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한테 사과를 하라고?
그래 네가 그러니까 계속 혼자 일한 거야
퇴사하는 날 보안유지 각서에 서명을 하면서 행정 선생님에게 준비한 영양제를 내밀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만두게 되어서 선생님께는 죄송해요."
회사에게 직원이 나갔을 때 남아있는 직원이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건넨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그녀는 당황해하며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하며 덧붙였다.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이거 제 자리에 몰래 놔주실 수 있을까요? 대표님이랑 원장님이 보시면 좀 그래서요."
미운털이 박힌 내게 선물을 받은 걸 알면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겠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자리에 두고 나중에 카톡으로 위치를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휴게실 서랍 안쪽에 영양제를 깊숙이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하다고.
영양제는 세 번째 서랍 안 쪽에 넣어놨다고.
그녀에게 답장이 온 건 이틀 뒤였다.
지방에 일이 있어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ktx에 위치한 카페에서 카톡을 확인했다.
일이 많아 정신이 없어 지금 연락한다는 그녀는
영양제를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장문의 카톡을 내게 보냈다.
내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내가 죄송해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대표라는 말을 사회 선배랍시고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
돈도 안 받고 자기 시간을 내서 나를 가르쳐준 대표에게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속이 끓어 올라 먹던 빵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뭘 안다고 나한테 이런 말을 이토록 주제넘게 하는 걸까.
대표가 내가 뭘 알려줬다고 생각하는 걸까.
책을 읽고 논문을 읽고 정리하고 수업 자료를 만든 건 나인데.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저녁 수업을 도맡아 한 것도 나이고
시간당 수업료 만 오천 원을 받으면서 포토샵부터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한 것도 시간 외에 청소도 군말 없이 했던 것도 나인데
약속했던 출강비의 40% 떼인 것도
결국 120만 원 받으면서 대표 말 한마디에 5분 대기조처럼 일했던 나에게 사과를 하라니.
분이 차 카톡에 글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가치가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래도 속이 상한 건 변하지 않아 같이 출강을 나가고 같이 그만두기로 한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기가 차다는 듯 말을 했다.
"아니 지가 뭔데? 대표한테 잘 보이려고 아주 용을 쓴다."
함께 욕하며 같이 웃어넘기다 보니 한결 마음이 풀렸지만 한편에 남아있는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기차를 기다리다 행정 선생님의 카톡에 적힌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나는 원래 혼자 일했고 혼자서 잘 해내간다고 그러니까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그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네가 그러니까 계속 혼자 일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