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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Mar 21. 2024

엄마는 내 안에 있어

애착

내게는 꿈이 있었다. 결혼을 혹시 못하더라도 아이는 꼭 낳아보고 싶다는.

후에 세상에 존재할 사람이 내 뱃속에서 자라서 탯줄을 끊고 세상과 만나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결혼을 하고 꿈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아이가 얼마나 귀했을까. 내게 내린 하늘의 축복 같았다. 아이는 내 몸을 잠시 빌려 세상에 온 덕분에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나기까지 나와 남편의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만 2년 정도는 24시간 아이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친정이나 시댁과 한참 떨어진 타지가 새로운 생활지이기도 하고 아이가 오로지 모유만 먹고 자랐기 때문에 더욱 둘이 밀착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첫 아이는 유니다.


유니가 3살쯤 되었을 때, 나로서는 첫 모험을 했다. 자는 틈을 이용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와야겠다는. 여름이라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만 모여도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12층이니까 분리수거 장소까지 다녀오는데 대충 5분, 많이 잡아도 10분 이내에 가능할 것 같았다. 설마 그 사이에 깨지는 않겠지 하면서도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1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유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럴 수가!


현관을 열었는데 자고 있던 자리에 유니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미쳤지. 유니를 혼자 두고 나가다니, 간이 부었다. 유니는 어디로 간 거지? 유니는 식탁밑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내가 나가자마자 깨었는지 많이도 울어서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있었다. 5분 정도의 시간만에 아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세상에 가장 불쌍한 아이처럼 되어 있었다. 느낌이겠지만 수척하고 꼬질꼬질했다. 유니는 엄마를 발견하자 더 서럽게 울었고 나도 죄책감과 걱정에 같이 울었다. 만의 하나라도 이 일로 분리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생기게 되면 어쩌나 미안했다.


시간이 흘러 유니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퇴근 후 어린이집으로 유니를 데리러 갔으나 차츰 어린이집 차량으로 우리 아파트 앞에서 유니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못한 일을 마저 하다가 시간을 보니 하원 시간이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게 식탁 다리를 부여잡고 울던 유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큰일 났다. 유니가 또 얼마나 울고 있을까? 그것도 집도 아닌 거리에서  말이다.


오늘 하원 담당 선생님이 누구지? 생각이 안 난다. 아니야, 엄마가 없는 걸 보고 유니를 어린이집으로 다시 데리고 갔을지도 몰라. 집보다 어린이집이 빠르니 들려보자.

"어머니,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원장 선생님, 우리 유니 여기 없어요?"

대충 사정을 들은 원장선생님이 전화를 걸어 유니를 내려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난 미칠 지경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했는데... 흐르는 눈물에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차 유리로 나의 유니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유니를 불렀다. 유니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 일단 무사한 것 같다.


드디어 상봉한 모녀는 둘 다 놀랐다. 유니는 눈물범벅이 된 엄마를 보고, 나는 멀쩡한 유니를 보고.

"엄, 왜 울어?"

"미안해서 그렇지... 유니야, 많이 놀랐지? 엄마가 안 나와 있어서. 무섭진 않았어? 걱정돼 죽는지 알았어. 정말 괜찮은 거지?"

"응,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엄마가 내 마음에 있는데 왜 무서워?"

난 그날 행복해서 또다시 죽을 것만 같았다. 분리불안 트라우마는 유니에게 붙은 게 아니라 내게 붙어있었다. 비로소 이놈의 트라우마를 떼어내고! 아이를 그렇게 나아 기르고 싶던 꿈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할 기쁨, 완전한 신뢰.

따스하고 멋진 유니는 동생 으니에게도 내가 경험한 애착과 신뢰를 선물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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