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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Jul 31. 2020

[오로빌+16] 새해 첫날, 폰디라니.


연말연시에는 조용한 오로빌에서도 여러 행사들이 있어. 크리스마스보다 더 많은 안내를 받았지. 그중 내가 선택한 것은 Pavilion of Tibetan Culture에서 열리는 Annual Light Meditation이었어. 오로빌에서는 중요한 날(?) 행사가 Meditation이야. 명상이라고 번역하긴 하는데,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가부좌 틀고 눈감고 앉아서... 이런 것과는 좀 달라. 그냥 편안한 곳에 앉아서 조용히 있어. 가끔은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음악이 없을 때도 있고.  


오후 6시 45분.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행사의 시작 시간으로는 어색한 시간이지? 정각도 아니고, 30분도 아닌, 45분이라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많은 초에 불이 밝혀져 있었어. 우리도 몇 개의 초에 불을 밝히고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지.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음악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각자 명상을 했지. 특별히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도, 오가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어. 그냥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침묵 속에 각자의 내면으로 들어갔나 봐. 

여기는 앉으면 안 돼요. 이런 안내도 없어. 분명 거기 앉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불편할 것 같은데 누군가 앉으면 그냥 그대로 비켜서 가고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그냥 마음을 내리고 다시 내면으로..


1시간 정도 그렇게 앉아있었나 봐. 좋더라. 특별히 한 해 마무리, 새해 계획... 이런 거 하지 않았어. 그냥 그대로 있게 되더라. 그래서 좋더라. 






그리고, 오늘 새해 첫날. 

아침 6시에 반얀트리 아래에서 New Year Meditation이 있다고 했는데, 역시.. 새해 첫날이라고 눈이 잘 떠지는 건 아니라. ㅠㅠ


그래도 뭔가 하자고 폰디를 갔지. 폰디체리, 폰디 셰리, 뿌뚜 체리... 아마 앞에 두 개는 프랑스식 이름이고 마지막이 인도식 이름인 듯. 여기선 모두 폰디(퐁디)라고 하더라고. 폰디는 영국령이 아닌 프랑스령이었대. 그래서 프랑스식 건물들이 남아있고, 내 인생 영화 '파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해. 바실리카 성당도 있고, 프랑스식 건물도 있고. 바다가 있지. 태평양이 아닌, 벵골만. 


일출은 아니더라도 바다를 보러 가자. 릭샤를 타고 (다시는 폰디갈 때 릭샤를 타지 않겠어!) Rock beach에 내렸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인지. 파도가 거세더라. 벵골만 바다는 태평양처럼 예쁜 색이 아니더라. 날씨 때문이었을까? 인천 앞바다랑 비슷하지 뭐야. 쳇. 실망이야. 


커다란 간디 동상을 봤고 (인도 사람들은 간디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ㅠㅠ) 바실리카 성당을 봤고 (형태는 바실리카, 색깔은 인도) 프랑스식 건물들도 봤고 (역시나 칼라풀) 오래간만에 고기를 먹었지. 스테이크~~~!! 그리고 폰디에 백화점이라는 Providence Mall에 가서 KFC까지(물론 KFC에서도 카레와 맛살라 맛이 나지)


Sacred Heart of Basilica 성당, 발리우드풍 찬송가가 흘러나와 우리를 웃기 만들었던.


말 그대로 Rock beach



새해 첫날, 바다가 있는 관광지 폰디에는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았어. 비가 오락가락해서 편히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인도 사람들은 우리를 정말 뚫어질 때까지 쳐다보더군. 나중에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옷에 구멍이 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계속 계속 쳐다보다가 견디다 못한 내가 hello~하면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지. 


경적소리는 끊이지 않고 사람, 차, 오토바이, 릭샤, 자전거가 모두 한 길에서 뒤엉켜다니다가

다시 오로빌에 돌아왔을 땐, 슈군이 여기가 원래 이렇게 조용했었어?라고 묻더군. 나도 오로빌이 정말 천국 같더라니까. 


폰디에 세 번째 다녀왔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면 늘 진이 빠지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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