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시간에 갑자기 비가 왔다. 나는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고, 나에겐 우산을 들고 날 데리러 올 사람도 없었다. 엄마는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소풍 때도, 체육대회 때도 늘 엄마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행사에 엄마들이 따라오곤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문에서 우산을 들고 온 엄마와 만나는 것 같았다. 우리집은 후문쪽이라서 나는 후문으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비를 맞으며.
후문 쪽은 하교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때 내 뒤에서 어떤 엄마와 아이가 사이좋게 나란히 우산을 한 개씩 쓰고 걸어와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뒤에서 걸어가면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마중 나올 엄마가 없는 내가 스스로 불쌍했다가, 엄마가 미웠다가, 이런 가정 형편이 싫었다가, 문득 앞에서 아이와 우산을 한 개씩 쓰고 걸어가는 그 아주머니가 미웠다.
'어른이잖아. 무슨 어른이 저래. 나라면 가는 길까지만이라도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빌려주거나 할 텐데.' 그 날은 그 아주머니가 왜 그리 원망스럽던지. 아마 그때, 난 누구라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삶에 감사하기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한 학교의 후문 길과 그 길 위의 나란히, 사이좋아 보이던 두 사람.
이제는 내 뒷모습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본다. 혹시라도 우산 없이 혼자서 걸어가는 아이가 있지는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