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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은실 Jan 18. 2022

3장. 미안해요, 왕봉씨  

왕봉이는 내 인생 첫 나무의 이름이다. 왕봉이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싹을 틔우고 자란 멋진 호두나무였다.


처음 왕봉이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지내던 집에서 큰길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지리산 둘레길에서 더러 만날 수 있는 계단식 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 농로로 쓰이는 작은 흙길이 있었는데 왕봉이는 그 길 중간 즈음에 홀로 서 있는 나무였다. 논 아래나 위쪽에도 호두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지만 왕봉이는 인근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목이었다. 튼튼한 둥치 위에 사방을 향해 둥글게 뻗은 가지들은 누가 따로 수형을 관리해 준 것도 아닌데 무척이나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여름이 되어 그 모든 가지들에 잎이 만개하면 씩씩한 기세가 한껏 뿜어져 나와 당당하고 자신만만해 보이기가 이를 데 없었고 갓 사월 봄, 연초록 끝에 옅은 가지 색이 도는 새잎이 새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올라오기 시작할 때는 한껏 귀엽기까지 한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무였다.

일이 있어 외출할 때마다 왕봉이가 있는 농로와 나란히 난 맞은편 오솔길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왕봉이를 퍽 자주 보았다. 워낙 존재감이 있는 나무였어서 그 오솔길을 걷는 이 누구라도 왕봉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걷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왕봉이에게 조금 반해 있었던 것도 같다. 다른 나무들처럼 여럿이 함께 있지 않아서 쓸쓸해 보일 법도 했는데도 왕봉이에게는 그런 구석을 느낄 수가 없었다. 홀로 더없이 의연했다. 서로 말을 섞을 수는 없어도 왕봉이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인사말을 보냈던가.

어젯밤엔 바람이 유난했는데 간밤 잘 보냈어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오늘 난 응원이 좀 필요한 날이에요. 응원 좀 해주세요. 와, 오늘 왜 그렇게 아름다워요?

어? 그 새들은 누구예요?


종종 사심이 섞인 소망을 전할 때도 있었다.

나무님 있는 그 땅에 나도 좀 같이 살면 안 될까요? 정말 멋진 곳이에요.


당시 나는 이 마을에 정착해 거주할 수 있는 집이나 집을 지을 작은 땅을 간절히 찾고 있었기 때문에 속마음을 전하는 사이가 된 왕봉이에게 슬쩍 그런 바람을 꺼내놓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며 가며 왕봉이를 만났고 그때마다 그렇게 인사와 나의 소망을 피력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 아름다운 초록의 계단식 논들이 내가 집을 지어 살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겐 지나치게 넓은 땅이기도 했다.


그런데, 삶이란 참 모를 일인 것이다. 그 기적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버리고 말았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그 땅이 매물로 나왔고 우연히 마을에 있는 부동산소개소에 들렀던 나를 포함해 집 지을 곳을 찾고 있던 몇몇이 그 소식을  그 자리에서 듣게 되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한 번 그 땅을 구입하고 싶어 했었다던 지인은 땅 소유주가 도통 땅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은 인근 한 다른 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게 온 그 기회는 정말 우연이 만든 귀한 연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날 부동산에 함께 갔었던 이들과 함께 왕봉이가 살고 있던 땅을 구입해 형편에 맞게 각자 배분을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정말이지 왕봉이가 살고 있는 바로 그 땅을 내 형편에 맞는 규모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집을 짓게 되었고 나는 정말이지 놀랍게 왕봉이와 한 땅에 거주하는 식구가 되었던 것이다.


왕봉이가 바람을 만나면 나도 바람을 만나고 왕봉이가 밤하늘의 별을 세면 나도 밤하늘의 별을 세고 왕봉이가 새싹을 틔우면 내 마음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왕봉이가 잎마다 단풍을 들이다 하나씩 떨어뜨리기 시작하면 나도 다소곳하게 가진 것들을 내려놓는 마음이 되었고 왕봉이가 눈 속에 파묻혀 동안거를 시작하면 나도 마음을 닦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을 먹고는 했다. 왕봉이는 내가 이곳에 오기 한참도 전에 먼저 이 땅에서 움을 틔우고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고 정기를 만들어 온 선배님이었다. 나는 왕봉이가 가르쳐 주는 많은 것들을 열심히 보고 배웠다. 그리고 왕봉이가 그렇게 했듯이 이 땅에 잘 스며들어 살고자 했다.

