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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Aug 01. 2020

공감 따위 개나 줘버려

타인을 이해하기(4)



고백컨대, 나는 공감(마음 알아주기) 예찬론자이다.

공감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여기서 공감은, 비폭력대화에서 얘기하는 공감.이다. 언젠가 글로 쓸 날이 있기를.)

마음의 어려움들을 공감으로 해결해 왔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자기 공감'일 때도 좋고,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한다.

잊어버릴 때도 많지만, 대체로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을 때면

특히 누군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순간에는 공감으로 반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6시면 날이 깜깜 해지는 초겨울 즈음이었다.

우리 집 통금(?) 시간인 6시가 넘도록 둘째 아이 2호가 들어오질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20분쯤 되어 들어온 2호는

내가 뭐라고 잔소리를 할 틈도 없이 나에게 온갖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다고. 책가방, 야구 방망이, 야구 글러브, 자기 잠바,

그리고 친구가 놓고 간 친구 잠바까지 들고

우리 동네 맨 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오르막길을 걸어오느라 힘들어 죽겠다고.



나는, 맨날 다니던 길에 그것 조금 더 들고 온다고 얼마나 힘들었으랴 싶어서

영혼 없이 "많이 힘들었어?"라고 물었다.

나의 영혼 없는 대답은 2호에게 너무나도 쉽게 간파당해서

그 서운함에 2호는 눈물을 흘리다가 급기야는 드러누워서 진상(!)을 떨기 시작했다.



대책이 필요하다 싶었던 나는 진심을 다해. 많이 힘들었느냐 물었지만 2호의 짜증은 멈추질 않았다.

달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 짐을 다 들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던 것이었다!!

그제야, 아... 진짜 힘들었겠다 싶어서.... 이른바 공감(마음 알아주기)을 하기 시작했다.



_진짜 힘들었겠다~

_친구 잠바가 두껍기도 하고, 자전거 잡으니까 손도 없고... 그랬어?

_글로브에, 방망이에, 잠바 2개랑, 자전거까지.... 너무 무겁고 힘들었지?

_힘들게 왔는데 엄마가 그것도 몰라줘서 서운했어?




꽤 시간과 공을 들여 공감을 했음에도 2호의 짜증이 멈추질 않아서 내가 포기하기 직전이었는데

1호가 오더니 2호 입에 무언가를 밀어 넣으며

_힘들 땐 누룽지를 먹어.



헐, 이게 또 뭔 일인가 싶어서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2호가 배시시 웃으며

_ 또 줘~



아.... 이 당황스러움이란,

엄마가 눈치 없이 공감이랍시고 말만 했으니 배고픈 아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꼬...

에잇, 공감 따윈 개나 줘버리고 우리는 힘들 땐 먹고 웃자~!!

(개야, 미안~)










7살 아들을 둔 후배가 말했다

"언니, 애가 어린이집 끝나서 데리러 가면 맨날 배가 고프다고 해요.

 점심 먹은 지 2시간밖에 안됐는데,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게

 아무래도 애가 혼자라서 외로워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외롭냐고 물어보면 아니래요."


"후배야, 그건 진짜 배가 고픈 거란다.

 종일 반 다니는 우리 애는 4시에 꼭 간식 먹거든.

 애들은 어른들이랑 달라, 그거 진짜 배고픈 거야."


얼마 후

"언니, 진짜 배고픈 거 맞았나 봐. ㅎㅎㅎ"









또 이런 적도 있었다.

나는 어느 날 A가 나에게 한 말에 몹시 상처를 받고 힘들었었는데

B에게 전화를 하면 나를 공감해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B는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슬픈지.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C에게 전화했다.

왜냐하면 C는 공감 대신 'A가 잘못했네'라고 말해줄 사람이었고.

그 순간 나에게는 그 말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공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 공감보다는 무조건 편들기, 위로, 같이 화내주기 등이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억하자.

'공감'이 만병통치약은 니라는 것을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편안해졌고, 행복해졌습니다.

제 자신을 수용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에 감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저는 지금도 이 과정 중에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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