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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Jul 24. 2022

마음 정원 가꾸기

잡초뽑기_자기공감



마사토가 깔린 우리집 마당의 한 켠에는 겹물망초가 잔디처럼 자라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잡초밭이 되었다. 

마치 키우고 있는 것 처럼 잡초들은 고르고 평등하게 마당 구석구석까지 아주 잘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날이 선선하여 하루 종일 잡초제거반을 풀가동했다. 

늘 코딱지만한 마당이라고 생각하지만, 풀을 뽑아보면 감히 코딱지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게 된다. 


잡초만 있는 부분이야 무작위로 마구마구 호미질을 하며 마당을 정리했지만

겹물망초가 있는 곳은, 꽃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잡초를 하나하나 잡아서 뽑아야했다. 

텃밭과 정원에 있어서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나는, 

아직 어린 겹물망초와 잡초를 구분해내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여, 일단 뽑고 보자는 심정으로 조금만 미심쩍으면 손을 대었는데, 

잡초는 쏙~쏙~ 뽑히는 반면에 

겹물망초는 드드드득. 드드드득. 하고 뽑히는 것을 금세 알았다. 


겹물망초가 잔디처럼 자리잡은 마당에서 잡초를 쏙~쏙~ 뽑고 있자니.

문득, 어린시절 할머니의 흰머리를 뽑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초등 저학년 즈음에, 나는 하교 후 외갓집에 가서 엄마가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외할머니는 쪽진 머리를 하고 비녀를 꽂고 계셨는데

가끔 나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비녀를 풀고 할머니의 머리를 헤집으며, 흰머리를 잡아서 쪽집게로 뽑는데

가끔 쪽집게에 검은 머리가 같이 잡혀서 뽑힐 때도 있었다. 

흰머리는 쏙~하고 뽑히는 반면, 검은 머리는 탁!하고 걸리며 뽑힌다. 

내가 짐짓 검은머리를 뽑지 않은 척 하고 있어도 할머니는 금세 알아차리셨다. 

흰머리가 뽑히면 시원한데, 검은 머리는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할머니가 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밉기도 했다. 

꼭 TV에서 만화가 나올때쯤에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고

실수로 검은머리를 뽑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잔소리를 하셨고

사촌 오빠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 

꼭! 나에게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왠일인지 할머니를 무서워해서 싫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미워하며 흰머리를 뽑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은 나에게 '여자라서 차별 받았던 기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할머니는 대단한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분이셔서, 

나는 중고등학생때 할머니를 정말 미워했었다. 

네 살 아래인 내 남동생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고

상대적으로 나는 콩쥐처럼 구박을 받았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으며

동생이 해달라는 건 다 해줘야했고, 얄미워도 한 대 쥐어박을 수 없었다. 

동생은 할머니라는 절대강자를 등에 업고 개선장군처럼 굴었다. 

나는 크면서 외갓집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는 것도 싫어했다. 


내가 대학생일 때, 할머니가 잠시 우리집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저녁 7시에 들어온 나를 보고는 저녁 먹었냐고 묻지도 않으시더니. 

동생이 밤 11시쯤 들어오자, 나에게 동생 저녁을 차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진짜 화가 났다. 

밤 11시에 들어온 애가 저녁을 안먹었겠냐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다 늙어버린 할머니에게 그럴 수 없어서

동생에게 화를 퍼부어댔던 기억이 있다. 

동생은 그런 나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동생이 너무 얄미웠다. 



풀을 뽑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다가 

남녀차별에 대한 나의 이 불편한 마음에는 할머니가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다시 풀을 뽑는다. 

그 당시에 내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으니, 오빠들은 중학생이었겠구나. 

동생들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네. 

흰머리를 뽑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의 아이가 나였구나. 

아...나라도 흰머리는 나에게 뽑으라고 했겠구나. 

오빠들은 더 이상 할머니 말을 듣지 않았고, 동생들은 흰머리만큼 검은머리를 뽑았을 것 같다.

적어도 흰머리를 뽑았던 일만큼은 남녀차별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남녀차별쟁이' 라는 꼬리표를 할머니에게 붙여놓고 

그 프레임으로 할머니를 보고 있었구나.   

마음이 고요해진다. 

나에게만 흰머리를 뽑으라고 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풀을 뽑는다. 

내 마음의 잡초도 하나 뽑은 것 같다. 

할머니처럼 우리 마당도 잡초가 뽑힐 때 시원할까?

일단 정돈된 마당을 보는 내 마음과

할머니의 흰머리라는 잡초를 하나 뽑아낸 내 마음은 시원한 것 같다. 



겹물망초가 잔디처럼 깔린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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