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6] 게스트하우스에서 산다는 것

게스트하우스 생활 6일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돼.

우리 게하의 공동부엌이 나로서는 정이 안가고 (조리도구도 다 맘에 안들어 ㅠㅠ)

빨래는 이미 색이 다 물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청소기도 청소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청소할 마음이 안나서 손놓고 있지.

참 신기한 것은, 발바닥에 뭔가 묻는 것이 싫어서 집에서도 슬리퍼 신고 다닌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야외 테라스를 왔다갔다 하고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머리카락이 보이지도 않는다는거야.

그 동안의 그 깔끔 떨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남편이 청소하며 쓸어 모은 먼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

내가 저 많은 먼지구덩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었다니...

그래도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들고 맨발로 테라스에 나가.

우리방 야외 테라스에서 핸드폰이 LTE까지 터진다는 걸 알아냈거든.

그동안 하루에 1.5기가를 쓸 수 있는 요금제에 가입하면 뭐하냐고.

핸드폰이 터지지를 않는데...하며 욕을 욕을 했었는데

이제는 테라스로 나가기만 하면 다음과 네이버를 모두 볼 수가 있어.

처음으로 다음 화면을 본 날은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그 LTE속도의 핸드폰으로 내가 젤 처음 검색한 것이

깍두기 담그기, 김치 담그기야.

아...그 동안 참 편안하게 살았지.

어머님이 보내주시는 김치와 밑반찬을 가지고도 밥해먹는게 힘들었었는데.

김치를 직접 담그려니 엄두가 안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검색은 해봤어. 언제쯤에나 담그게 되려는지....                                              

핸드폰 잘 터지는 야외테라스 전경. 핸드폰 들여다보기엔 아까울 것 같지만 그래도 핸드폰이 더 재미있다.

어제는 일년에 한 번 열린다는 크리스마스파티. 유스페어에 다녀왔어.

공동체의 축제라는 것이 그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재미있지만, 아직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저 돈 쓰러 가는 일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 알게 돼.

연극, 공연 등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친한 사람 하나 없는 나로서는

그저 먹거리를 사먹고, 판매하는 제품을 구경하고

어떤 행사들이 있는지 슬쩍 기웃거리는 정도인거지.

지난 무지개학교의 마무리잔치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어.

우리 학교의 마무리잔치를 보며

우리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알고, 그 아이의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고,

그 과정을 함께 한 교사에 대한 감사가 있으니

어설픈 공연이나마, 어설픈 율동이나마 예쁘고 의미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입학 전 혹은 1학년때 보았던 마무리잔치는 재미가 없었거나 실망스럽기도 했었구나.

이제 율군이 6학년이 되고, 슈군이 3학년이 되니

일년을 마무리하는 이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는구나.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지.

공동체는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이해가 쌓이면서 이루어져가는 것인 것 같아.

그러니 어제 유스페어에서의 그 어색함, 쭈뼛쭈뼛과 지루함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함께 한 시간의 부재로 인함이라는 것을 알고 여기 축제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해.

고운 소리를 내던 악기 연주와 어우러지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웠음을 기억하기로 해.

어제 나에게는 그만큼으로 충분했으므로                                              

 저 우주선같이 생긴 악기에서 어찌나 다양한 음역대의 아름다운 소리가 나던지 한참을 바라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