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감사하기(2)
내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들어갔을 때, 엄마는 나를 흘깃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새로 한 머리가 매우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왜? 이상해?”하고 물었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아무 말 안 하지, 이상하면 내가 가만히 있었겠냐?”라고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의 방식이 이러하니 내가 엄마로부터 인정, 감사,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비폭력대화 수업에서 ‘인정하는 말’ 프로세스를 듣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은 말(나를 인정해주는 말)을 글로 써서 나의 파트너에게 건네면,
파트너는 그 '누군가'의 역할을 하면서, 종이에 적힌 글을 나에게 읽어주고
이후, 말하고 들은 후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를 피드백하며 나누는 프로세스였다.
나는 당시에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부터 많이 회복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고
엄마랑 같이 살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그 프로세스에서 ‘누구로부터 듣고 싶은 말인가?’라는 질문을 듣자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엄마한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듣고 싶은 말을 떠올려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엄마로부터 듣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가며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었다.
“너 자라면서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잘 커서 지금은 엄마까지 돌봐주어서 정말 고맙다. 엄마가 대학도 못 보내주고 네가 스스로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기뻐하거나 응원해 주지도 못했던 게 늘 미안했는데, 혼자서 대학 졸업하느라 힘들었지? 결혼도 혼자 힘으로 하고. 힘들었을 텐데 엄마한테 원망 한 번 없이 스스로 알아서 다 하는 게 늘 기특하고 고마웠다. 엄마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고, 그 누구보다도 상황을 알고 응원해왔을 엄마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것이 마치 지난한 시간에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은 내 삶에 대한 증언이 되는 것처럼.
나의 파트너가 이 글을 엄마를 대신하여 반복해서 읽어주는 동안 내 마음은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내려가는 것도 같았다. 굳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감사와 축하 같은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자, 문득 나 역시도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당신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있으며, 당신의 고통을 딛고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감사를 전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감사와 인정이 필요한 삶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이 감내해야 할 고통으로는 너무나도 가혹하지 않았나 싶은 그녀의 삶에 대해, 나는 어떠한 보상과 증언을 해 왔던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복받치는 감정으로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엄마는 놀라고 당황하시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오늘 공부하다가 알게 됐는데. 엄마 혼자서 우리 삼 남매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지? 엄마 진짜 힘들었겠어. 아빠가 남겨놓은 돈도 하나도 없었고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여자 혼자서 애 셋을 어떻게 키웠어? 엄마 진짜 애썼어. 너무 고마워. 엄마 덕분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너희들이 잘 커줘서 엄마도 살았지. 아무도 나쁜 길로도 안 빠지고 반항도 크게 안 하고 착실하게 잘 커줘서 엄마도 살았지. 너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집에 돈 벌어다주고 대학 갈 때도 엄마가 못 도와주고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아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한 후의 일들은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