는 열외 기간이었다 선임들이 볼 땐 난 신참 햇병아리 수준의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상황을 맞추기 위해 같은 통신과 선임인 김정회 상병이 위병소 근무를 바꿔 신참인 나를 대리고 나가 면회 아닌 면회를 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별거 아닌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개념 없는 상황인 건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대충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훈련소에서 받아온 A급 전투복을 가져다 정성스레 다림질해주는 오바로크병도 있었고 아직 샤워를 할 수 있는 짠 밥이 되지 않는 나를 데려가 샤워를 시켜주는 병사도 있었다 아직 자세가 나오지 않는 신참내기 이등병을 데려다가 그 짧은 시간에 때때옷도 입히고 분칠도 하여 깨끗한 모습의 군인을 만들어놓았다 곧이어 김정회 상병의 손에 이끌려 상황실이며 beq까지 다니며 면회 신고를 하고 다녔다 모든 신고를 마치고 난 후 시계를 보니 밤 8시가 다되었다 나도 누가 면회를 욌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긴장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과 긴장감으로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김정회 상병과 함께 위병소에 도착하니 반대쪽 주차장에서 차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분명 아버지였다 여길 어떻게 왔냐며 우린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이 얘기 저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30분여간의 짧은 면회 아버지가 자대 배치를 받고 온 아들을 보러 오신 첫 면회였다 너무 보고 싶어서 퇴근 후 차를 돌려 이곳으로 오셨다고 한다 특별히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서 건네받은 담배 한 보루가 모든 걸 짐작하게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검정봉투에 담아온 88 담배 한 보루.. 그때 군에서 보급받던 솔담배에 비하면 고급담배였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귀한 건 아니지만 그때 그 담배 한 보루를 받아 든 내 모습은 아버지에게 남자로서 인정받는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걸 아버지는 진작에 알고 계셨던 거 같다 군대에서도 담배가 보급품으로 나오지만 그걸 모를 리 없는 아버지가 사다 주신 88 담배 한 보루 난 지금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다준 첫 담배가 의미하는 걸 알고 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창피하고 불만이었는지 아버지가 뜬금없이 찾아온 면회가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나만 유별난 거 같은 그런 생각에 다신 이런 식으로 오지 말라고 맘에도 없는 말들을 했는지 주말이면 면회를 자주 오는 아버지가 그땐 그렇게 싫었다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꼭 담배를 사 오시고.. 근데.. 그때가 그립다~ 지금같이 세상에 때가 묻어 뻔뻔한 지금의 내 모습의 아들이었다면 아빠.. 매주와.. 매주 와서 주말에 나 좀 빼내 줘.. 그랬을 텐데...
출처 네이버
내 아들이 어느새 19살이 되었다 나도 가끔 아들에게 장난식으로 이야길 한다 혁창이 군대 가면 아빠는 부대 옆에다가 방하나 얻어 매일 면회 갈 거라고 그러면 아들은 죽일 듯이 내입을 틀어막는다 내가 어느새 아들을 군대에 보낼 나이가 되니 그때의 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된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싫어할 일도 좋아할 일도 아닌데 지금은 좋았던 기억만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