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오래 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스쳐간 상사들이 얼마나 캐릭터가 독특하고 확고한지, 주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인공도 극 중에서 죽여 하차시켜 버리는 종영은 있을 수 없는 시즌제 미국 드라마 마냥 에피소드를 쏟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들이 내뱉는 말에 내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 했다.
혹여나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지금 상황에 놓인 건 내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한 나를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나를
정당한 대가도 못 받으면서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며 멍청하게 몸을 갈아서 일했던 나를
합당한 피드백이라면 발전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내뱉는 건 말이 아니었다. 배설이었다.
똥을 아무리 여러 각도로 살펴봐도 똥일 뿐인데 왜 원인을 찾으려고 집착했을까.
그들이 내버린 배설을 온몸으로 맡고 더러운 악취에 자기 혐오감만 늘어나는 건 나였다.
정작 더러운 건 그들의 몸에서 나왔는데 말이다.
하루는 수업에서 학생이 화상을 입었다. 학생에게는 차가운 물로 환부에 화기를 빼라고 말했지만 괜찮다며 수업을 빠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바로 상황을 원장에게 알렸고 응급약을 요청했다. 응급약이 상시준비되어 있으니 화상을 입으면 바로 오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말했던 원장. 그러나 실상 같이 약통을 열어보니 화상 드레싱은 커녕 연고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수업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화기라도 빼기 위해서 지퍼백을 달라고 했다.
얼음을 담아 수건으로 감싸서 화기라도 빼자는 심산이었다. 내가 설마 얼음을 바로 환부에 가져다 댈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내 말에 그렇게 하면 살갗이 벗겨진다면 자신이 화상을 잘 다뤄봤다고 말했다. 더 이상 수업을 지체할 수 없어 후시딘이라도 들고 수업에 들어가서 계속적으로 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음날
그녀는 아침에 직원들이 모두 있는 단체 카톡에서 전날 발생한 일은 내 책임이라며 말했다 말했다.
그런 일에 혼자 판단이 안되면 자신에게 곧장 알리라고 내가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알려주는 거라며.
그녀는 기내에서 일했기 때문에 화상 환자를 잘 다뤄봤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 직종이 의료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전날 바로 원장에도 알렸고 계속적으로 상황도 확인했기에 원장이 저런 게 말한 건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한참 뒤에 카톡으로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내 전화를 받기 싫은 상황이었겠지.
그래서 평소 수업 보다 일찍가서 상황을 해명했다.
그녀는 또박또박 내가 말대답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와의 말다툼이 있고나서 원장은 자신의 카톡 프로필을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꿨다. 그 사진을 보니 나는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기내에서 일했었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원장의 행복이 과거에 그곳에서 일했던 그 순간에 멈춰있어 보였다.
보통 프로필 사진이나 여타 sns에 올리는 사진은 행복한 순간의 모습인데 원장은 못해도 4년 전의 그 순간이 행복했구나 싶었다. 원장은 행복은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한발짝 떨어져서 그 사람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학벌도 낮고 내세울 것도 없어 열등감에 똘똘 뭉쳐서 자존감이 낮았던 대표
그래서 자신을 신처럼 받들어 주지 않으면 발작버튼을 눌린 사람마냥 이성을 잃었고
그런 그와 함께하는 원장도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닮아가는 건지
권위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하루는 원생 한명이 우스게소리로 지나가듯 말했다.
원장님은 별로 안행복한 것 같아 일이 힘드신가~
그때는 웃으며 늦은 시간이라 피곤하셔서 그래요 하고 넘겼는데
그녀는 정말 그런것 같다.
상대를 관찰하니 그들의 삶이 측은하며 우스웠다. 평생 저렇게 살며 다른 사람을 대하겠구나.
그렇게 살면 진정 그들을 위해 줄 사람은 한명도 만나지 못할텐데.
약한 사람인수록 사람을 함부러 대하니 이제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참 약하고 하찮은 사람이구나하며 내가 아닌 그들을 동정한다.
이것 또한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태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