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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아 기자 Aug 29. 2020

[배우론] 김도빈, 필사적인 싸움

<미아 파밀리아>,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김도빈이라는 배우


우울한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가운데, 배우 김도빈이 출연 중인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는 예정했던 종연일보다 폐막을 이틀 앞당겼다. 예상치 못한 전염병의 흐름이 대학로 일대를 덮치면서, <미아 파밀리아>에서 그가 맡았던 리차드의 첫 대사는 씁쓸한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 마디가 되었다. "우리들의 공연도 오늘이 마지막." 2020년 8월은 김도빈이 오랫동안 서울예술단원이자 뮤지컬·연극 배우로 살아온 시간 중에서 가장 척박한 마음으로 이 대사를 말해야 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M.Butterfly>에서 김도빈은 기존에 르네 역을 연기했던 다른 배우의 세계보다는 조금 더 젊고, 치기에 가까운 남자로 르네를 그려냈고, 히스테리가 깔린 대사 한 줄 한 줄을 불행을 자초한 다혈질의 남성의 것으로 납득시켰다. 그리고 여러 작품에서 투쟁적인 사람의 삶을 연기하면서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의 세계를 넓혔다. <미아 파밀리아>에서 마피아 스티비에게 저항하고 보드빌리언의 삶을 외치는 리차드는 같은 역할을 맡은 다른 배우들의 해석보다 훨씬 더 신경질적이었고 예민했으며, 예술이 스러져가는 대공황의 시대에 보다 적대적이었다. <더 헬멧 Room's Vol.1>에서 주어졌던 여러 역할들, 그리고 <레드>의 예술가, <오펀스>의 폭력적인 고아, <지구를 지켜라>의 비양심적인 기업가는 각기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은 달랐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에 저항하기 위해 부단히 투쟁하는 방법을 익혀가는 사람들이었다. 배우로서 김도빈은 이 역할들을 통해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세상에 던져넣는 서툰 청년이었다가, 선과 악을 구별짓고 싶어하지 않는 막무가내의 어른도 되었다. 이런 그의 선택들은 지금에 이르러 마냥 웃고 떠드는 엉뚱한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는 <미아 파밀리아>를 대공황시대 보드빌리언의 자기애 섞인 애환의 텍스트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마치, 지금 여러 예술가들 앞에 닥친 위기를 미리 보여주듯이. 그리고 메마르고 척박해진 삶을 무엇으로 적실 것인지 해답을 찾듯이, 김도빈의 리차드는 필사적으로 생을 붙잡는다.


연극 <더 헬멧: Room's Vol 1.>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에서 발로쟈 역을 맡아 좁은 무대를 자신만의 신경질적인 아우라로 채워넣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지만, 또다시 자기 것을 얻기 위해 싸우는 자의 모습이었다. 열쇠를 빼앗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주변인에게 정신적·신체적폭력을 가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소년은 서열 싸움에서 우위를 쥐고 싶어하는 철없는 열정의 산물을 전시하다가 이내 선과 악의 승패가 모호한 결말로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숨막히게도, 발로쟈의 그릇된 투쟁은 그저 고민과 불편함을 안기는 것만으로도 승리한 것에 가깝다. 2020년에도 비슷한 일들은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배우로서 김도빈이 무대 위에 펼쳐놓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가치 판단의 영역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무겁고, 부담스럽다. "우리들의 공연도 오늘이 마지막." 별 것 아니어 보이는 한 줄의 대사조차도 8월 29일, 머지않아 예술이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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