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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Dec 28. 2023

나와 가까워지는 일


 사흘이 지나면 1월이 된다. 지금의 나는 조금 높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앉아있다. 불그스름한 지붕 위엔 환풍기가 버섯처럼 돋았고, 초록색 바닥이 도드라지는 옥상이 보인다.


 작년 이맘때보단 다소 따뜻한 날씨라고 생각하며 나는 ‘지금’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이맘때쯤 작년보다 나는 훨씬 여유롭다. 그땐 처음으로 책임 편집을 맡은 원고를 붙잡고 있느라 크리스마스와 새해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해돋이를 보러 간 사람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정신없이 원고를 편집하던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새해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1월 1일 오전 3시 27분이었다.


 나와 가까워지는 일은 생각보다 세상과 멀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붙어있기 위해 애쓰는 일이 더 익숙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집에서,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세상에 붙어있기 위해선 나와 먼저 가까워져야 한다는 걸 몰랐다. 이건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것을 더 일찍 깨닫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인의 말과 행동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세상. 희한하게도 나는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내 마음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휘두를 수 없었다. 어렸을 때보다 더, 나를 모르겠는 일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마치 이중인격자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인 줄로 알았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인격체는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고 그 인격체를 내가 알아가야 하는 식이었다. 내가 나를 찾아가야만 하는 과정.


 눈 앞을 가린 채 남들이 가는 길로 나도 열심히 뛰어가면 다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일부러라도 나를 떼어내려 했다. 그렇다고 저 멀리 나동그라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보처럼 나동그라진 채로 있다가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피다가 서서히 움직이는 일을 반복했다. 나 자신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걸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더딘 사람도 어쨌든 걸어 나오는 게 맞다고 했다.


 작년보다 지금이, 저번보다 오늘 여유로운 이유는 내가 드디어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은 이미 저만치 흘러버렸고 그 시간 동안 성장은 못 했으며 대신, 나는 나를 좀 더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아주 유쾌하진 않았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매서웠다. 밤이 되면 불빛만 도드라질 뿐 어디가 지붕이고 어디가 벽인지 잘 분간되지 않았다. 빛이 흘러나오는 창문만 뿌옇게 보일 뿐. 온전한 형태 없이 일그러진 창문 속에서 가끔은 누군가 움직이는 모양이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안의 불도 꺼지고 잠잠해졌다.


 적어도 지금은 전보다 애를 태우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은 다 달라도 기다리고 맞춰나가는 법을 안다. 여전히 남부러운 것들은 동경하고 간혹 훔쳐보며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어두운 곳곳 창문 그 안마다 다들 저마다의 싸움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릴 적 한밤중에 골목을 거니는 차 소리가 그렇게도 스산하고도 외로워 보였는데, 이젠 그러거나 말거나 스르륵 잠이 든다. 어둠에 치우칠지언정 물들지는 말아야겠다. 매섭게 흐르는 시간에 다시 적응하다 보면 곧 ‘지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때도 올 것이다.



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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