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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Aug 03. 2020

[오로빌+20] 어떤 점심식사


오전에 영어수업을 듣고 있어. 

70대 할머니 선생님인 앨리스가 자신은 요리하는 것이 힘들다.라고 말했지.

같이 수업을 듣던 수리아가, 내일 점심은 우리집에 와서 먹을래?하고 묻더니

나에게 너도 올래?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당연히 가겠다고 했지. 


11시. 

점심먹기엔 애매한 시간인데...그런 말을 물어볼 영어가 안되니까. 

그냥 조용히 11시에 수리아네집으로 갔어. 


앨리스는 전화도 안되고, 오지도 않고.

30분 정도를 수리아와 둘이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ㅋㅋ

나는 수리아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이해한걸까?

또 수리아는 내 얘기를 알아들었나? 애매모호한 시간이 흘렀지. 


앨리스는 오지도 않았는데, 수리아가 상을 차리기 시작했어.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었지. 

온갖 야채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차례대로 나오고

곧 새우와 오징어까지.

우와~~ 오로빌에서 처음보는 진수성찬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불판이 나와. 전기불판. 

헐..이걸 오로빌에서 볼 줄이야. ㅎㅎ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리아의 친구 2명이 들어와. 

난 나와 앨리스만 초대받은 줄 알아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뭐 어때. 

인사를 나누고 

인도, 벨기에, 캄보디아, 한국...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불판에 둘러앉았지.


고기는 노릇노릇 익어가고 맛있는 냄새는 술술 풍기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어. 

드디어 모든 것이 다 익고, 먹을려는데

헐. 

이 인도사람과 벨기에사람이 채식주의자인 것이야. 


수리아...왜 이런 짓을?

채색주의자들을 초대해놓고,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를.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도 아니고. 

나는 어떡하라고. 


갑자기 고기를 먹는데 괜히 눈치가 보여. 

수리아는 계속 나에게 _너 소 좋아한다며? 얼른 먹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지?


난 왜 불편하지? 내가 고기를 먹는게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 

눈치보며 고기를 한 두 점 먹긴 했지만 영 맘이 불편해서

채소나 씹어대고 있었지. 


갑자기 5,6명의 사람들이 막 들어와서 나에게 하이~하고

맛있는 냄새가 저~~~~기부터 난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그냥 앉아서 막 먹어. 


수리아? 나를 소개정도는 시켜줘야 하는거 아냐? 응?

눈짓을 해봐도 수리아는 고기 굽느라 바쁘고. 

그래도 비채식주의자들이 와서 함께 고기를 먹었지. 

이제 좀 편안해지더군.


잠시 후, 드디어 앨리스도 왔어. 

오~~ 나의 구원자. 어찌나 반갑든지. 껴안을 뻔 했잖아. ㅋㅋ


다들 배를 좀 채우고나자, 뉴페이스인 나에게 관심을 갖더군. 

통성명도 하고 (사람은 많고, 이름은 길고 ㅠㅠ)

난 한국인이야 했더니.

누군가 _한국 소는 진짜 맛있다던데, 넌 여기 소는 별로였겠다?

_음...한국소가 맛있지만, 그래도 여기도 괜찮았어.라고 생각만 했지.

내가 생각만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국 소에 급 관심을 갖더군. 

한우의 위대함을 여기서 확인할 줄이야. 


어쨌든 밥은 잘 먹었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영어 리스닝(만) 공부를 좀 했고. ㅋㅋ


수리아~ 밥은 정말 맛있었어.

초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





내가 베지테리안과 고기를 먹게 된 이 식사에 대해 얘기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_신경안써.라고 대답했어. 

그래...아마 그런 것 같아. 

그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괜시리 내가 뻘쭘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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