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오셨나봐요~"하고 인사를 드렸는데 계속 계셨던 분이라고 한다. 처음보는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저쪽 침대에 계시던 분이라고 하셨다.
내가 생활실에 갈 때는 침대에 누워계실 때가 많아 앉아있던 모습이 낯설었던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색다른 컬러의 옷을 입고 있어 낯설어하기도 했다. 내가 눈에 익숙해지는 동안 입고 계셨던 옷이 아니면 또 새로운 사람 같았다.
치료실에 내려오시지 않는 어르신들은 만나는 횟수가 적다보니 빨간 바지, 꽃무늬 조끼처럼 특징으로 익히려고 했던 나의 실수였다.
병원에서도 그렇지만 요양원은 더더욱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기 어려운 곳이다.
사회에서 시선을 한 눈에 끌던 멋쟁이도 입고 벗기 편한 옷을 선택하게 된다. 장식이 많이 달린 옷은 당연히 입기 힘들다. 물세탁이 가능한 옷이어야 하니 값 비싼 캐시미어나 울니트는 꿈도 못꾼다.
헤어스타일도 미용 봉사 와주시는 분들의 손에 맡겨야하니 긴머리나 웨이브는 불가능하다.
거동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아 가족들이 때마다 모시고 나가 미용을 하기 힘드니 여기서 가능하다.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사치다. 비슷한 스타일의 머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시절 인기있었던 이름도 한몫 거든다.
지금은 백발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당신들이 태어났을 그 시절에는 옥처럼 귀한 자식이었음이 틀림없는 이름들이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이름과 비슷한 스타일은 한 사람의 고유함을 흐리게 만드는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옷을 입고 짧게 자른 머리로 같은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진 요즈음은 어르신들의 고유함이 조금씩 보인다. 살아온 배경과 삶의 굴곡이 조금씩 느껴진다.
가까이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 관심갖지 않으면 그저 안타깝다로 끝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시대를 주름잡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하루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의 주름으로 지금 누군가는 허리 펴고 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어르신들의 이름과 고유함을 배워가면서 계획없던 나의 워킹맘 생활도 익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