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서 Aug 01. 2023

28살 다시 쌩신입으로

프리랜서로 살았지만 누구보다 프리한 삶을 살지 못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되었던 이유는 방송작가는 대부분 프리랜서였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강사가 된 이유는 대표라는 선생이 날 싼값에 이곳저곳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대학시절 내내 방황만 했던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사실 찾지도 않았다.

내가 놓인 현실을 파악하면 비참 해질까 봐였을까.


남들이 이름을 들었을 때도 알지 못하는 회사를 갈 바에는 특이한 직업을 갖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다.


그럼 의미에서 프리랜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일반적인 직장인과 난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허황된 삶을 욕심냈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프리'는 내가 아는 프리와는 달랐다.

프리랜서는 법률의 보호에서 방치되어 프리랜서였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이제는 그냥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는 퇴근하고

별일이 없다면 주말에는 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원했다.


그러나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아등바등 살아야 된다는 아빠의 말처럼

나는 다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허우적 돼야 했다.


다시 이력서를 쓰고

새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나의 일대기를 보니 열심히 살았구나 싶으면서도

너무 목표 없이 막살았나 싶은 생각에 입술 잘근 씹었다.

열심히 살았다는 설명은 먹히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처럼

과거의 경험이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과거의 경험이

지원하는 직무와 무슨 연관성이 있냐는

면접관들의 다소 날 선 질문에도

더 이상 위축되지 않는다.


그냥 숨 한번 크게 쉬고  

솔직하게 말한다.


언제 가는 내게 맞는 평범한 자리에 앉을 수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무례한 상사를 동정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