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2년 5월 7일 발송된 뉴스레터 '방구석 문화생활'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힙합. 힙합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낯설고 생소하시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바로 뮤지컬 <해밀턴>입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카리브 해의 외딴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능력과 남다른 노력으로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까지 역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입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미국 10달러 지폐에도 얼굴이 올라 있죠. 그렇지만 다혈질에 고집 센 성격이라 적이 많았다고 해요.
2009년, 한 남자가 공항에서 우연히 해밀턴의 평전을 집어들어 읽게 됩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린 마누엘 미란다로 한국에서도 공연했던 뮤지컬 <인 더 하이츠>, 영화 <모아나>, <엔칸토>, <틱틱붐> 등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죠. 미란다는 해밀턴의 삶에서 힙합 정신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렇게 미란다는 해밀턴의 삶을 힙합 음악으로 만드는 ‘해밀턴 믹스테이프’ 컨셉 앨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악관의 연례 행사 ‘시, 음악과 말의 밤’에 초청받아 선보인 무대에서 기립 박수를 이끌어냅니다.
그 뒤 더욱 박차를 가한 프로젝트는 <해밀턴>이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2015년 2월 첫 선을 보였고,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결국 같은 해 8월,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오른 <해밀턴>은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2015년 토니 어워즈는 <해밀턴>이 휩쓸다 못해 ‘해밀토니스(Hamiltonys)’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죠.
그렇다면 <해밀턴>이 이렇게까지 성공한 이유는 뭘까요? 첫째, 남다른 음악적 완성도입니다. 우선 대표 넘버인 ‘My Shot’의 작사에 1년이 걸렸을 정도로, 가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과 더불어 캐릭터의 성격과 설정까지 충실히 담아내면서, 랩의 라임을 찰떡같이 살렸습니다. 또한, 주된 장르는 힙합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이트모티프의 사용이 정말 탁월한데요, 이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을 드러내는 데 아주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활용됩니다. <해밀턴>을 보는 또다른 묘미죠.
(*라이트모티프: 뮤지컬 등 스토리 전개에 음악을 활용하는 공연에서 특정 인물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선율)
두번째 매력은 입체적이고 상세한 캐릭터들입니다. 주인공 해밀턴은 마냥 영웅처럼 표현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치명적인 약점을 통해 그도 결국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애런 버’ 역은 주인공이 아님에도 토니어워즈 남우주연상을 따낸 역인데요, 그만큼 극 내내 감정선이 세밀하게 그려지는 인물입니다. 안젤리카, 일라이자 같은 여성 캐릭터들도 각자의 뚜렷한 서사를 가지고 본인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존재를 크게 각인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뛰어난 무대 연출이 있습니다. 해밀턴의 무대 세트는 디테일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연출만으로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을 줍니다. 몸짓만으로 전쟁을 표현하는 ‘Yorktown’, ‘뒤로 돌려(Rewind)’라는 가사에 맞게 상황을 뒤로 돌리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는 ‘Satisfied’ 등의 넘버 연출은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해밀턴이 무반주로 노래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장면이 압권이에요.
<해밀턴>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완벽한 뮤지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작품이에요. 훌륭한 서사와 훌륭한 음악, 훌륭한 캐릭터와 연출이 만나 뮤지컬이라는 예술이 어떤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해밀턴>은 지금 바로 디즈니플러스에서 한국어 자막과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해밀턴>을 보며 1700년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