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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Aug 29. 2020

그랜드 캐년을 연상시키는 우리 집 뷰

청약 떨어진 아파트 공사현장


우리 집 뷰는 한강 뷰도 아니고 숲 뷰도 아닌 공사장 뷰다. 거실 창문 전면에 실눈을 뜨고 보면 언뜻 그랜드 캐년처럼 보이기도 하는 공사장 풍경이 펼쳐져 있다. 공사 작업이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실시간 라이브 감상이 가능하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사장 라이브 쇼에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한다. "와아....()"

열일하는 덤프트럭 부대들

곳엔 약 1700세대가 들어올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 작년에 이사 왔을 때는 원주민들이 모두 이주한 뒤였고 넓고 텅 빈 모래언덕과 철거하다 만 담벼락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매일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가파른 언덕을 비틀비틀 위태롭게 오르내리며 흙을 조금씩 파내고 있었다. '저 산을 언제 다 파내나?' 별 걱정을 다하면서 산이 어제보다 얼마나 더 깎여 내려갔는지 확인하는 것 나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태풍이 오는 날에는 공사현장에 강한 태풍 대비한 매뉴얼이 있는지 궁금했고 공휴일에 여전히 온 동네를 가득 우고 있는 공사 소리를 들으며 공사장은 빨간 날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날은 일요일 딱 하루였다.

공사장에서는 평소에 흙먼지 날림 방지를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을 뿌려 주는데 비가 오는 날 물탱크차를 굳이 안 써도 되니 하기 더 수월할듯했다. 그래서인지 비가 올 때면 왠지 포크레인 더 신명 나게 흙을 푹 퍼서 180도 회전 댄스를 추는 것 같뚱땅, 부웅, 삐삐 공사 소리 소음이 아닌 활기로 느껴졌다.

내가 그 공사현장에 감정이입을 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를 구할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개발구역이었기 때문이다.


고대했던 그 아파트의 분양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개미 코딱지만 한 희망을 품었다. 희망을 가질 정도면 그래도 청약점수가 꽤 높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점수는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 청약점수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신혼 때 청약 통장을 해지하고 거기 있던 600만 원을 탈탈 털어 전세 대출을 갚는데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했던 2013년 당시만 해도 집값이 폭락하고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던 때라 청약통장은 크게 쓸모가 없어 보였다. 무지함이 이리 큰 재앙을 몰고 올지 누가 알았을까.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해맑게 청약통장 해지 버튼을 클릭하고 있는 나에게 통장에 제에발 천 원만이라도 남겨놓으라고 사자후를 마구 발해 줄 것이다.

일반 분양은 택도 없는 우리는 결혼 7년 이하의 부부들을 위해 마련된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렸다. 그런데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다자녀 우대가 있어서 사실상 세 자녀가 아니면 가능성이 희박했다. 우리는 아이 셋 있는 집이 부디 많이 지원을 안 해주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시시때때로 "우리도 애 하나 더 낳을까?라는 (개)소리를 했다. 오죽 답답해서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 섞여있어서 더 소름 끼쳤다.

지난봄에 드디어 그 아파트의 분양 공고가 떴다. 경쟁률은 역대급이었다. 우리 같은 두 자녀 가정은 낄 수도 없는 세 자녀 가정들끼리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원할 평수와 A, B타입 중에 어느 구조를 선택할지 남편이랑 진지하게 상의했던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우리 둘이서 블랙 코미디를 한편 찍은 느낌이랄까. 수능점수 250점 받아놓고 혹시 붙을 수도 있어서 서울대 무슨 과를 지원할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지함이었다. 청약은 떨어졌지만 남편과 나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내 집 마련은 하지 않겠냐, 사실 저 아파트가 최선은 아니었다, 지금은 좀 더 돈을 모으는 게 맞다며 정신 승리를 룩하였다.

우리 집 거실 창밖에는 나를 약 올리듯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다. 청약 떨어지고 나서는 공사현장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저씨들이 어찌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공사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저 집은 내 집이 아니다.


갑자기 포크레인 엔진 소리가 너무 큰 것 같고 공사 흙먼지가 날아와 리 거실 바닥에 막 쌓이는 기분이 . 멀쩡하던 배도 살 아파온다. 새벽부터 땅을 울리며 공사장으로 들어오는 중장비차 소리도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공사장 소음 모닝 콜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나'

'우..민원 넣을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지금 시대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속담을 '창 너머 남의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또르르)


내가 이다음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파트가 지어지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내한 인근 주민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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