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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Oct 26. 2021

바다거북이는 용왕님의 택배 배달원

특별한 선물

2000년 봄 내가 결혼을 하고 그다음 해 7월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하였다

핑곗거리가 없어 나가지 못하고 있던 해외여행을

친구의 신혼여행을 핑계 삼아 따라간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서 페리를 이용해 1시간 정도 뱃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인도네시아 서북부에 위치한 빈탄섬에 도착한다

제주도 크기의 반 만한 큰 섬이었지만 섬 곳곳은 개발되지 않은 천연의 모습이 많았고 해안가 쪽으로 우뚝 선 리조트만이 우리를 반겨주는 듯 일정 또한 오롯이 리조트에서만 보내는 힐링 여행이었다

규모가 상당한 크기의 리조트를 구석구석 돌며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았지만 리조트에서만 보내는 3일은 혈기왕성한 20대의 젊은 신혼부부들 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컨시어즈의 제안으로 바닷가 해양스포츠를 즐겨보기로 하고 해안가로 간단히 짐을 챙겨 나갔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해양스포츠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이곳 원주민들의 서비스 정신이나 안전에 대한 개념조차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의 해안가 그 자체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해변을 거닐고 있는 몇몇의 연인들을 빼고는 한산한 우리나라의 10월 정도의 인적 드문 해변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다행히 해변 한가운데엔 제트스키 여러 대를 가져다 놓고 대여 서비스를 하는 원주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Hello, can I ride jet ski?"

"???"

다행이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


"이꾸라데쓰까?


해외에 나가서는 일본 사람인척 해야 일본의 위상을 떨어트릴 수 있다

실수 많은 우리들에겐 이 방법이 그나마 애국할 수 유일한 방법이다


근데..이 사람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얼마예요?"

"오~텐 딸라..텐..딸라..만원만원.."


역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듯하다


그렇게 우린 제트스키 두대를 빌려 무섭다고 안 타겠다는 여자들을 해변가에 남겨두고 남자들만 제트스키 체험을 해 보기로 하였다

가슴을 조여주는 클립이 떨어져 나간 낡은 구명조끼를 입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주의사항 설명에 귀 기울일 틈 없이 제트스키의 엔진 소리는 이미 굉음을 울리고 있었다

작년 하와이 신혼여행 때의 엄격한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제한된 코스에서만 짧게 제트스키를 타봤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어설픈 한국말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손짓하는 원주민의 재촉에 두 번째 제트스키 경험자인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부릉부릉"

상체가 뒤로 젖혀질 만큼 풀 액셀을 당기며

제트스키는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갔다

멋지다고 하는 건지 웃기다고 하는 건지

모래 속에 다리가 반쯤 박힌 작은 의자 서너 개를 가져다 놓고 앉아있던 원주민 아주머니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대는 소리가 내 귓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구와 난 S자를 크게 그려가며 제트스키의 스릴을 만끽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경쟁하듯 둘은 잔잔한 바다에 파도를 만들어 내며 더 멀리 더 멀리 나아갔다

정말 수평선의 끝에 도착이라도 하려는 건지 우리밖에 없는 빈탄의 앞바다를 원 없이 후비고 다녔다

호루라기를 부는 안전요원도 위험지역을 알리는 부표 하나 없는 드넓은 바다에서 제트스키를 타보는 경험은 만원의 행복을 넘어 열 배의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았지만 우리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변가의 사람들은 깨알보다도 작아 보였고 그마저도 햇빛에 반사되어 저기가 해변인가?만을 짐작게 할 정도였다

너무 멀리 나온 거 아닌가? 두려움이 살짝 엄습해 오려던 그 순간

빡..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에 부닥치는듯한 느낌을 받고 그 충격으로

제트스키와 분리되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제트스키는 내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고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순간 등에 뭐가 닿는 듯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다 정말이지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수면 위로 반쯤 보이는 등껍질의 크기가 정말 위성접시만 한 바다거북 몇 마리가 내 주위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나를 쳐다보듯 맴돌고 있었다

가뜩이나 물을 무서워하던 나는 놀랄 틈 없이 허우적 대던 몸짓을 멈추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재빠르게 제트스키 위로 몸을 옮겼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제트스키가 수면 위로 올라온 바다거북이의 딱딱한 등껍질을 친 듯했다

그 사고로 제트스키와 내 몸은 분리됐고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발밑에 보이는 비행접시만 한 바다거북이가 우굴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이 멎을 듯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다행히 꺼졌던 제트스키의 시동이 한 번에 걸려 거북이를 뒤로한 채 바닷속을 살피며 아주 천천히 해변가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보면 얼마나 놀랐고 두 번 다시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아찔한 순간이었는지

그 짧은 순간 바다 한가운데에서 내가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지금까지도 바다를 무서워한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고래의 몸통 일부분만이 밖으로 나와있는 장면을 볼 때면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는 돼지처럼

발이 닿지 않은 바닷속에서 커다란 거북이의 몸통 일부분만을 눈앞에서 바라본다는 건 그 공포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바다 한가운데서의 거북이와의 만남

물에 빠진 채로 눈앞에서 바라다보던  바다거북이는 마치 고래를 만난 것처럼 커다랗게 느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정확히 한 달 뒤

그렇게 바라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친구의 신혼여행을 따라간 이유도

아이가 1년 넘게 생기지 않아 환경을 바꿔보는 게 도움이 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임신테스트기에 흐릿하게 올라온 두줄을 본 감동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두 번의 유산과 힘들어하는 아내를 바라볼 때마다 느꼈던 미안한 마음이 눈 녹듯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빈탄섬에서의 거북이와의 특별했던 만남

그곳에서의 아찔했던 기억은 나에게 새 생명이라는 선물과 함께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그 거북은 나에게 정말 선물을 가져다주러 나타난 것일까?


배우 남궁민은 드라마 첫방이 있기 전 늘 거북이를 보러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북이를 보면 드라마가 대박이 난다는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나 혼자 산다에 출현했을 당시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가 대박이 나길 바라며 직접 바다거북을 만나겠노라고 하와이해변을 찾은 적이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남궁민은 해변가에 올라온

바다거북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남궁민에게도 바다거북은 그런 선물일지 모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 같은 특별한 경험으로 바다거북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서 아들을 만날 확률과 같을 수도 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바다거북이 내게 가장 큰 선물을 주려고 찾아온 거라고 믿고 싶다


인도네시아의 섬 빈탄은 그렇게 나에겐 좋은 기억과 공포의 섬으로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이제는 스무 살이 된 거북이 아들과 빈탄을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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