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는 Aug 08. 2020

하굣길, 우산

삶에 감사하기(1)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갔다. 낯선 학교, 낯선 동네, 낯선 길.

처음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학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하교 시간에 갑자기 비가 왔다. 나는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고, 나에겐 우산을 들고 날 데리러 올 사람도 없었다. 엄마는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소풍 때도, 체육대회 때도 늘 엄마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행사에 엄마들이 따라오곤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문에서 우산을 들고 온 엄마와 만나는 것 같았다. 우리집은 후문쪽이라서 나는 후문으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비를 맞으며.

후문 쪽은 하교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때 내 뒤에서 어떤 엄마와 아이가 사이좋게 나란히 우산을 한 개씩 쓰고 걸어와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뒤에서 걸어가면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마중 나올 엄마가 없는 내가 스스로 불쌍했다가, 엄마가 미웠다가, 이런 가정 형편이 싫었다가, 문득 앞에서 아이와 우산을 한 개씩 쓰고 걸어가는 그 아주머니가 미웠다.

'어른이잖아. 무슨 어른이 저래. 나라면 가는 길까지만이라도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빌려주거나 할 텐데.' 그 날은 그 아주머니가 왜 그리 원망스럽던지. 아마 그때, 난 누구라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삶에 감사하기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한 학교의 후문 길과 그 길 위의 나란히, 사이좋아 보이던 두 사람.


이제는 내 뒷모습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본다. 혹시라도 우산 없이 혼자서 걸어가는 아이가 있지는 않을는지...

가끔 그런 아이들이 보이면 기꺼이 내 우산을 내어주고.


'우산을 내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작게라도 기여할 수 있는 삶이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수 있는 내 삶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 따위 개나 줘버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