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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Feb 28. 2022

아침밥, 그 가볍고도 따뜻한



매일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면 늘 하는 루틴이 있다. 먼저 손소독제로 손을 닦은 후 코트를 걸어두고 노트북을 세팅한다. 그리곤 다시 화장실에서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는다. 가방에 들어있는 지퍼백을 꺼내 사과즙은 책상 위에 두고, 삶은 달걀은 그대로 지퍼백 안에 넣어둔 채 책상 위에서 도로록 그것을 굴린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공간에 와자작- 달걀 껍데기가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사부작사부작 작은 움직임으로 껍질을 까고 나면 뽀얗게 드러난 달걀의 반쪽을 한입 베어 문다. 우물우물할 때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오늘은 껍질이 깔끔하게 까졌네-라고 생각하며 책상 서랍의 가위를 꺼내 사과즙 포장의 귀퉁이를 잘라내고 달콤한 사과즙을 한 모금 들이킨다. 그렇게 몇 입, 몇 모금만에 사무실에서의 내 짧은 아침 식사는 끝이 난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메뉴는 매일 아침 엄마가 나를 위해 직접 챙겨주는 것이다. 이제는 알아서 챙겨 먹을 때도 됐는데 서른 줄이 되어도 아침에 부지런하기란 늘 힘이 든다. 엄마는 나를 대신해 눈을 뜨자마자 물을 올려 달걀을 삶고 곁들일 만한 과채즙을 살뜰히 챙겨준다. 사과즙, 양배추즙, 석류즙, 도라지즙을 지나 이제는 사과즙의 차례가 다시 돌아왔다.


삭막한 사무실,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잠시 외면한 채 나는 아침 5분은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만끽한다. 그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따뜻한 사랑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p.s.

오늘은 재택 근무일이라 미리 사둔 훈제란으로 그 사랑을 대신한 날.




(+) 2주간 배달의민족에서 출간한 <요즘 사는 맛>을 읽으며 짧은 한 끼 단상을 적는 밑미 리추얼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오늘 읽은 #요즘사는맛 한 챕터는 박정민 배우님의 <아침밥>. 저와는 극과 극인 탄수화물러스한 아침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재미있었네요. 그리고 ‘자식의 아침밥’에 대한 엄마들의 걱정은 역시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잘 챙겨 먹는 걸로라도 효도해야지! (이미 불효녀)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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