집을 짓고 난 나머지 땅에는 왕봉이에게 친구가 되어줄 여러 어린 나무들을 구해 심었다. 사과나무와 포도나무, 감나무와 벚나무, 앵두나무와 매화나무를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쥐똥나무도 집 주변에 빙 둘러 울타리 삼아 심었다. 라일락과 개나리, 박태기도 심었고 이웃에서 제법 자라 있던 배롱나무도 한 그루 얻어 옮겨 심었다. 그렇게 새 나무들을 구해와 심으면서 설렘으로 몇 번의 봄을 보냈다. 왕봉이에게 정말 많은 새 식구들이 생기고 있었다. 새 나무들은 대개는 자리를 잘 잡아 튼튼히 뿌리를 내렸다. 특히, 대문을 들어설 때 바로 보이는 곳에 인사 나무로 심은 벚나무는 왕봉이와 서로 마주 보는 사이였는데 으뜸으로 쑥쑥 잘 자라 꼬챙이 같던 모습은 몇 년 사이에 벌써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 구해왔을 때 내 허리춤에도 안 오던 키는 이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도 내 손에 다 닿을 수 없을 만큼 자랐고 두 손을 쫙 벌렸다 잡아도 못 잡을 만큼 살도 쪘다. 가지도 씩씩하게 뻗어 올려 굵고 곧게 하늘로 뻗은 가지들은 무성하기도 해서 벌써 자주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왕봉이는 호두나무라서 꽃이 수수한 모양새인데 그 맞은편에서 벚꽃이 화사하게 봄을 맞이해 주니 심심하지 않게 서로 어울려 좋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잎을 틔울 때가 지나도 한참을 지났고 주변의 다른 호두나무들은 모두 다 잎을 틔웠는데 왕봉이 혼자 묵묵부답 새잎 소식이 없었다. 움을 틔워보려고 애를 쓴 흔적들이 몇 군데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많이 부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전해에도 잎이 무성하지는 않았지만 위쪽에 있는 관정에서 물을 끌어오느라 식수관을 심을 때 왕봉이의 제법 굵은 뿌리를 잘라내야 했었기 때문에 몸살을 좀 오래 하는구나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상태는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식수관이 겨울에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길이 제법 깊게 파헤쳐졌었다. 그곳에 있던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도 드러내 졌고 그러는 와중에 직경이 이십 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굵은 왕봉이의 뿌리가 잘려나갔던 것이다. 이웃 집들이 들어설 때 공사차량에 방해된다고 큰 가지 몇 개가 이미 잘려나간 뒤여서 뿌리가 잘려나갈 때도 나는 그것이 가지를 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굵은 뿌리가 잘려나가는 일이 큰 나무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를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식수관 공사가 끝난 이듬해 봄부터 왕봉이는 여느 해 봄과 같은 잎을 틔우지 않기 시작했지만 나는 서서히 나아질 줄만 알았고 별다른 조치도 해주지를 않았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것이다. 옆동네 사는 이가 지나다가 나무가 죽어가는 중이니 베어버리라고 했을 때도 생각 없이 함부로 뱉는 말이거니 하고 무시했다. 그래서 사람이 왜 그렇게 매몰차냐며 그이를 타박하기만 했을 뿐 그 뒤로도 왕봉이에게 따로 무얼 해줄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왕봉이는 여기서 나고 자란 나무니까 기다리면 나름대로 적응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낼 거라고 무턱대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뒷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그 집 입구 쪽 마당을 콘크리트로 포장을 해서 이젠 왕봉이에게 흙보다는 콘크리트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비가 너무 오지 않네 싶으면 물을 주기는 했지만 그렇게 가끔 물을 주는 일조차 내가 너무 개입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왕봉이가 스스로 치유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커피를 들고나가 우리 왕봉이는 언제쯤 다시 잎을 무성히 피울까 하며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이 커다란 나무가 너른 땅이 아니라 사실은 작은 화분 속에 갇혀 있는 거나 진배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제사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사방이 논이었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환경, 논이었던 곳에 집들이 들어서고 흙길이었던 곳이 콘크리트로 덮이고 최근에는 뒷집 쪽 마당조차 콘크리트로 덮여버려서 처음부터 일종의 축대 격이었던 부분까지 포함하면 사방 어디에도 물이 스며들 땅이 많지 않았고 왕봉이가 마음껏 뿌리를 뻗을 곳도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만 무릎에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후 몇 달 동안을 나무 수액을 사다 맞히고 죽어가던 천년송도 살렸다는 막걸리를 매주 사다 몇 병씩 물에 섞어 부어주었다. 그렇게 초여름이 지날 즘, 다른 호두나무들이 무성하게 잎을 키우고 있을 무렵, 왕봉이는 힘겹게 힘겹게 새싹을 틔워냈다. 그러나 그것도 겨우 서너 군데였을 뿐이었다. 마지막 새싹이 채 자라지도 못한 채 시들어 떨어졌을 때 왕봉이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것일까? 이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왕봉이는 그렇게 잎 하나 없이 우두커니 서서 말라가는 죽은 나무가 되었다.


