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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Jul 29. 2020

[오로빌+10] 자전거 예찬


우리는 오로빌에서 최소 2년은 지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아마존을 통해 미리 주문한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우리가 도착한 이후에 배송받을 수 있도록 날짜를 지정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 있었으니, 자전거였다.


덕분에 우리는 도착한 그 날부터 바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보기 드물게) 너무 반짝반짝 새 것이고, 또 내 것은 여성용으로 일반 자전거와 디자인이 살짝 달라서 (치마를 입고도 탈 수 있도록)

제법 눈에 띄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자전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가거나, 나이스 바이시클~이라고 외치고 가거나, 얼마냐? 어디서 샀냐? 등등 질문이 많다. 물론 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전거 네 대가 나란히 오로빌의 숲길을 달리고 있다.



구글에 나오는 오로빌의 도로는 대부분 큰 도로(?)이고, 자동차, 바이크, 자전거, 사람까지 함께 달린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물론, 중앙선이나 차선은 없다. 그냥 적당히 달린다. 속도가 높지 않으니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 도로를 달리기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 일단 너무 덥다. 뙤약볕에 그늘도 없는 길을 자전거로 가는 건 곤욕이다. 그리고 큰 도로라고 해도 흙이 잘 다져진 정도라서 바이크와 자동차가 날리는 흙먼지를 자전거 운전자들은 그대로 들이마시게 된다. 


오로빌의 큰 도로 옆에는 대부분 오솔길이 있다. 오솔길은 자전거와 사람만 다닐 수 있다. 대부분 자전거 2대가 교차로 지날 수 있는 너비이지만 어떤 곳은 마주오는 자전거가 있으면 멈춰서 비켜야 하는 곳도 있다. 

오래된 길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 수월하도록 잘 닦여(?) 있지만, 새로운 도로일수록 울퉁불퉁, 한복판에 큰 돌이 박힌 경우도 다반사이고 심지어 모래 구덩이도 있다. 어떤 날은 겨우 자전거 바퀴만 지나갈 수 있는 풀숲 길을 가다가 풀에 맨다리가 긁히는 경우도 있었다.




왼쪽 크라운 로드(구글 지도에 나오는 도로) 옆 오솔길
오솔길 입구. 사람과 자전거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겁도 없이 오솔길에 도전했다. 구글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 종이로 된 오로빌 지도에도 나왔다 안나왔다 하는 길로. 우리는 여러 차례 길을 잃었고 도저히 길이 아닌 것 같은 길로 가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바이크를 세워 길을 묻기도 하고 오로빌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인도인들이 사는 곳(여기서는 빌리지라고 부른다)을 뚫고 지나가기도 했다. 



우리 넷 중에 자전거를 제일 못 타는 사람은 당연히 나. 

넘어지고, 뒤꿈치 까이고, 엉덩이, 손목, 어깨 안 아픈 곳이 없다.

아...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전거 하나도 제대로 못 타고. 꼴이 말이 아니다. 


남편, 율군, 슈군, 나... 이렇게 순서대로 달리는데, 남편은 맨 앞에서 길 찾느라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다니고 율군은 속도를 못 내서 답답해 죽고 슈군은 몇 번씩 뒤돌아보고, 엄마 괜찮아? 묻고, 멈추고 나는 균형을 잡느라, 돌을 피하느라, 기어를 조정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다. 

나도 이제 제법 자전거를 타고, 우리는 제법 길을 익혔다. 


한낮에도 오솔길은 울창한 나무들 덕에 그늘이 지고 큰길로 빙~ 돌아갈 곳을 짧은 루트로 갈 수도 있다. 곳곳에 숨은 예쁜 곳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요즘 날씨에 오후 다섯 시쯤에 자전거를 타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 맨살에 닿는 바람의 촉감, 페달과 함께하는 숨소리. 적당한 맥박.

아... 정말 살아있다는 것을 기분 좋게 느끼는 순간이다. 



이렇게 나는 오로빌의 오솔길과 자전거를 사랑하게 될 줄만 알았는데.....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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