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알고 계세요?
조세피난처 (시가 사쿠라, AK)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조세피난처"라는 단어가 낯설다. 세금 덜 내고 싶은 "있는 사람들"이 카리브해 같은 데 있는 섬나라에 페이퍼컴퍼니 만들고 돈 빼돌렸다는 이야기나, 스위스의 비밀계좌가 있다거나 대기업 사주들이 거기에다가 차명계좌를 수백 개 만들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인 것 같다.
도쿄 대학을 나와서 재정, 경제, 세무 관련 분야에서 두루 고위직 공무원을 거치고 변호사 사무실까지 개업해서 활약할 정도로 능력자인 저자는(!) 조세피난처에 대해서 단순히 개념과 실태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국제조세분야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 이 책을 저술한 계기도 "당신이 아니면 이런 책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꼭 써봐라."라는 주위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 조세피난처를 통한 조세회피 수법과 국제적인 나라 간 조세피난처를 통한 조세회피 방지 노력을 설명하고, 조세피난처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의 개념이 단순히 세금이 없거나 회사를 만드는데 제약이 없는 나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거래에 있어서 제약이 없는 상태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역외탈세가 버젓이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찌 보면 개념의 확대는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전부터 어렴풋이 알던 스위스 비밀계좌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등 역외거래와 각종 헤지펀드들이 난무하는 상황 자체도 조세피난처의 확대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조세피난처야말로 긍정적으로 보려야 볼 수가 없는 사회의 악이라고 정의한다. 응당 자신의 국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을 조세피난처를 이용해서 회피함으로 인해서 세부담을 다른 선량한 납세자들에게 전가시키게 되고, 조세피난처가 자금세탁 등에 이용되면서 테러조직의 자금조달 및 공급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 같은 힘 있고 강한 나라들마저도 조세피난처를 갖고 있는 상황이라서 저자가 대놓고 써놓지는 않았지만, 조세피난처 문제는 해결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넌지시 토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자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만큼 조세피난처의 이용고객은 고소득자, 헤지펀드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역외탈세를 응징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처럼 일반인들이 실태를 잘 알 수 있게끔 할 우리의 기준으로 쓰인 관련 저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일본이 하는 짓이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다방면에 전문가들과 "이런 것까지 책을 쓰나" 싶을 정도로 파고드는 건 따라 해도 괜찮다. 이 책처럼 말이다.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관심분야를 어찌 보면 국가가 한정 짓게 유도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파트 값 폭등으로 인해 양도세, 취득세, 종부세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고는 하나 해당 세금이 어떻게 계산되는 것이고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론도 말이 없다. 재벌 총수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수백 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서 탈세를 한 것에 대해서는 언론들은 크게 부각하지 않는다. "조세피난처" 등을 통해서 권력자와 재벌들이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매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난무하는 건 "절세"하는 방법이 나온 책들. 이런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저술된 이 책이 나오는 풍토가 부럽기도 했다.