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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시아 Nov 03. 2024

#2 연기(acting)

나의 언어, 나의 세계, 나의 사전



오늘은 '연기 (acting)'라는 단어를 정의 내려보려고 한다.


어제 소셜링 어플 '문토'를 통해서 백리향 님의 '죽음에 대하여_슬픔 특집' 연기 모임에 참여하였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관련된 작품의 인물이 되어 연기해 보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오늘 [자기 결정]이란 책을 읽었는데, 어제의 연기 경험과 연결되면서 '연기를 하면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리기 전에 사전적인 정의부터 알아보았다. 연기의 사전적 정의는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이다. 

한자는 '펼 연'(演) 자에 '재주 기'(技) 자를 쓴다. '펼 연'은  물이 멀리 흐르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며, 미치다, 스며들다, 연기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재주 기'는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뜻하며, 재주, 능력, 장인 등의 의미가 있다.  즉, 물이 스며들어 옷을 적시듯 연기하는 사람의 영향력이 관객에게 스미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연기를 배우고자 했던 것은 사람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다른 인물이 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까지 3-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백리향님의 모임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나의 진입장벽을 낮춰 준 이유는 '감정사용설명서'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연기를 잘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연기를 통해 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목표였다. 첫 모임에 참석했을  땐 독백 연기라 혼자 무대에 서야 해서 매우 긴장했다. 참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엄청 긴장되었고, 내가 연기를 못할까 봐 대사를 읽는 목소리나 표정, 행동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곧 대사를 읽으며 감정이 몰입 돼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제는 세 번째로 서는 무대였다. 넷플릭스 ‘페르소나’ 중, 아이유의 남자친구 역인 K 역을 맡았다. 내용은 여자친구가 투신자살을 했는데, 꿈에서 재회해서 여자친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무대에서 나와 상대역을 맡은 사람, 아니, 상대 역을 맡은 아이유와 내가 연기하는 K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K군의 상황에 몰입했다. 

외로움을 못 이겨서 죽어버린 남자친구(원래는 여자친구였지만), 꿈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내가 남자친구를 외롭게 한 건가? 결국 나는 남은 생 동안 남자친구의 죽음을 나에게서 찾겠지. 평생 나를 탓하며 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기했더니 울음이 터져버렸다. 슬픔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완전히 극 중 인물에 흠뻑 빠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였다. 


내가 연기한 K의 대사 -네플릭스 페르소나 4편 밤을 걷다-


그리고 오늘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라는 책을 읽다가 어제의 연극과 커넥 되는 지점을 발견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팩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중략)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합니다. 우리는 정신적 정체성의 성공과 실패, 발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결정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패하면 어떻게 해서 실패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지요.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오직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 안에서 여러 가지로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P28


자기 결정은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며,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경험하여 스팩트럼을 넓히고, 이를 토대로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단순히 읽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로 오감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 경험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깊고, 넓게 나의 영혼에 새겨져서 내 스팩트럼을 더욱 확장시켜 줄 것이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정의한 '연기(acting)'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연기는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지름길이다 _24.11.03



연기를 좀 더 딥하게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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