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는 Jul 30. 2020

[오로빌+13] 오솔길은 잘못 없다


그 날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추웠다. 

보통 밤에나 좀 춥지. 아침에는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전에 잠깐 테라스에 나갔다가 카디건을 입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오래간만에 청바지와 카디건을 입었다. 운동화도 신었다. 



운동화. 

사랑하는 친구가 인도에 가면 필요할 것 같다며 꼭 사주고 싶다 하여

함께 쇼핑하고 고르고 골라서, 아끼고 아끼느라 출국할 때 처음 신었던 그 운동화. 


흙바닥을 걸어야 하니 하얀색과 검은색을 제외해야 한다고. 금방 더러워질 거라고 

그래서 쇼핑몰 운동화 코너를 세 바퀴를 돌았던가? 그 운동화. 


판매하는 직원이 _선물하시는 거예요?라고 묻고

친구가 _얘가 멀리간대요.라고 해서

내가 _ 근데 왜 신발을 사주는 거야? 가서 아주 오지 말라고? 

다시 친구가  _응 오지 말라고 아주 멀리 가버리라고 ㅋㅋ

하며 함께 웃었던 그 운동화. 


헤어지던 마지막 순간 허그하며

_그동안 고마웠어.라는 친구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져, 차마 목이 메어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그렇게 들고 온 그 운동화. 



그 운동화를 오로빌에 와서 처음 신을 날. 

점심을 먹고 장을 보러 식료품점에 갔다. 

한참 장을 보는 와중에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직원은 금방 그칠 것 같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장을 보고 나와 처마 아래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자전거에 올라타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자전거에서 내려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스콜인지 몬순인지 이 놈의 비에 

내가 사랑해마지않던 그 오솔길은 이미 진흙탕 길이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패인 곳엔 물웅덩이가 생겼고

잘 다져지지 않은 곳은 진흙탕으로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쓰러질지언정 운동화는 망치지 않겠다는 필사의 노력으로 

집에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코스.... 거긴 웅덩이가 제법 깊을 것이었다. 

순간 남편이 자전거의 방향을 바꿨고. 나도 그냥 따라가게 되었다. 


물 웅덩이를 피해 간 곳엔 흙더미를 넘어가야 하는 길 뿐. 

결국 자전거에 내려서 흙더미를 넘어가며 운동화는 망쳐졌고

이 망할 놈의 오솔길..이라는 말을 몇 번 되풀이했는지 모르겠다. 




운동화를 빨며.

이 붉은 흙이 흔적이 남을 텐데... 하며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마지막 순간에 방향을 돌린 남편에게 화가 난 건지.

또 그걸 따라가버린 나에게 화가 난 건지.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비에 화가 난 건지.

예쁘기만 하고 비 내리면 엉망이 되는 오솔길에 화가 난 건지.


결국 집착이 화를 부르는구나.. 생각하고

한 생각이 돌이키면... 을 되뇌어도 생각이 돌이켜지지 않고.

운동화를 벅벅 문지를 빨래 솔이 없어서

결국 칫솔을 새로 사기로 마음먹고 칫솔을 희생시켰더니

운동화를 그나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주 완벽한 제 모습은 아니지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운동화를 보며

그래. 남편이 잘못 없지... 비는 잘못 없지... 오솔길은 잘못 없지. 

이 마음은 다 집착이지. 운동화는 운동화일 뿐. 

친구의 마음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뭘. 




내 운동화에 얽힌 사연은 모르고 말짱하게 갠 오로빌 하늘.




매거진의 이전글 [오로빌+10] 자전거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