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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Aug 25. 2022

나는 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

인간관계(7)


아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A와 B를 겪고나서부터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경은 A의 남자 친구에 대한 불평불만을 오랜 세월 들어줬다.


성심성의껏 위로해주고 다독여줬다.


그 덕분인지 A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출산도 했다.


그 이후에 아경은 A의 시부모에 대한 불만까지 들어 주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아경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A가 말했다.


“나는 내 이야기만 하고 싶어. 네 이야기는 듣기 싫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경은 속된 말로 자신이 A의 일방적인 부정적 감정의 배설구였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후 A는 아경에게 사과를 했고, 아경도 사과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아경은 더 이상 A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수년 동안 지속된 관계는 끝을 맺었다.


솔직히 아경은 아주 홀가분하고 좋았다.


B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아경이 만난 그 누구보다 불평불만이 많았다.


‘회사일이 힘들다’, ‘상사가 나만 미워한다’, ‘만나는 남자마다 마음에 안 든다’, ‘피부가 안 좋아진다’, ‘살이 찐다’, ‘돈이 없다’ 등등 끝이 없었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B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B를 <징징이>라고 불렀다.


쉴 새 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니 아경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B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렇게 내가 힘든데 나한테 네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니>라는 투였다.


아경은 미련하게도 2년을 참았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혔고, 더 이상은 B의 불평불만을 듣고 싶지 않았다.


늘 우중충한, 찡그린 B의 얼굴만 봐도 울화가 치밀었다.


아경은 B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


출근해서 사내 메신저에 접속하자마자 팀장 욕을 시작하려고 슬슬 발동을 거는 B에게 아침부터 그러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을 B의 불평불만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B가 업무 이외의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피했다.


그럼에도 끈덕지게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며 불평불만과 짜증을 아경에게 쏟아내려는 B에게 "남의 중병도 고뿔만 못하다"라고 차갑게 말하기도 했다.


B는 어떻게 그런 모진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아경을 흘겨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B도 더 이상 아경을 괴롭히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아경도 힘든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경이 생각하기에 그것에도 원칙이 있었다.


일방적인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한 번 말하면 한 번은 상대방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좋은 노래도 삼세번이면 지겨운 법인데 그런 부정적인 말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아경은 A와 B를 통해 친구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는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친구란 나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자’라는 말도 있다.


그건 자신도 그 친구의 슬픔을 같이 져야 한다는 말이다.


A와 B는 자신의 슬픔만 친구의 등에 지우려고 했다.


자신들은 친구의 슬픔 존재 자체를 거부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데, 어디 감히 네 이야기를 내게 하려고 하냐>고 말이다.


아경도 부족한 사람인지라 친구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퇴사를 고민하던 5년 동안 아경은 진상이었다.


하지만 A와 B덕분에 친구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경은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 친구에게도 <나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무리 과묵한 친구일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고, 아경은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좋은 친구는 귀한 존재이다.


아경에게도 그렇다.


아경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그중에서 신중하게 친구를 선택했다.


그 결과, 아경의 친구들은

예민한 아경에 비해 조금은 둔감하고

걱정이 많은 아경에 비해 낙천적이며

까칠한 아경에 비해 관대하며

저질체력의 아경에 비해 체력이 좋고

우울한 아경에 비해 밝고 유쾌하며

소극적인 아경에 비해 적극적이었다.


그러니 어찌 아경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경은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주로 불평불만과 짜증같은 부정적인 에너지(감정의 똥덩어리)를 주고 있는가 아니면 위로와 평안, 즐거움을 주는가?>


유쾌하고 즐거운 벗은 늘 가까이하고 싶은 법이다.


친구들과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고 싶은 아경은 이것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경은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전문 심리상담가를 만나보라고 권유하며 적극적으로 피하는 전술을 펴기 시작했다.


아경은 그런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데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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