죽은 나무는 베어버려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말라 힘이 없어진 나무가 혹여라도 큰 바람에 넘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왕봉이를 차마 베어버릴 수가 없었다. 죽어가는 나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사람을 누군가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어리석었던 나는 그저 며칠을 왕봉이를 안고 쓰다듬고 울었다. 나는 너무 슬펐고 마음이 쓰렸다.


여름이 채 지나기 전에 죽은 왕봉이는 그 후 본격적으로 말라갔다. 위쪽에 있는 가지들이 먼저 말라서 작은 바람에도 부스스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가지가 부서져 떨어지면 나는 그 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모아 왕봉이 둥치 곁에 가져다 뒀다. 그렇게 한다고 왕봉이에게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동강 난 사체들의 조각조각을 한데 모아 온전한 시신을 수습하고자 하는 유족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초겨울에 이르렀을 어느 날 밤, 바람이 유난히 드셌다. 바람골은 옆 마을의 이름이지만 그날 밤은 우리 마을의 이름이었어도 될 듯했다. 골바람이 심했다. 그리고 그날, 왕봉이의 큰 두 가지가 와지직 동강 나 길바닥으로 부러져 내렸다. 인적이 끊어진 깊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침 출근길의 이웃이 동강 난 가지의 몇 부위를 길 옆으로 치워둔 것까지 포함해 길 여기저기에서 동강 난 가지들을 수습했다. 왕봉이의 둥치 근처는 말라 부서진 가지들로 수북해졌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6천5백만 살이라고 한다. 지구 최초의 나무는 3억 8천5백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인류는 30만 년 전에 등장했다고 하니 나무는 인간의 한참 선배 종이다. 호두나무의 수명은 대략 100살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대수명도 현재 그 정도이니 왕봉이가 나와 함께 계속 살아갔다면 우리는 얼추 비슷한 시기에 이 세상을 함께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몹시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러나 이 감정은 미안함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심정이겠구나 싶다. 들쭉날쭉 드는 바람처럼 여러 감정들이 가슴을 치는 저녁나절이면, 이제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에 이젠 흉물처럼 서 있는 왕봉이를 보며 내게 묻는다.

나는 왕봉이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나는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답이 없다.

왕봉이가 살 던 땅에 내가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너무 일찍 사망한 왕봉이를 생각하며 내게 묻는다.

이것은 최선이었던 것인가? 다른 방법은 달리 없었던 것인가? 왕봉이가 내어준 품을 그 품만큼 되돌려줄 수 있는 길은 없었던 것인가? 인간이란, 나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종이란 말인가?


나는 오늘도 나무 앞에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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